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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수뢰 둔괘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20일)

지난 주말에 다 읽지 못한 <<주역>>의 세 번째 괘인 <수뢰 둔괘>를 이어간다. <둔괘>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 하나는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며 책임을 분산하고, 가능한 한 문제를 회피하며 시간을 보내는 길이다("盤桓, 利居貞, 利建侯, 반환, 이거정, 이건후"). 주저(躊躇)하는 모습이다. 내가 꿈꾸는 인문 운동가는 앞서 나가는 사람, 즉 리더를 꿈꾼다. 선도(先導)하는 사람 말이다. 그러려면 우선 스스로에게 리더여야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리더의 하루는 '주저(躊躇)'의 연속이다. 확신과 환호가 아니다. 그는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저는 '신중(愼重)'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은은, 마치 독수리처럼,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올라 현실을 파악하고, "어두운 숲속"(<신곡>) 너머에 있는 '천국'을 찾아낸다. 누구도 자신의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어두운 숲"이, 모두를 위한 지름길이란 사실을 안다. 우리의 일상은 항상 딜레마(Dilemma, 일반적으로 두 개의 판단 사이에 끼어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 앞에 놓인다. 이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옳은 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대중과 "위대한 개인"의 차이가 드러난다. 대중은 자신의 의견을 빠르게 주장하지만, 리더는 모든 이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경청한다. 그리고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리더는 연민(憐憫)한다. 연민하기 때문에 주저한다.

주저는 대충 보는 것과 다르다. 주저하는 것은 일상의 문제 앞에서 한참 서서 보는 행위이다. 대충보기와는 다르다. 대충보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갖고, 자신에게 익숙한 대로 보는 행위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의견은 틀리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착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남들에게 강요한다. 한참보기는 고독과 침묵을 오랫동안 훈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두 번째는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의 힘과 가능성을 사용하는 길이다("屯, 剛柔始交而難生, 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宜建侯而不寧, 둔, 강유시교이난생, 뇌우지동만영, 처조초매, 의건후이불녕"). 그 가능성이 희망이다. 희망은 한 줄기 끈이다. 연약하지만 나를 과거라는 괴물에서 탈출하여 미래라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등불이다. 희망은 인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현상 유지에서 혁신으로 인도한다. 희망이란 한자(希望)의  㠻(희)자는 ‘드믈다, 씨줄과 날줄 사이가 듬성듬성 성기다'란 의미다. 옷감(巾)을 서로 교차한(爻)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다. 望(망)자도 높은 곳에서 훨씬 먼 곳을 바라보는 행위를 표현한다. 보름달은 절망과 체념의 상징이다. 이제 줄어들어 반달로 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초승달이 된다는 신호다.  초승달은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다. 이제 불어나 시작하여 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된다는 신호다. 희망은 보름달이나 초승달에 연연해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의연이다. 희망은 오늘 하루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소중한 발걸음이란 믿음이다. 나는 늘 "희망으로 가득한 가능성"을 꿈꾸며 산다.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이 희망이다"라는 독일어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둔괘>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처지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 아무리 강해 보여도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가능한 한 권한을 위임하고 직접 책임지는 걸 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약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자기를 낮추고 참고 또 참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조심하는데도 운명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의 인내가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는 그의 눈앞에 지금 자신의 상황을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때이다. 사슴을 뒤쫓아 숲으로 들어가고 싶어 지는 때, 즉 눈 앞에 있는 기회를 붙잡고 싶은 열망이 일어날 때이다. 여기까지 지난 주에 읽은 내용이다.

오늘은 상괘인 <수뢰 둔괘>의 제4효부터 읽는다. 제4효는 다음과 같다. "六四(육사)는 乘馬班如(승마반여)니 求婚媾(구혼구)하야 往(왕)하면 吉(길)하야 无不利(무불리)하리라." 이 말을 번역하면, '육사는 말을 탔다가 서성거리니, 혼인을 구하여 가면,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이다. 네 번째 음 ‘육사’는 외괘의 <수-물- 감, ☵>에 있어 어두운 상태이니 역시 일을 주저하게 된다. 또한 정응 관계인 초구(初九)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위에 있는 구오(九五) 양(陽)에 마음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정응 관계로서 육사 자신에게 필요한 상대인 초구를 만나야 하니, 가서 만나게 되면 길하여 모든 일이 이롭게 된다.

이 '육사'는 음효이니까, 이 여인은 말을 타고 반열을 맞추어("乘馬班如, 승마반여"-좀 주저한다는 말로 이해, 여기서 주저는 신중의 다른 말) 혼인의 짝을 구하러 가고 있다"(求婚媾, 구혼구)". 혼인의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이 자리에 응(응)하는 초구의 씩씩한 풋내기 남성이다. 처자를 보좌하는 육사의 자리에 있는 지체 높은 여인이 아랫자리에 있는 남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심히 축복받을 아름다운 일이다. 이 여인이 혼인의 짝을 구하는 것은 개인의 좋고 나쁨 때문이 아니라, 초구와 함께 고립무원에 빠진 구오의 천자를 도우려는 대의가 있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 '감("往, 왕")이여, 길(吉)하다. 이롭지 아니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无不利, 무불리"). 여기서 "班如(반여)"는 행렬의 모습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육사의 효사는 단지 한 여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의를 위하여 동지를 규합하여 세상의 고난을 구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도덕적 의도에 다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 '육사' 효사에 대한 <소상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象曰(상왈) 求而往(구이왕)은 明也(명야)라."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구하여 감은 밝게 하는 것이다'로 번역된다. '육사'는 음자리에 음으로 위가 마땅하고 정응인 초구와 잘 응하니, 초구와 혼인을 구해서 가는 것은 밝게 처신하는 것이다.

