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글이에요.

당황함과 황당함은 다르다.
당황함은 놀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고, ‘황당함’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승용차 뒤에서 소변을 보는데, 차가 앞으로 가면 당황한 것이고, 차가 후진하면 황당한 것이다.
근데, 최진석 교수의 “황당무계”라는 칼럼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황당무계를 꿈꾸어야 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 우리는 두꺼운 <일리아스>를 함께 읽는다. 사람들은 볼 것도 많은데, 그런 책을 읽는다고 황당하다고 한다. 삶이 상승하고 확장하는 느낌이 없이, 답답하고 피폐되어 간다면, 이는 분명히 자신에게 할당된 황당한 영역의 상실 때문이다.
이번 일요일 오후 3시 대전 둔산도서관에 오시면, ‘황당무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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