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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의 언어를 통찰해야 한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면 언어라는 수단을 가지고 접근할 수밖에 없다. 언어라는 그물로 세상을 이해한다. 언어가 없으면 우리는 현상을 파악할 수 없고,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면 현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언어는 '지배의 언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실을 지배하는 자가 쓰는 언어를 따라 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언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오히려 현실의 지배를 더 강화하게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의 언어를 통찰해야 한다. 현실을 잘못된 언어로 이해하는 자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거짓말이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 사회이다.

어제 아침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유럽의 다양한 정치 지형에 비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 해오고 있는 구도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것을 '수구(守舊)-보수(保守) 과두지배(oligarchy)라 불렀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 대 진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한다. 반대로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이 자유주의이다.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그래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라는 자들은 민족을 경시하고 외세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무리이다.

그리고 보수가 그 다음으로 중요시하는 것이 역사이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태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한다.

끝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한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언어나 태도를 보면 정말 끔찍하다. 우리는 이들을 '수구'라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이다.

요즘 ‘영끌’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뜻이다. 특히 2030세대 영끌은 미래를 끌고 갈 젊은이들이 평범하게 노력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도 얻을 수 있는 게 만만치 않다는 서글픈 시류를 반영하고 있다. 2030세대가 영혼까지 끌어 모으거나 팔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2030대만 문제는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래 오늘 아침 사진은 무심히 서 있는 저 푸른 소나무와 더 녹색을 띠는 어린 나무들의 하늘에 드리운 검은 구름이 지금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오늘 아침은 슬픈 시를 읽는다.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가 보다.

낡은 벽시계/고재종

사회복지사가 비닐 친 쪽문을 열자
훅 끼치는 지린내, 어두침침한 방에서
두 개의 파란 불이 눈을 쏘았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산발한 노인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보이고, 노인의 게게 풀린 눈과
침을 흘리는 입에서 알 수 없는 궁시렁거림,
그 위 바람벽의 사진 액자 속에서
예닐곱이나 되는 자녀 됨 직한 인총들이
노인의 무말랭이 같은 고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모여들게 되는
그 무엇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이 귀착점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고양이의 형광에 저항하며
노인의 극심한 그르렁거림을 지탱시키느라
사회복지사는 괘종시계 태엽을 다시 감는다

우리 사회의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도 거짓 언어 속에서 축복받고 있다.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진짜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 경제정책, 복지정책 등을 보면 그렇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복지정책을 가진 나라이다. GDP 대비 정부의 재정지출 비율이 보여준다. 복지국가란 정부가 충분한 재정지출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이 초래한 실업과 불평등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재정지출 규모를 보면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재정 지출 비율은 고작 25%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가 대체로 50% 정도의 재정지출을 보인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가 52%, 스웨덴이 49%, 독일이 46%. 미국이 32%이다. 한국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정부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사회보장 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김우창 선생은 우리 사회를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규정했다.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삶이 그렇다. 우리 사회는 한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든 사회이다. 정부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인 교육, 주거 등에 있어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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