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2일)

1
오늘 24절기의 하나로 소서와 입추 상이에 위치한 대서(大暑)이다. 한국에서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시기와 비슷하며 말목 전에 위치한 때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시기이다. 올해 중복 날짜는 7월 30일(수)이고, 말복은 8월 9일(토)이다. 옛날부터 대서에는 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장마철 빗소리에 가려졌던 매미 울음소리가 창을 넘어 들어오고 열대야 예보가 시시때때로 흘러나오며 담벼락 아래로 능소화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큰 더위'라는 대서이다. 여름의 마지막 절기이다. 한낮의 뙤약볕은 거대한 돋보기를 통과한 빛처럼 뜨겁다. 불볕더위와 습도는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더위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앞으로 차차 식어갈 일만 남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찌는 무더위’ 는 가마솥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푹푹 쪄내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이 때 에어컨이나 제습기만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리듬이 깨진다. 무더위를 이기는 비결의 하나는 ‘희망’ 이다. "보름만 지나면"하며 희망을 갖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말복만 지나면 새벽엔 이불이 필요하다.
2
대서 무렵이면, 자전거 페달을 힘겹게 밟아 여름 언덕의 꼭대기에 오른 기분이다. 매년 겼으면서도 그 자리에 올라서야 여름이란 이런 거였지 한다. 이제 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갈 일만 남았고 그 아래에는 마중 나온 가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이 언덕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여름 안에만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더위에 지치는 것도 여름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난는 그럴 때는 한 겨울을 상상한다. 한 겨울의 혹한 속에서 그리워할지 모를 순간이다. 주머니를 뒤집었을 때 나오는 모래 알갱이나 천 가방에 희미하게 밴 바다 냄새처럼, 겨울 속에 있을 때 내가 여름의 무엇을 그리워하곤 했는가를 떠올리면, 눈앞의 여름을 좀 더 기운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동양 고전을 읽으면, 이러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매년 무더위가 극에 이르면 나는 다음의 '3통'을 소환한다.
▪ 공자의 '궁즉통(窮卽通)' - 힘든 일이 닥치면 한 판 붙는다. 궁하면 통한다. 역경이 닥치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군자고궁(君子固窮)'"(<<논어>>)이란 말은 '군자란 어렵고 궁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뜻이다. '궁즉통은 원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에서 나온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세상은 변한다. 자연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이 순환한다. <주역>의 변화 철학으로 궁즉통의 4단계가 '궁, 변, 통, 구'이다. 그리고 '극즉반(極卽反)'이란 말도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 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 노자의 '허즉통(虛卽通)' - 자신을 비운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도덕경>>)에서 찾은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인생무상, 공수래 공수거이니 모든 것을 비우고 낮추며 섬기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루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위대하다. 이를 '허즉통'이라고 한다.
▪ 손자의 '변즉통(變卽通)' - 시대에 맞게 변한다. 손자는 만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이기고,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를 이상으로 보았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변즉통'으로 요약된다. 때와 장소를 알고, 흐름의 속도를 맞춰 나갈 수 있어야 된다. 상황에 따라 변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인문운동가가 무더위를 이기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적극적인 활동’ 을 하는 거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실천하는 것이다. 단 저녁 무렵에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는 농부들도 일 안 한다. 위험하니까. 대신 저녁 무렵에 집에 걸어오기, 텃밭 일하기, 산책하기 등으로 땀내기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여 동안 몸을 움직이면, 온몸이 땀으로 폭포수가 된다. 나는 가게 청소를 한다. 그러면 습기는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물줄기가 되면서 눅눅하고 끈끈한 기운이 사라진다. 온몸에 쌓였던 독기, 열기 때로는 한기까지도 일제히 밖으로 나오며 정화되고 새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무더위를 이기다가 새롭게 맞는 새벽의 서늘한 바람 한 조각은 훨씬 더 값지다. 그리고 습기를 머금은 무더위와 달리, 햇빛이 폭염(사납게 불탄다)인 날은 눅눅한 마음을 잠깐 씩 밖으로 나가 햇빛에 말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습한 몸과 눅눅한 마음이 다 날아가니까. 사람은 다 ‘때’ 가 있다. 이 때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는 좀 쉬면서,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 나의 더위 극복 방법이다. 평소에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을 이 시기에 읽는 것이다. 그것도 정리해가면서. 그 때 깨달음이나 평소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똑 떨어지게 정리된 정언들을 만나면 더위가 사라진다.
3
여름은 이렇게 휴식의 자세를 익히기에 좋은 계절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소서팔사(消暑八事)>>는 더위를 피하는 여덟 가지 방법에 대한 글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흥미롭다. "소서(消暑)"라는 말은 더위를 없애기보다 즐기려 한 '낙서(樂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게 아니라, 즐기거나 가만히 함께 있는 법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서팔사"는 다음과 같다.
