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19일)
1
오늘은 조용헌의 책을 우선 공유한다. <<주역>>을 함께 읽으면서, 관심을 가졌던 주제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책이 재미있다. 동아시아 철학의 "음양오행(陰陽五行)"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본다. 동양 철학에서는 이걸 가지고 하늘의 뜻인 사주팔자(四柱八字)도 설명하고, 풍수도 보고 인체의 양생(養生)과 질병도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양'보다 '음'이 먼저 배치된다. "양음오행"이 아니라, "음양오행"이라 부른다. '음'이 그만큼 비중이 높다는 뜻이 아닐까? 저자는 그 이유를 달은 음이고, 해가 양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해(태양)는 변화가 없지만, 달은 변화가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변화를 보고 고대인들은 제생(再生)의 의미를 부여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모양을 보고 죽었다 살아나는 환생을 생각했다. 태양은 생로병사가 없지만 달은 생로병사가 있다. 생로병사가 있는 달이 인간의 상상력과 정서에 훨씬 더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바닷가에 가면 만조와 간조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지난 주말에 여행하였던 위도(蝟島)는 간만의 차가 매우 커, 갯벌이 좋았다. 그 섬에는 파장금, 정금, 논금, 미영금 등 '금(金)'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았다. 조기어장이 형성돼 '파시(波市)'가 열렸을 정도로 수산물이 많이 잡혀 돈이 몰렸던 곳이었기에 이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물때'를 알아야 한다. 뱃사람들은 태양에는 관심이 없고, 달의 크기가 관심사였다. 음력으로 매달 초여드렛날(8일)과 스무 사흗날(23일)은 '조금 물때'라고 부른다.
2
워런 버핏이 했다는 인생 조언들을 SNS에서 봤다.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과 함께하라. 그는 탁월한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으로 삼았다. 지적인 자극과 도덕적 기준을 제공하는 사람과 어울리라는 거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파리의 뒤를 쫓으면 변소 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는가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 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화학의 원소주기율 표에서 염소 Cl이 나트륨 Na를 만나면, 소금 NaCl이 되지만, 수소 H를 만나면 염산 HCl이 된다. 염소 CL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에 뿌려져 절망을 낳는 염산이 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도 삼간(三間), 즉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이다. 그 판단은 그 순간에 하지 말고,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보면 보인다. 천천히 걸으면서 때로는 멈춰 서서 볼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3
존경하는 멘토를 선택하라. 그들의 습관이 자신에게도 배어든다. 그는 책을 통해 멘토들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일상에 적용해 보는 거다. 음식이 몸의 양분이라면, 독서는 영혼의 밥이다. 그런 면에서 책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다. 잘 먹고, 잘 씹고, 잘 소화 시켜야 영혼이 건강해 진다. 몸만 건강하고, 영혼이 살찔 정도로 건강하지 않으면 균형이 깨진다. 건강해야 기쁨을 얻을 수 있고, 그 기쁨이 잘 유지되어야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일상에 잘 배치되어 자주 느껴야 행복하다. 우리들의 감정 중에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기쁨'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차이가 있는가? 사전을 찾아 본다.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면, 즐거움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느낌이나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것 같은데, 즐거움은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없다가 얻게 되었을 때 오는 것은 기쁨이고, 늘 있는 것은 즐거움인 것 같다. 그러니까 기쁨이 즐거움보다 더 강한 감정인 것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희'는 기쁨이고, '락'은 즐거움이다. 둘 다 '쾌(快)'의 감정이지만, '락'은 감각적 차원의 쾌감이다. 이 쾌감은 고통이나 불편을 동반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다. 이 감정은 동물도 느낀다. '희'는 고통이나 불편이 동반된 쾌감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이 기쁨이라는 감정은 순수한 쾌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거치고 난 후의 쾌감이다. 그러니까 기쁨의 '희'에서 불쾌감은 만족의 지속을 위해 불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자발적 불쾌'라 한다. 이 '자발적 불쾌'가 있을 때 '쾌'는 깊어지고 길어진다. 즐거움은 쉽게 휘발되지만 기쁨은 오래 지속되는 이유이다.
4
높은 초봉을 좇지 말고, 배움을 좇아라. 그는 투자 경험 자체를 최고의 배움으로 여겼다. 조기 커리어에서는 많은 경험과 배움이 정기적인 자산이 될 수 있었다.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질문하면서, 그는 "멸종 위기에 놓인 인간 다운 삶을 구출하라"고 말한다. 대면 소통부터 길잡이의 감각까지, 경험의 순간을 되찾기 위한 광범위한 지적 성찰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쉽고, 마찰 없고, 실체 없게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지금, 이 책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다.
