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28일)
어제부터 이야기 하고 있는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배운 것은 프랑스 유학 시절이다. 프랑스를 이해하려면, 프랑스 혁명 정신인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그리고 박애(fraternité)가 현대의 프랑스 사회에는 봉구(bon goût), 똘레랑스(tolérance) 그리고 연대(solidarité)로 구현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도(봉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똘레랑스), 호혜적 이타주의 세상(솔리다리떼)가 실현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이를 위하여 공동체는 반드시 교육, 의료, 주거에 대한 문제로 '위대한 개인', 시민되기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를 잘 알아야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일관된 주제를 알아차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어제 말했던 것처럼, 걱정하는 것은 왕정이나 귀족정보다 민주 정치가, 온갖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가, 그 중에서도 다민족, 다 인종 공동체의 다른 목소리의 존재는 시간의 흐릿한 지평선에서 기대를 보완해 우리가 미지를 더 잘 다루게 이끈다는 점이다. 이 말도 어렵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확보해 주지만, 그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에 빠진다는 거다.
프랑스 문화는 봉구(bon goût- 좋은 취향)이다. 프랑스어로 ‘구(goût)’라는 말은 ‘맛’과 ‘취미 또는 취향’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한국의 페스트 후드점 중에 ‘구 드 프랑스(goût de France)’라는 상점이 있어 ‘구’라는 말을 이미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봉구’라는 말은 ‘좋은 맛’ 그리고 ‘좋은 취향 또는 취미’라는 의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프랑스를 가장 특징짓는 말이 ‘봉구’의 다양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학 경험을 통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봉구(좋은 취향)이 없다'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 '봉구가 없다'는 말은 '천박하다'는 말과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향은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갖는 인간다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이론적으로 말하면, 취향은 인간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로운 선택이고, 그 선택을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반영하는 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잣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유의 개념이 나온다. 봉구를 갖지 않고, 남의 것을 따라 하면, 하늘이 주신 나의 자유를 헌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들은 남들이 한다고 자신도 따라 하는 것을 창피해 한다. 삶의 모든 면에서 유별난 것이 규범처럼 적용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인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획일성을 매우 싫어한다.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메뉴 주문을 획일 화 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 인들은 대부분 각각 다른 음식을 주문한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백 종에 달하는 치즈와 와인도 획일성을 싫어하는 프랑스 인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프랑스 수도 빠리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유행을 잘 따르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는 것을 수치로 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하얀 드레스 셔츠에 짙은 색의 정장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과는 달리 프랑스의 직장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을 뽐내는 옷차림을 하고 직장에 나간다. 프랑스의 회사원들은 ‘튀는 색깔’의 넥타이와 색깔의 조화를 이룬 콤비 차림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직업도 유니폼이나 제복을 입어야 하는 거다. 예들 들면, 경찰, 군인, 신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개인적 자유를 포기하며 늘 제복을 입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십 종에 이르는 향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서양인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이유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프랑스 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한 장신구로 간주한다. 식탁에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하듯이 그날의 기분과 만나는 사람에 따라 향수를 선택한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취향의 다양성이 잘 공존한다는 것이다. 서로 갈등 하기보다는 관용 정신으로 서로의 취향이 인정되고 있다. 프랑스 영화 중 <타인의 취향>을 보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른 취향이 부딪치지 않고 공존하는 지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양성은 하나의 틀 속에서 적절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프랑스의 힘을 이룬다. 예를 들면, <예술 축구>로 유명한 프랑스의 축구 팀이 내 품는 저력이 이러한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프랑스 팀에 흑인 선수들이 많은 걸 가지고 오해들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프랑스 축구팀의 특징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사회의 정체성이다.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세상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프랑스 축구팀 선수들은 다양한 출신의 부모들을 가졌지만, 그들 모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고, 프랑스에서 축구를 배운 선수들이다.
한국에서 프랑스적인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톨레랑스’라는 개념이 많이 회자되었다. 홍세화의 책에서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톨레랑스’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관용’ 정도가 되겠으나, 동양적인 정서인 ‘너그러움’과는 다른 개념이다. ‘너그러움-관용’이 서로 간의 차이를 덮어두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화합’을 강조하는 태도라면, ‘톨레랑스’는 차이를 더 도드라지게 강조하되 서로를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독재정권하에서 고도의 압축성장을 이룩하며 효율성과 획일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다 보니 ‘다름’이 곧 ‘틀림’으로 간주되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톨레랑스 개념은 사람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프랑스 깊게 이해하면, 프랑스인들이 신봉하는 가치는 ‘톨레랑스’보다는 다양성, 프랑스 말로 ‘디베르시테(diversite)’가 중요하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이기는 하지만, ‘톨레랑스’는 어디까지나 ‘디베시테’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톨레랑스’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다양한 배경과 사상과 아이디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디베시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톨레랑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톨레랑스’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특정 사안들, 가령 나치 추종과 인종차별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앵톨레랑스’, 즉 불관용을 견지하는 것이 자연스레 설명된다. 즉 상위의 목표인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에는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 프랑스 팀은 돈을 주고 사온 용병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이 만들어 낸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다 해도, 공을 잘 차면 국가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다름을 받아 들이는 프랑스 축구팀의 강점이 여기서 나오는 거다. 그래 우리는 프랑스 축구를 '아트 사커'라 한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더 확보했으면 한다. 그러면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적어 두었던 글을 시 대신 공유한다.