▪ 송단호시(松壇弧矢)-소나무 단에서 활쏘기: 소나무 숲에 단(壇)을 마련하고, 활을 쏘았다. 푸른 솔숲의 바람을 맞으며 활 쏘기에 집중하면 몸이 식고, 마음이 맑아졌다. 이것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정신을 수양하는 여름의 수련이었다.
▪ 괴음추천(槐陰鞦遷)-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넓게 그늘진 느티나무 가지에 그네를 걸어, 천천히 타며 더위를 달랬다. 부채나 얼음을 쓰는 것과 달리, 바람에 몸을 맡기는 자연스러운 피서 방법이었다.
▪ 허각투호(虛閣投壺)-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 텅 빈 누각에 앉아, 가벼운 오락으로 투호(화살을 병에 던져 넣는 놀이)를 즐겼다. 그늘과 시원한 기운이 깃든 누각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더위를 잊었다.
▪ 청점혁기(淸簟奕棋)-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시원한 대자리(청점)에 앉아, 바둑을 두며 더위를 식혔다. 마루에 깔린 대자리는 습기를 덜어주고, 바둑의 집중이 마음의 번거로움을 가라앉혔다.
▪ 서지상하(西池賞荷)-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서쪽 연못에 피어 오른 연꽃을 구경하며, 더위를 잊었다. 연꽃의 맑은 자태와 은은한 향이 한여름에 마음을 식혀 주었다.
▪ 동림청선(東林聽蟬)-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동쪽 숲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를 들었다. 매미 울음은 더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선비들에게는 여름날의 자연 음악으로 여겨졌다.
▪ 우일사운(雨日射韻)-비 오는 날 한시 짓기: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는, 정자에 머물러 한시를 지었다. 비 소리와 시상이 어우러져 더위와 번잡한 마음을 씻어냈다.
▪ 월야탁족(月夜濯足)-달 밝은 밤 발 씻기: 달빛이 비추는 밤에, 시원한 시냇물에 발을 씻었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가 가라앉고, 여름 밤의 청량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는 우리에게 더위를 이기는 물리적 방법만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마음을 비우는 지혜이다. 즉 자연과 마음으로 더위를 달래는 거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여름을 견뎠다. 에어컨도 냉장고도 없었지만, 솔바람과 연못, 달빛과 빗소리만으로도 여름날을 충분히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 만의 '낙서팔사(樂暑八事)'를 만들고 싶다. 나는 너무 에어컨에 의지한다. 그래 오히려 병이 난다.
4
매미는 5년에서 1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2주 정도 삶을 산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미는 수년간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와 여름 한 철 울고가는 곤충이다. 매미의 일생을 알고 나면, 매미 소리는 삶을 더 살고 싶은 절규의 소리일 수도 있고, 짝짓기를 위해 구애자를 찾는 세레나데일 수도 있다. 매미는 집도 없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 아침 이슬 몇 방울이면 족하다. 그러니 재물을 모을 필요가 없다. 매미는 나무는 물론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때문에 옛 선비들은 매미에게 5덕(文, 淸, 廉, 儉, 信)이 있다고 여겼다.
▪ 문(文): 매미의 머리 모양, 즉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이 갓끈과 같아서 학문에 뜻을 둔 선비와 같으니 '선비(文)의 덕',
▪ 청(淸): 맑은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살아 '청렴(淸廉)의 덕',
▪ 염(廉): 사람이 힘들게 지은 작물을 해치지 않는 염치를 아는 '겸손(謙遜)의 덕',
▪ 검(儉): 자신이 살고자 하는 집을 짓지 않는 '검소(儉素)의 덕',
▪ 신(信): 때를 보아 왔다가 때를 보아 사라지는 '믿음(信) 덕'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매미에게서 우리 선조들은 군자의 다섯가지 덕을 겸비한 것으로 여겼다. 조선왕조의 임금은 매미의 양 날개를 위로 향하게 형상화한 익선관(翼善冠) 또는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국정을 돌보았다. 매미를 한 문으로는 '선(蟬)'이라 한다. 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그 익선관이다. 또한 조정의 신하들도 머리에 관모(冠帽)를 썼다. 왕의 모자와 달리 매미 날개 형상을 위로 향하게 하지 않고 양 옆으로 늘어뜨린 점이 임금이 쓴 익선관과 다르다. 이처럼 왕과 신하들이 머리에 쓰는 관모의 상징으로 매미의 날개를 삼은 데는 위에서 말했던 군자의 5 가지 덕을 상징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하여 의관문물을 중요시했는데,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실내에서도 관모(冠帽)를 썼었다. 머리에 관모를 쓰지 않을 때는 변소에 갈 때, 침상에 들 때, 죄수가 되었을 때 정도이며 일을 할 때도 벗지 아니했다. 관모 중에 벼슬아치들이 쓰는 것으로 사모(紗帽)가 있었다. 관 양쪽 뒤에 매미 날개를 단 형태의 모자였다. 이 매미 날개를 ‘사모 뿔'이라 한다. 이 매미 날개를 단 것은 매미의 청빈 고고한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매미의 날개를 달고 청빈하게 그리고 고고한 정신으로 살고 싶다. 오늘날 공무원들도 관을 쓰고 근무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임금들이 익선관을 쓰고 항상 백성을 염두에 두고 집무를 하였듯이 가슴에 떳떳이 공무원 명찰을 달고 한치의 부끄럼이 없이 민원을 해결하고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사항이다.
