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시대 변화를 그저 정치·경제·사회의 틀로 분석하기 바쁘지만 이 셋을 모두 아우르는 큰 우산은 다름 아닌 문화다.
어제부터 이면우 시인의 시를 공유하고 있다. 난 예순이다. 이 시인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다. 오늘 아침 시는 아마 그가 자신의 나이 "쉰"에 쓴 시 같다.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맨 마지막 구절에서 가슴에 빗금이 그어진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따끈한 국밥 한 그릇 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작가들은 언어에 아주 민감하다. 소설가 백영옥은 이번 주 글에서 영화 <올 더 머니>의 한 대사를 소개하였다. "'부자로 사는 법'을 썼을 때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꾸라고 하더군. '부자가 되는 법으로'. 그래서 내가 그랬네. 부자가 되는 건 쉽다. 하지만 부자로 사는 것, 그건 이야기가 달라. 부자가 된 사람은 자유가 주는 문제와 싸워야 하거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 심연이 펼쳐지지. 나는 그 심연을 봤네. 사람들을, 부부 관계를, 그 무엇보다 돈이 주는 자유가 자식을 어떻게 망치는지."
'부자로 사는 법'과 '부자가 되는 법'은 다르다. 소설가 백영옥에 의하면, 돈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자유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실제로 사업에 성공해 큰 부를 이룬 어느 한 지인에게 돈이 많으면 뭐가 좋은지 물으니, 은퇴한 그의 대답은 의외로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부의 결과는 좋았으나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돈을 벌어 욕망을 실현하는 기쁨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의 자유가 더 좋다 말했다 한다.
소설가의 주장처럼, 돈에 대한 건강한 관심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늘 관성적으로 던졌던 '부자 되는 법'이라는 질문을 한 번쯤 바꿔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부자로 사는 법'이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한 주간 모아 둔,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문장들을 공유하기로 했는데, 어제 아침은 일요일인 줄 몰랐다. 그래 오늘 아침 한 주간 모은 것들을 공유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지난 번 아산의 영인산에 가, 그곳의 산림 박물관 옥상에 피어 있는 개망초를 찍은 것이다. 줌으로 잡은 것이다.
오늘, 쉰이 되었다/이면우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 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 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다음은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본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사진, 시 그리고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1. 뉴딜은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뉴딜은 일거리를 마련하고, 그것으로 생태계를 생성하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순서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냥 일자리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2. 에콜로지(생태학)을 실천하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으려면, 메뉴를 자신이 고르고 자기 집 용기를 가져가고, 거기다 담아 달라고 해야 한다. 이런 용기가 없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3. 티베트에 사는 어느 노 스님이 어느 겨울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했을 때 놀란 사람 사람들이 아무 장비도 없이 그 험준한 산을 넘어 왔느냐고 물었더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라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는 일도 다 그렇다,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이 삶이다.
4. 야만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편하고 배부르면 그만이다. 후세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문명은 내일을 생각한다. 당장 불편하고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감내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생각이다.
5. 김누리(60)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한국사회 비평이다. 대한민국이 외형적으로는 번듯해 보이는 나라가 됐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곪아가고 있는데도 국민도 모르고, 지도자들도 짐짓 외면하면서 점점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을 개탄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를 "정치 민주화만 됐지, 사회·경제·문화 민주화는 전혀 안 돼 있는 '포스트 파시즘'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 세계적 정신혁명인 '68혁명'을 우리만 비껴갔기 때문으로 봤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을 일컫는다.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등 보수적인 가치들을 대체하는 평등, 성 해방, 인권,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등 진보적 가치들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떠오른 전 세계적 정신문화혁명으로 이어졌다. "68혁명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모든 억압으로 부터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한국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체계는 세계사적으로 50년 뒤처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6. 로버트 풀검이라는 시인의 인생 신조는 다음과 같이 6개라고 말하였다. (1)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 (2) 신화가 역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3) 꿈이 현실보다 더 강력하다. (4) 희망이 항상 어려움을 극복해 준다고 믿는다. (5) 슬품의 치료제는 웃음이라고 믿는다. 슬플수록 더 많이 웃으려 한다. 인상 쓰지 않고, 항상 웃으려 한다. (6)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 사랑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7. 자기가 보지 않은 사실을 상상하는 건 자유이지만, 그 상상을 사실처럼 남 앞에서 떠들면 '뇌피셜'이 된다. '뇌피셜'이란 뇌와 오피셜(official, 공식 의견)의 합성어로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사실이나 검증된 것 마냥 말하는 행위'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자신의 뇌 세포들만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이건 정말 위험한 발언이다. 내 아버지가 그러셨다. 실제 보지 않고, 늘 상상으로 건너 집다가 '팔이 부러지셨다'. 이건 편견이고 아집이기도 하다.
8. 돈은 재능 있는 일로 벌고,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기면 평생이 즐겁다. 나는 와인 파는 게 내 돈 버는 일이고, 글쓰기가 취미이다. 글쓰기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자유롭게 즐기는 감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란 감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직업은 돈 버는 일이다. 돈 버는 건 그게 어떤 형태든 반드시 괴롭다. 영업 활동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낯선 환경의 설렘도 있지만, 여행은 기본적으로 소비활동이 때문에 즐겁다. 소비가 아니라 돈을 버는 일은 괴롭다.
9. 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 좋다. 어떤 행동을 시킬 때 꼭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시킬 필요가 없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가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가벼운 부탁을 한다, 그 다음 그걸 보상하는 식으로 하면 친해질 수 있다. 세상 일에는 정공법만 쓰면, 안 풀리는 문제가 많다. 곳이 곧 대로 해서 잘 풀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럴 땐 약간 비틀어 보는 여유와 융통성이 필요하다. 원하는 걸 얻는 부탁에는 좋은 기술들이 있다. 정공법만 쓰다 보면 안 풀리는 문제가 많다.
10 모두 코로나 이후 세계를 예측하고 대비하느라 '언택트' '뉴 노멀' 등을 들먹이며 분주한데 정작 문화에 관한 담론이 너무 없다. 우리는 시대 변화를 그저 정치·경제·사회적 틀로 분석하기 바쁘지만 이 셋을 모두 아우르는 큰 우산은 다름 아닌 문화다. K 방역과 K 정치가 자연스레 K 문화로 이어져야 더 확실하고 장기적인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하와이대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는 우리에게 "더 이상 선진국을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선도 국가가 돼라"고 주문한다. 문화는 사회 변화의 귀결보다 그 선봉에 섰을 때 때로 훨씬 막강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코로나 이후 세계를 선도할 대한민국 문화 슬로건 창제를 주문한다.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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