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오늘 글입니다.



새로운 한 주가 또 시작됩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1년 전에 포스팅한 내용이 다시 올라왔네요. <당신의 치킨 인생, 시킬 것인가 튀길것인가?> "1,2,3 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5,6 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8,9 등급은 치킨을 배달 할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은근히 언론이 계급을 조장하고, 사는 것이 경쟁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시키든, 튀기든, 배달하든,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한 사회를 구성하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것이고, 자기가 있는 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면 다 나름 잘 사는 것 아닙니까? 한 공동체의 목표가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요?
지난 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딸이라는 켄디 고가 자기 아버지에 대해 한 말이 기억납니다. "늘 남을 자신보다 낮게 봤다" "그 사람에겐 그 일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사회에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그 사람은 내가 위에 있으니... 내 밑에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는 일은 각자 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사람을 천대하지 않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지난 토요일 아침 SNS를 달군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취중 발언을 보고, 나도 화가 났다. 소위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고위간부의 비뚤어진 인식을 확인하였다. 그 뿐일까? 현 정부 들어서서 코드 인사를 하다보니, 검증이 안 된 고위직이 다른 때보다 더 많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샜을 뿐이다. "나는 신분제를 공공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민중은 개, 돼지이다."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이에 대해 진중권 교수의 트위터가 돋보인다. "우린 개, 돼지... 넌 국가의 내장에서 세금 빨아먹는 십이지장충. 국가도 가끔 구충약을 복용해야합니다. 벌레들은 당장 해고시켜야..." 그 외 확 와닿는 글은 "교육부를 사육부로 바꾸라."(황교익)였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한 이 시대에 기회 균등과 계층 사다리의 수단으로 기능해야 할 교육의 이념을 내 팽개친 인식에 분노를 하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의 성명이 잘 진단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 평등의 원칙을 져버린 채 소수 기득권층의 여망에 따라 학교간 차별적 서열 구조를 만들고 정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애써온 교육부 고위 관료들의 인식 상태가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그렇게생각합니다. 국민이 공무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신분제를 타파하기 위한 저항의 역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페북에 포스팅한 기사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 10대부터 직장인들까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치킨집'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난 2016년에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더 심화되었을 뿐이다.
-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도 웃지 않고, 편의점 알바도, 편의점 사장아저씨도 웃지 않는 시대. 웃음이 사라진 시대이다. 왜? 한번 등급이나 계급이 매겨지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능성에 대한 포기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 문과도 이과도 결국에는 다 '튀겨야' 하는 인생이다. 졸업하고 바로 치킨집을 차리느냐(문과), 아니면 취업이라도 한번 해보고 차리느냐(이과) 경로만 다를 뿐 치킨집으로 다 수렴된다. 어차피 일자리 없고(문과),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이과) 다들 치킨집으로 다 수렴된다.
- 치킨집은 3040 가장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위험사회를 뚫고 성장해도 아이들의 미래는 불안으로 자욱하다.
-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고, 더욱 공공화되고 있다. "돈(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노동)이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빨라서 어떤 부모를 두었냐가 개인의 미래를 죄우하는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
- "미쳐라" 모가지만 비트는 세상, 누가 새벽을 열 것인가? 천번을 흔들리는 것은 날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라고, "미치면" 될 것이라고, 이젠 이런 이야기에 회의적이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그 새벽은 10대와 20대의 성장판 깊숙이 경쟁의 유전자만 세습한 기성세대가 열어줘야 한다.
나도 이젠 떠나야 한다. 그래야 네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날개를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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