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때부터 인간이 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의 충격 속에서, 직접 접촉하지 않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과 사람이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시대, 아니 가급적 만나지 않을 것을 권장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국가와 지방정부로부터 ‘대화 자제’ ‘방문 자제’ ‘2m 거리 두기’ 등등 만남과 모임, 행사를 가급적 자제하라는 문자를 아침마다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가급적 서로 만나지 않고, 대면 대화를 줄이는 ‘언택트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만나자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결례인 듯한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사람은 만나야 한다. 사람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은 삼간,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사람(人)자 뒤에 간(間)이 붙는다. 그 인간(人間)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속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에서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이 '간(間)'을 우리 말로 하면 '틈, 사이, 간격'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원 시간 속의 짧은 틈과 무한한 공간 속의 좁은 틈을 비집고 태어나, 사람들 틈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이것을 '삼간(三間)'이라 한다. 그러니 살면서 우리는 그 시간의 틈을 즐겁게, 공간의 틈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 사이의 틈은 사람 냄새로 채우면서 살아야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살다, 삶, 사랑'과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즐거운 시간, 아름다운 공간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 없는 시공간은 균형이 깨진 '진짜' 삼각형이 아니다. 사람 혼자서는 틈을 만들 수 없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사람은 만나야 인간이 된다. 그리고 "우정"이 생기고, 쌓인다. 사진은 남원에서 찍은 것이다. 비가 잠시 그친 사이에 세 마리 새가 쉬고 있다. 오늘 아침 글은 부산일보의 천영철 기자의 다음 글을 읽고 사유를 시작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언택트를 너무 당연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접촉을 금기시하기보다는 정신발달 과정 등 심리적인 문제도 고려하는 ‘입체적인 대책'이 아쉽다. 결혼과 출산율 급감 우려에 따른 초고령사회 가속화 문제는 물론 ‘사회적 외톨이’ 증가 등에 대한 장기 대책도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도 언택트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리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우정/정호승
내 가슴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글씨 하나 있다
과수원을 하는 경숙이 집에 놀러갔다가
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배의 가슴에다
머리핀으로 가늘고 조그맣게 쓴 글씨
맑은 햇살에
둥글게 둥글게 배가 커질 때마다
커다랗게 자란 글씨
우정
인간은 언제 완성될까? 완성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이다. 그건 신의 영역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에게로의 초월을 꿈꾼다. 초월은 내 담벼락을 허물고 지평을 확장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신의 경지까지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만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간이 되려 한다. 그러려면 내 생각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해야 한다. 홀로 동굴 안에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이 인간이 되려면, 동굴을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이 된다. 현생 인류는 타인과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날마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며 생각을 교류하고 감정을 나누며 살아 왔다. 우리는 지금도 나름대로 사람들과 접촉하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간다. 각자의 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미지의 어떤 세계에 대해 눈을 뜨고, 배우고 사유하며, 불현듯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자아를 점점 확장한다. ‘껍데기'를 깨기 위해서는 계속 접촉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지어 살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말도 있다. 그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때부터 인간이 된다.
난 저녁마다 복합와인문화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거리로 나가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서로 피해 간다. 아마 그가 나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타자 윤리학"을 말하는 프랑스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타자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얼굴로 나타내는 현현(顯顯)에 의해 나에게 의무를 지운다." 이러한 의무에 따라 타자로 향한 정향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간의 유대와 연대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주장이다. 그는 "제대로 된 정의는 타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동양 철학에서도 타자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의 넓이와 폭이 말해준다고 말한다.
"보는 것은 주체이고 정신이다. 보이는 것은 객체이고 사물이다. 내가 타인을 단순히 보고 있는 한 타인은 단순하 사물이다." (미와 마사시, 『신체의 철학』) 우리는 타인을 사물로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한다. 그래 우리는 얼굴 대 얼굴로 만나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한(레비나스 용어, 네가 쌓은 경계의 담벼락이 무너지면서)'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얼굴로 나타나는 현현을 통해서, 우리는 주체성을 가지고 타인과 시선을 교류하는 건강한 사이가 된다. 특히 눈과 눈의 마주침이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시선을 교류하는 사이가 되어야 책임지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연대에 기초를 두고 자유와 독립을 유지하며 공동체로 살아가려는 개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시스템도 그런 식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오늘은 여기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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