우리의 일상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챗GPT에게 문서 요약을 맡기고, 비대면 미팅 플랫폼을 통해 소통하고, 쇼셜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일상을 업로드 한다.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으며, 이제는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인간의 직접 경험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된다 고 여겼던 핵심적인 직접 경험들, 예컨대 대면 소통이나 손으로 쓰고 그리는 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순간과 공공성을 감각하는 일 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디지털 기술을 잃기 보다는니 후각을 포기하겠다는 10대, 3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동영상 시청자, 투표권대신 쇼셜미디어를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대중문화, 과학, 정치, 법률을 망라해가며 경험이 소멸해가는 21세기적 현상을 설명해낸다.
자연은 우리들 곁에서 노래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귀머거리가 되어,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한다. 전자제품을 통해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소리에 익숙해져, 정작 우리를 부르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식이 경험을 통해 지혜가 될 때, 일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자연의 노래를 듣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배철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이유로 든다.
- 하나는 자연이 노래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인간은 오감으로 경험한, 자신에게 익숙한 것 만을 들으려 한다. 그것 이외에는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야 한다. 진정한 부자는 부산을 떨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요한 시공간을 자기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가난한 자는 주위의 소음에 익숙해져 중독된 사람이다. 신비한 소리는, 그것을 경청하고 자는 간절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만 들린다. 이 소리는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예술과 다르다. 소리는 동일한 것을 반복하지 않는다. 자연 속 깊은 속에서 생겨난 소리는 무한하게 다양하여 그 무엇을 흉내 낼 필요가 없다. 그 차디찬 독창성이 우주의 언어로 내 심연을 흔들어 놓는다. 세상의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눈이 덮인 히말라야 산맥에서 조용히 걸어 다니는 검은 호랑이 발자국 소리다. 인간의 심연을 울리기에, 그것 자체로 진리다. 한 여름에 깊은 산 속의 정 집에서 듣는 빗소리는 심포니이다.
- 둘째, 자연에 나와 조용히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만일 우리가 이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의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 한참 침묵을 연습해야 한다.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이 소리의 출처는 신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단테가 <인페르노>에서 한 언덕을 올라가면서, 오른 발은 위로 내디뎠지만, 왼 발은 힘이 빠져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른 발이 호기심과 지성이라면, 왼발은 의지와 추진력이다. 두 발이 다 필요하다.
5
돈이 목적이 아니어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는 '재미' 있어서 투자했다고 말하였다.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을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접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과 접속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각의 차이만 만들어 낸다. 차이의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고 의미가 된다. 반대로 감각만이 늘어나는 게 중독이다. 이를 피하고, 하루가 재미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미숙의 주장이지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목적론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상이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잃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 살겠다는 목적론이 문제이다. 매일의 일상은 리듬을 타야 한다. 일상이 그 목적에 종속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냥 주저 앉게 된다. 매일 매일을 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유, 행복을 오늘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지유와 행복을 위한 액션을 취하는 거다.
▪ 그리고 시간에 리듬을 탄다. 이 기술은 노년에 더욱 필요하다. 메 순간을 나 스스로 과정으로써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 자연 그리고 내가 늘 만나는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 소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고 있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켜 나에게 맞는 물건을 고쳐 사용하면, 신상품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를 프랑스에서 '브리콜라주'라 한다. 그러면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거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생명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활동으로써 웃음과 이야기를 연마하고, 내면에서는 어제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그 지성으로 내적인 충실함과 외적인 활동이 리듬을 타야 한다. 고미숙은 이런 일상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명랑하고, 지혜로워라!"
오늘은 달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로 빠졌다. 그러나 오늘 공유하는 시는 다시 달이 주제이다.
달 같은 사람 하나/홍윤숙(1925∼ )
달 같은 사람 하나 어디 없을까
보름달 아닌 반달이거나 초승달 같은
어스름 달빛처럼 가슴에 스며오고
흐르는 냇물같이 맴돌아가는
있는 듯 없는 듯 맑은 기운 은은하게
월계수 향기로 다가왔다가
그윽한 눈길 남기고 돌아가는
큰소리로 웃지 않고
잔잔한 미소로 답하고
늘 손이 시려 만나도 선듯
손 내밀지 못하는
그럼에도 항상 가슴에
따듯한 햇살 한 아름 안고 있는
그런 사람 세상 끝에라도
찾아가 만나고 싶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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