다름과 틀림
사람들에게 " +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 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이라 한다.
목사는 '십자가' 라고 하고,
교통 경찰은 '사거리' 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 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 라고 대답한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 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 이다.
오늘도
'틀림' 이 아니고
'다름' 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프랑스식 코드를 이해하기 위해 정리를 한다. 봉구(좋은 취향)가 사회에서 통하는 것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역사 속에 최초로 보여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 3대 이념은 프랑스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원리가 된다.
(1) 자유 : 봉구를 낳고 다양한 사회가 에너지가 되는 예술적 삶의 사회와 문화를 만들었다. 봉구는 ‘솔직함’의 표현이 허용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체면’이 아닌 일상적 검소의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획일성이 아닌 개성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아름다움의 추구라는 예술적 기질을 만들어 준다. 우리 문화도 ‘비교 의식’이 아닌 ‘창조 의식’에 근거한 문화로 바뀌어야 된다. 비교 의식이 외면적인 가치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면, 창조 의식이란 나라는 존재가 그 원래 존재성 자체로 존귀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엄청난 자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돈과 성공, 인기와 명예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쉽게 내팽개쳐버리는 일을 행한다. 외면적인 가치가 아닌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 인격 존중의 의식과 문화로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가장 고귀한 명품이다. 그렇지 못하니까 ‘얼짱 현상’, 성형수술, 명품 선호 등 외모 만을 중시하는 이상 현상이 나오는 것이다.
(2) 평등 : 똘레랑스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관용’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식의 ‘너그러움’을 말하는 것이다. 똘레랑스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이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에 기초를 둔 개념이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귀중하면 타인의 생각과 신념도 존중하다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즉 존중 받기 바란다면 우선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똘레랑스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이다. 똘레랑스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 의도적인 용인”(필립 사시에)인 것이다.
똘레랑스는 서로 다른 차이에 대한 존중과 서로 다른 가치, 믿음, 생각을 가진 개인과 집단들 사이의 평화적 공존을 의미한다. 따라서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강요나 강제가 아니라 토론과 설득의 문화가 자리 잡는다. 똘레랑스는 다양성, 이질성, 복잡성을 존중할 줄 아는 정신적 태도와 지적 능력을 의미한다. 프랑스적인 창의성과 독창성의 바탕에는 ‘개성 존중’의 가치가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개성 존중이란 다른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똘레랑스의 정신이다. 개성을 배우고, 서로 다른 가치관의 공존과 차이의 중요성을 교육 받는다.
(3) 박애 : 이 정신에서 '쏠리다리떼(solidarite)'라는 연대의 개념이 나온다. ‘연대’의 사전적 정의는 ‘구성원 간의 상호 책임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강제하는 우호적인 연결 의식’이다. 다시 말하면, 상호 책임과 공동체 의식이다. 좋은 예가 프랑스 공기업 부문 노조의 총파업이다. 어떤 때는 파업이 2개월 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면 전철과 버스는 일체 다니지 않았고, 우편물마저 중단된다. 그래도 시민들은 “불편하지요. 하지만 나는 파업 노동자들을 100% 지지합니다.”라고 말한다. 파업 노동자들의 사회 정의 요구에 연대했던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유일한 사회 투쟁의 무기이며, 생존권을 지키려는 그들의 마지막 수단이다.
“사회 정의가 없는 힘이 사회 현실을 장악할 때 힘없고 가난한 생존들은 가치 없는 인생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홍세화)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파업이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파업 노동자가 주는 불편함에 대해서 불평을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와 주장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또 재미난 것이 있다. 파업의 목적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므로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파업 시에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연대 의식이다.
연대 의식은 각 개인이 남을 바라보는 시선, 나와 남이 서로 나누는 따뜻한 시선이 연대 의식이다. 연대 의식에서 가장 피해야 할 생각이 ‘나만 당하지 않으면 그만이지'하는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 낸 개념은 프랑스라는 사회의 특성을 넘어 인류적인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이념이나 모델을 만들어 내었다. 고 신영복 교수가 말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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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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