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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자유로운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30일)

가장 위험한 위기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식이다. 가장 절망적인 위기는 그 위기를 타개할 전략가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략가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대중들이 다 알거나 원하는 대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숙고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그들이 감동할 만하고 승복할 만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정치제도로 정착하고 모든 시민들을 위한 정치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숙고하여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정착된다.
(2) 그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이해하는 시민집단이다. 시민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폭넓은 교양과 다양한 세계관을 배우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교육으로 숙고하는 인간이 된다. 민주주의의 성공은 숙고하는 개인의 숫자에 달려있다. 숙고하는 개인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3) 세번째는 높은 수준의 리더십이다. 리더는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지혜를 경청하고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시민들에게 설득하는 자다. 이 세 가지 정치제도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더다.

대부분 정치가는 대중의 욕망과 편견에 부합하거나 부추기는 말을 통해 인기를 얻는다. 기원전 500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정치가인 페리클레스는 매년 자신의 신임을 대중에 물어야 하는 취약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의 편견에 편승하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당면한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전달했고, 자신과 함께 대처해 나가자고 설득했다. 그는 아테네 시민 스스로가 만든 공포를 초월하자고 설득했고, 단기간의 이익에 탐닉하지 말자고 촉구하였다. 그는 필요하다면 시민들을 꾸짖었고 그들의 화도 감수하였다. 토론이 민주주의 정책 결정의 중요한 보루이기 때문에, 민주시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직언을 들었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 두번째이다. 폭넓은 교양을 갖춘 시민 집단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민주주의의 성공을 시민교육에서 발견하였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이며 영적인 비전을 제시하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 비전으로 자신의 일상이 던지는 어려움조차 인내로 극복하는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아테네가 기원전 6세기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그 제도를 과감하게 실행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어떤 천재들의 상상력의 결과인가? 이전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정치 형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과 절차가 필요했나?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높은 수준의 교양이 필수적이다. 혼돈에 빠진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깨어 있고, 폭 넓은 교양이 있는 시민들이다.

삶의 불행은 물질적 결핍이나 사회적 제약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익숙한 대로만 세상을 경험하는 사람, 즉 마음이 완고하고 강퍅해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동할 줄 모르고, 숭고한 것을 보고도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며, 거룩한 것을 만나도 경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불행하다. 독일 작가 얀 로스는, 자신의 책 <<빌둥(교양)>>에서  감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대상에 저항하는 사람을 "무교양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꽃을 보고도 무심하고 시를 읽어도 무감하며 음악을 들어도 흥 내지 못한다. 무감각하게 '노잼'의 삶을 살면서 하루하루 공허를 견딜 뿐이다.

반면 교양 있는 사람은 아름답고 비범한 것을 알아보고, 그 위대함에 감탄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는 낯선 존재를 보거나 놀라운 사건을 마주쳤을 때 익숙하거나 아는 것으로 대상을 섣불리 격하해 생각의 폭을 제한하지 않는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정중한 정신적 존경을 표시하며, 호기심을 발휘해서 자유롭게 탐구에 나선다. 이런 사람의 삶은 나날이 좋아진다.

교양이란 더 나은 인생을 살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고민하면서 삶을 창조해 가는 사람의 자질이다. 우리가 문학과 예술, 역사, 과학, 철학의 걸작들을 접하고, 그 어깨에 올라 세상을 보려 하는 것은 그들이 경이와 감동을 불러일으켜 우리에게 더 나은 인간으로 교양하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어 '빌둥(Bildung)'은 본래 '형성' 또는 '도야'라는 뜻이다. 이 말엔 사람은 태어난 대로 살면 안 되고, 자기 삶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가야 한다는 발상이 담겨 있다. 타고난 감각을 가다듬고, 마주하는 경험을 가꾸며, 떠오르는 생각을 갈고 닦아야 참된 인간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교양은 나날의 삶을 인간적 성숙의 길,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태도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에게서 얻은 생각들이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자유로운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교양인이 되는 목적은 교양인으로서 삶을 충실히 살아서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적 단계로 승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교양인은 교양을 갖춘 사람이고, 자신이 갖춘 교양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여기서 교양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걸 보통 자유기술(Liberal arts) 또는 인문학(Humanities)라 한다. Humanities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이 썼던 스투디아 후마니타스(Studia humanitas)에서 찾을 것이다. 인문학의 기본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파이데이아(paideia)에서 왔다.

'파이데이아'는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나타난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들을 폴리스(도시국가)의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 행하던 교육과정이다. 그리스 사회는 자유민과 노예라는 확실히 구분되는 신분제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리더는 자유인으로 불리는 '능동적 시민'을 말했다. 피지배 계급으로서 자유가 없던 수동적인 노예들을 선도하고 끌고 나아가던 지배 계급이다. 자유인들이 지시하고, 노예들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자유민들은 이끌고, 노예들은 따라간다. 교양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잉태되어 자유인으로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교육 장치였던 것이다. 교양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아는가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와 같이 방향성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진다.

'인문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이론을 내면화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그곳에서 자기 눈으로 발견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인문적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론을 숙지하는 삶에서 문제에 빠져드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파악하고 이것을 의논하고 정보와 지식을 버무린 뒤 그 속에서 창조적 사고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이 과정의 바탕이 되는 것이 문해력이다.

새로운 걱정이 또 생겼다. 대통령은 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어떤 보고서를 읽는지 궁금하다. 그의 문해력을 의심한다. 아니,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갑자기 안드로메다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다. 아니면 자다가 깨어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이 있다. 옛날 시골 흙 벽돌 집에 가면 창문을 달 수도 없고 하니 문틀 없이 그냥 종이로 창문을 흉내 내서 종이만 발라 놓은 것이 있습니다. 열 수도 없으니 당연히 그걸 '봉창'이라 합니다. 어느 촌사람이 방안에서 자고 있다가 밖에서 누가 부르니 잠결에 문인지 창인지 구분 못하고 봉창을 문인 줄 알고 열려고 더듬거리다가 내는 소리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다.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이 자다가 깨어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들였다. 그러니 우리는 이젠 "어떤 결심"을 하여야 한다.

어떤 결심/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 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한 순간 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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