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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고유한 존재가 된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8일)

어제 7월 7일은 소서이고, 대서는 7월 23일이다. 말 그대로 '작은 더위'를 의미하는 소서(小暑)는 24절기 중 11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고, 하지와 대서 사이에 있다. '큰 더위'를 의미하는 대서(大暑)는 12번째 절기이다. 소서와 입추 사이에 있다. 소서와 대서는 여름을 대표하는 절기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복, 중복, 말복은 24절기는 아니다. 최근 더위는 이미 '대서'인듯 하다. 장마철인데,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온 세상이 습도가 높아 불쾌하다.  ‘찌는 무더위’ 는 가마솥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푹푹 쪄내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이 때 에어컨이나 제습기만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리듬이 깨진다. 무더위를 이기는 비결의 하나는 ‘희망’ 이다. "보름만 지나면"하며 희망을 갖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말복만 지나면 새벽엔 이불이 필요하다.

어떻게 견딜까? 공자도 늘 노력했다는 내려놓아야 할 4 가지 이야기를 소환했다.
1. 이런 저런 ‘잡념’
2. 반드시 이러해야만 한다는 ‘기대’
3. 묵은 것을 굳게 지키는 ‘고집’
4. 자신만을 중시하는 ‘아집’.

공자의 표현대로 하면, “의필고아(意必固我)”이다.
1. 의(意): 무슨 일이든 확실하지 않는데도 지레짐작으로 단정을 내리는, 사의(私意), 사견(私見)으로 근거 없는 억측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을 갖는다.
2. 필(必): 자기 주장을 기필코 관철시키려는 자세로 자기 언행에 있어 반드시 틀림없다고 단정 내리지 않고 버린다.
3. 고(固): 융통성 없는 고집, 유연한 관점이 아닌 경직된 틀로 자기의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버린다.
4. 아(我): 자신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것으로, 나를 비우고, 양심이 아니라 욕심을 버린다.

'의필고아'를 이렇게 푸는 사람도 있다.
1. 의: 현재를 방해하지 마라!
2. 필: 미래를 기대하지 마라!
3. 고: 과거에 집착하지 마라!
4. 아: 자아를 내세우지 마라!

이 네 가지 중에서 버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집’이다. 나를 중요시하는 아집을 없애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부질없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과거 주장이나 행적에 대한 고집도 없어질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명상은 ‘모른다.’ ‘나는 내 이름도 모른다.’고 하며 자신의 ‘참나’와 만나는 것이다. 흔히 아집은 지나친 자기사랑에서 나온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나는 모른다.’는 무지(無知)와 자기의 욕심을 버리겠다는 무욕(無慾)을 지녀야 아집이 사라진다. 공자도 그래서 무지(無知)와 무욕(無欲)을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욕이 욕심을 완전히 비우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욕심을 그대로 긍정하되 남의 욕심도 긍정하며, 나와 남 모두를 배려하는 ‘양심’으로 자신의 ‘욕심’을 잘 조절해가자는 것이다.

이를 일상의 삶 속에서 잘 실천하기 위해서 공자는 다음 세 가지를 말했다.
1. 지지불욕(知足不欲), 즉 족함을 알아라. 다시 말하면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2. 지지불태(知止不殆),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즉 ‘때’를 알아야 한다. 멈추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3. 소사과욕(少私寡欲), 자기중심성과 욕망을 좀 줄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무지(無知)란 우리의 간지(奸智), 즉 꼼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잔 꾀 같은 것을 없애라는 말 같다. 그리고 지식을 없애라는 말은 기존에 고집하던 것을 지우고, 새로운 안목을 키워 새롭게 이 세상을 보라는 말이겠지. '무사무욕(無私無欲)'을 말하지 않고, '소사과욕(少私寡欲)'의 현실적 처방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소'와 '과'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일정한 눈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적게 하고 끊임없이 줄이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를 버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화엄경』의 이 문장을 좋아한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그러면 나의 어느 것을 비워야 할까? 나는 늘 다음 세 가지 경계한다. 교만, 조급함 그리고 공격적인 태도의 사나움.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낮추며 겸손해 하며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실천이라고 나는 이름 지었 다. 다음은 조급함 대신 여유를 택하며, 움직이지 않기가 태산처럼 원칙을 지킨다. 이를 '부동여산(不動如山)의 여유'라 한다. 끝으로 공격적인 사나움 대신 부드러운 감성을 키운다.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러움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긴다)"의 삶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뽐내고 잘난 척 하는 교만대신 자기를 낮추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며 겸손한 삶을 추구한다.
2. 조급함 대신 여유롭고, 유연하지만, 어떤 움직이지 않는 원칙을 갖고 산다.
3. 공격적인 사나움 대신 부드러운 감성을 키운다.

