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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독일은 텐샷(ten shot) 사회인데 반해, 한국은 원샷(one shot) 사회이다."

68혁명이 없는 한국의 상황, 그 세번 째 특징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특히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적인 경쟁은 승자독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권위주의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 하고 있다.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는 학교에서 경쟁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쟁 이데올로기가 극단 화되면 또 다시 나치즘 같은 야만을 낳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치즘의 핵심은 아리안 족이 가장 우수하고 유대족이 가장 열등하다는 식의 차별 의식과 우열 사고의 바탕에는 경쟁의식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독일인들은 아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을 최대한 경쟁 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시험 보는 날짜를 미리 알려 주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실력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미리 시험 날짜를 알려주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에서는 경쟁을 한다. 독일에서는 삶과 스포츠를 분리해서 본다고 한다. 스포츠는 당연히 경쟁을 하지만, 삶에서 스포츠의 경쟁 방식을 따르는 것은 야만이라고 아도르노는 말했다. 왜냐하면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성과이지만, 삶에서 중요한 것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영어로 말하면, 'education'이다. 이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말의 합성어이다.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처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그건 "반교육"이다. 독일의 교육 문법을 보면, 치열한 경쟁을 시켜야 우수한 인재를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뿌리깊은 편견이다. 편견을 낳는 원인은 대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이다.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 부족, 상상력 부족, 오만과 자만심, 공감 능력의 부족, 삶의 내, 외부 균형 상실이다. 우리가 경쟁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경쟁은 야만"이라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독일은 학교에서 경쟁을 없앴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독일의 두 가지 예를 소개한다. 하나는 우리 같은 대학 입시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이 있는데, 그걸 "아비투어"라 한다. 이 '아비투어'는 대학에 가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거의 대부분이 다 합격한다고 한다. 이 '아비투어'에 붙은 학생은 모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대학에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해에 갈 수도 있고, 5-10년 후에 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 대학에서는 대학과 전공을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다만 정원보다 많은 학과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과를 '정원 제한' 학과라 하는데, 추첨 방식을 택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20% 이내에서 '아비투스' 성적을 반영하고, 같은 비중으로 반영하는 것이 대기 기간이다. 정원 제한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 왔는지를 비중 있게 고려한다고 한다. 의대의 경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끝에 입학한 아이들 중에서 더 훌륭한 의사가 많이 나온다는 흥미로운 연구들이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치열한 경쟁을 시켜야 우수한 인제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뿌리 깊은 선입견이다.

그건 사회 정의적 측면의 접근이기도 하다.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우리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한다. 김누리 교수가 소개한 "독일은 텐샷(ten shot) 사회인데 반해, 한국은 원샷(one shot) 사회이다"의 독일 교수의 말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독일인들에게는 10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한국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된 것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 본다. 반면 우리 사회는 너무도 많은 재능들이 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사회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가 기회를 박탈하는 시회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별과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이 우리가 지극히 기형적인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 거다. 현재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은 우리가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정치적 상상력이 지금부터는 많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지평이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 클럽'에 들어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권에 드는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명만 명 이상인 나를 이렇게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는데,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 민주화의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번 한주도 이런 이야기를 계속 공유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