다음은 제5효인데, 효사는 다음과 같다. "九五(구오)는 屯其膏(둔기고)니 小貞(소정)이면 吉(길)코 大貞(대정)이면 凶(흉)하리라." 번역을 하면, '구오는 그 고택(膏澤, 혜택, 은혜)이 어려우니, 조금 바르게 하면 길하고 크게 고집하면 흉할 것이'이다. 즉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한 자리에 있어 둔괘 전체의 상황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지만, 지도자(천자, 리더)로서의 은덕을 베푸는 역할을 고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외괘가 감괘☵로 어두운 상황 일뿐만 아니라 <둔괘>에서 구오는 초구를 도와 일을 풀어 나가야 하는 역할, 즉 제후로 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때문에 지도자로 서의 역할을 고집하지 말고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면 길하지만, 인군(통치자)으로서의 자리를 고집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쳐 흉하게 된다.

구오는 초창기 간난의 시대에 고뇌하는 천자(리더)의 자리이다. 이 천자는 어떻게 국민에게 혜택을 베풀어 이 고난을 극복할까 하고 고뇌하고 있다("屯其膏, 둔기고). 그런데 이 자리에 응하는 '육이'가 음효로 힘이 없다. 천자는 고립무원이고 허약한 음효로만 둘러싸여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屯其膏(둔기고)"에서 "고(膏)라는 것은 혜택을 의미하고, 여기서 "둔(屯)"은 괘명이 타동사화 된 것으로 '고뇌한다'는 뜻으로 풀이를 했다. "어떻게 혜택을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지만 실천할 방도가 없다"는 뜻으로 읽었다. 결국 고뇌하는 군주로만 남는 것이다. 작은 일(혜택을 작은 범위에서 베품)에 관하여 짐을 지면 길하나, 큰일(혜택을 대규모로 베품)에 관하여 짐을 지면 흉하다는 거다.

이 육사에 대한 <소상전>은 이렇게 말하였다. "象曰(상왈) 屯其膏(둔기고)는 施(시) 未光也(미광야)라."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그 고택이 어려운 것은 베풂이 빛나지 못한 것이다"라는 뜻이다. 둔괘의 상황에서는 초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크기 때문에 구오가 인군로서의 역할을 고집하면 그 베푸는 것이 빛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로 이해했다. 도반들과 <<주역>>을 함께 읽으면서, 우는 "고"를 '기름진 음식"으로 받아 들였다. 가난한 시절에 우리는 기름진 음식을 원했다. 그러니 "고'란 가난을 극복하는 상징 일 수 있다.

김용옥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더 흥미롭게 풀이를 했다. 이 <수뢰 둔괘>의 <대상전>에서 상괘가 수(水)나 우(雨)가 아니라, "운(雲)으로 되어 있는 것은 구름으로만 머물러  있지 그것이 비가 되어 땅에 내리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거다. 가뜩이나 초창기 간난의 시대에 가뭄의 어려움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먹구름이 단비가 되어 땅을 적셔 기름진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것을 "고우(膏雨, 은혜의 단비)"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둔기고"는 "고우에 관하여 고뇌한다'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상괘의 모습을 보아도 양이 음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적체되어 잇는 모습이다. 구름이 비가 되어 터져 내려가질 않고 갇혀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정이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상육의 효사는 다음과 같다. "上六(상육)은 乘馬班如(승마반여)하야 泣血漣如(음혈연여)로다." 이 말은 '육은 말을 탔다가 서성거려서 피눈물이 줄줄 흐르도다'로 번역된다. 마지막 상육은 어려운 초창기 상황의 중심적 역할에서 벗어나 끝에 처해 있다. 둔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은 초구와 구오에게 의지를 하게 된다. 상응하는 관계를 보아도 초구와 육사가 응하고 육이와 구오가 응하나, 상육과 육삼은 같은 음으로 서로 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상육이 바로 아래에 있는 구오 양에게 기대게 되나, 구오는 정응인 육이가 있으므로 결국 상육은 구오 양(말)을 탔다가 서성거리게 된다. 이는 수뢰둔(水雷屯)의 어렵고 험난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업(創業)의 역동적인 상황에 상육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한탄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乘馬班如(승마반여)"는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으로 보인다. 상육의 자리가 음유(陰柔)한 데다가 둔난(屯難)의 세월의 극한에 도달했으니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괘의 육삼도 정응하지 않으니,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는 거다. 그러니 눈에서 피문물이 줄줄 흐를 뿐이다("泣血漣如 음혈연여"). 상육에 대한 <소상전>은 다음과 같다. "象曰(상왈) 泣血漣如(음혈연여)어니 何可長也(하기장야)리오."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피눈물이 줄줄 흐르니 어찌 가히 오래하겠는가?"로 번역된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음형(피눈물)을 흘리는 상육의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소환되었다. 그래 공유한다. 오늘 사진은 메리 골드 꽃 차이다. 아직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읍혈"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어의 "내 영혼의 슬픈 눈 같다."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 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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