이런 생각 속에서 오늘은 시 대신, 안예은이 부른 <문어의 꿈>의 노래와 가사를 공유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처럼, 나를 버리는 하루를 살고 싶다.

오늘 아침 사진은 매주 금요일마다 노자 <<도덕경>>을 함께 읽는 도반 여산 이성배의 글씨를 택했다. "견소포박(見素抱樸)" 제19장에 나오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는 ""見素抱樸(견소포박) " 다음이 "少私寡欲(소사과욕)"이 이어진다. 이 말은 순결한 흰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아라!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좀 더 자세하게 풀면, 물들이지 않은 무명천의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 '나' 중심의 생각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노자가 '무사무욕(無私無欲)'을 말하지 않고, '소사과욕(少私寡欲)'의 현실적 처방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소'와 '과'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일정한 눈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적게 하고 끊임없이 줄이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올이 말하는, "우리의 몸의 살을 빼는 것도 끊임없이 줄이는 것"이 멋진 예이다.

https://youtu.be/LBmB3DGxnNk


문어의 꿈(Octopus' dream)/안예은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단풍놀이 구경 가면 나는 노란색 문어
커피 한 잔 마셔주면 나는 진갈색 문어
주근깨의 꼬마와 놀면 나는 점박이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문어의 꿈>을 크게 들으며, 사유를 좀 더 이어간다. 나는 주목받는 일을 이젠 크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심을 잘 아는 사람 몇 명만 나를 응원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말이 눈에 꽂혔다.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기를, 삶이 지금보단 조금 더 편하고 즐겁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더 자주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이젠 그렇게 살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엄지혜 작가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즐겁게 살길 바란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뜨겁지 않게 은근하게, 꺼드럭거리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

"행복은 장소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만드는 것이죠." 슬로베니아에 사는 소설가 강병융의 말이다. 같은 장소에 있다고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빼앗아 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결여'의 힘이다. 결여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함, 견디는 힘, 궁리와 분투 강인한 삶의 의지이다. <박노해의 걷는 독서>에서 읽은 거다.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 잠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십중팔구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가치 기준을 정하기 전에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여기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1.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2.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3. 고된 일상 속에서도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떤 보상, 어느 정도의 여가가 필요한가?
4.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인생을 놔 버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우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고유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와 씨름한다. 이런 문제는 각자가 살아온 삶으로 인해 빚어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디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포기해야 할 것과 계속해야 할 것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고, '결여'의 힘으로 견디는 힘을 기르고 싶다.

엄지혜 작가는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비중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면, 작은 것은 타협한다고 했다. 그녀처럼, 나를 너무 소외시키는, 너무 속이는 일을 하면 괴롭다. 내 감정을 너무 모르는 체하지 말고 살아가야 겠다.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그득해진다. (…) 속이 든든해 지고 싶으면 말을 참아야 한다."(시인 박연준) 사람도 많이 만나지 말아야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건 정적 없이 쏟아지는 수다가 아니라, 매우 적은 글자로 완성한 몇 개의 문장이다. 엄지혜 작가처럼, 나도 아늑하고 고요한 일상을 꿈꾼다. 안온(安穩, 조용하고 편안함)한 삶은 충만한 삶에 가깝다.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심심함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되어 갈 때 나는 씩씩 해진다." 씩씩하게 살고 싶다. 그러면서 나를 소외시키고 싶지 않다. 부지런을 떨수록 우리는 점점 자신으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 간다. 자신의 감정을 너무 모르는 체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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