5
마지막으로, 대서 무렵에 찾아오는 무더위를 '삼복 더위'라 한다. 24절기 속에 속하지 않는 삼복(삼복)은 중국 진나라에서 유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잇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여름을 나는 일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는 "삼복지간(산복지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에서 느껴진다. 더위에 몸의 기운이 쉽게 약해지니, 입술에 붙은 조그만 밥알도 무겁게 느껴질 만큼 한여름에 사소한 일도 힘겨워진다는 뜻이다.
삼복(三伏)의 복(伏)자는 사람 인(人)변에 개 견(犬)자로, 사람이 개처럼 축 늘어져 엎드려 있는 형상을 본뜬 글자다. 한마디로 삼복더위에는 사람이고 개고 축 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복은 초복,·중복, 말복을 말한다. 삼경(三庚)이라고도 한다. 육당 최남선은 저서 <<조선상식>>에서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을 지닌 '복(伏)'의 어원에 대해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제압해 굴복시켰다”고 풀이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복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압박돼 상승하지 못한다고 하여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복일이라고 이름한 것”이라며 “복날에는 온갖 귀신이 횡행하므로 온종일 문을 닫고 다른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삼복/권지숙
하루가 먼 산허리마냥 지루하다
여름은 순식간에 왔다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놀이터의 아이들도 어느새 다 자라 버마재비같이 다리만 길어졌다
날카로운 햇살이 흉기처럼 두렵다
낯설기만 한 내 집 발도 머리도 둥둥 떠다니고
손에 잡히는 건 잘게 부서져 낭자한 바닥 그 위를 겅중겅중 뛴다
밖엔 늙은 개 한 마리 땀 같은 피 흘리고 있다
옛 어른들은 삼복을 쉬어 가는 날로 삼고, 초복, 중복, 말복은 긴 여름을 지나는 동안 멈추었다 가는 세 번의 간이역인 셈이다. 복날에는 더위를 피해 물가나 숲을 찾아 기력을 보충하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복달임한다'고 했다. 뙤약볕 아래 농사일을 계속해서는 몸을 해치기 십상이므로, 아무리 바빠도 복날 하루 쯤은 시간을 내어 미리 장만한 술과 음식을 들고 계곡을 찾아가 놀았다.
'피서를 핑계로 마련한 술자리'를 뜻하는 '하삭음(河朔飮)'도 옛 선비들의 '복 달임'이었다. 후한 말, 유송이라는 사람이 삼복더위를 피해 하삭(중국 황하 북쪽지방)에서 밤낮으로 술을 마셨던 고사에서 유래했다 한다. 조선 선비들의 여름 놀이는 주로 호수에서 연꽃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진흙 속에서 티끌 하나 없이 피어나는 연꽃은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가르쳤기에, 연꽃을 보며 그간 오염된 마음을 씻는다 하여 '세심(洗心) 놀이'라고도 불렀다. 이때 애용된 술잔 중 하나가 '연 잎'이었다. 발수성이 좋아 빗물이 또르르 흐르는 연 잎을 보고 누군가는 술을 담아볼 생각을 했다.
엣 사람들은 연 잎으로 천연 술잔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다음과 같다. 줄기가 너무 짧지도 굵지도 않은 것을 골라 연 잎을 줄기째 꺾는다. 싱싱한 연 잎 위로 술을 부은 후 줄기와 이어지는 가운데 부분을 비녀로 찔러 구멍을 낸다. 그럼 술이 줄기 속으로 흘러내렸는데, 연 잎 줄기를 통과한 술은 연꽃 향기가 스미고 차가워진다. 커다란 연 잎을 술잔으로, 긴 줄기를 빨대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을 '하심주(荷心酒)'라 한다. 여기서 '하(荷)' 자가 '연꽃 하' 자이다. 나는 대서때가 되면, '연 잎 밥'을 즐긴다. 여름을 나는 천연 보양식이다. 우리 동네의 <꽃 나래 허브> 찻집 주인 조윤실 대표가 매년 여러 사람을 모아 같이 만든다. 딸이 참석하여 10개나 만들어 온다. 냉동실에 두었다가, 연 앞 향이 그리우면 꺼내 찜통에 다시 찌면 그대로이다. 다음 사진 그 거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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