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진정한 겸손은 '남을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 이 두 가지를 담고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아니다 #이정록 #험블브래그 #잘못된_겸손의_기술 #여유 #향유

274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4일)

"험블브래그(humblebrag)"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겸손'을 뜻하는 humble과 자랑을 뜻하는 brag를 합친 단어로, 겸손한 척하면서 은근히 자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헤리스 위틀스(Harris Wittels)가 만든 용어이다. 일종의 '겸손 떠벌리기'이다.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뭔가를 해내고,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을 떠벌리는 것은 오히려 허풍보다 더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다. 사람들은 성과를 이룬 일에 대해 불평을 떠뜨리면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 세미나는 또 수강생들로 가득 참. 수강료를 올렸는데도 말이야. 나는 이렇게 북적대는 강의가 싫은데"라고 SNS에 올리는 거다. "잘못된 겸손의 기술"(헤리스 위틀스)이다.

진짜 겸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박하게 절제하고 그 겸손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남을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 이 두 가지를 담고 있다. 그래 <겸손은 힘들다.> 이 말은 내가 틈나는 대로 듣는 Youtube의 김어준 방송 제목이기도 하다.

진짜 겸손은 강해 보이려고, 능력 있어 보이려고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거다.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기 마련이다. 그저 단단한 땅위에서 자신이 가진 보폭과 자신의 속도대로 걸어가는 거다. 우리는 자신의 속도로 살아야 건강하다. "삶이란 스스로의 속도로 자신만의 풍경을 얻는 과정이다. 그제야 마음이 번잡할 때마다 내가 산책을 나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빠른 세상에서 내게 휴식을 주는 게 ‘걷는 속도’로 바라본 풍경이었던 것이다. (…) 우리에겐 고유의 리듬이 있다. 분명한 건 속도를 늦춰야 비로소 보이는 ‘사각 지대’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필요가 아닌 내 필요에 종종 보폭을 맞춰야 한다." (백영옥)

아니다/이정록

채찍 휘두르라고
말 엉덩이가 포동포동한 게 아니다.

번쩍 잡아채라고
토끼 귀가 쫑긋한 게 아니다.

아니다.
꿀밤 맞으려고
내 머리가 단단한 게 아니다.

오늘 아침은 '여유(餘裕)'에 대해 사유를 해 본다.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또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반대말은 '결핍'. '모자람, 분주함', '초조함' 등이다. 여유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거나 시간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유라는 개념은 자신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의 반대말인 결핍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원인이 있다. 그리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려면 자신이 지금 무엇에 쫓기고 있는 지부터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 진다.

노자는<<도덕경>> 제 48장에서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라는 말을 한다.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라는 뜨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  '도'로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고 싶다. 그러면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을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리고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급증을 덜어내고 싶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중하며 일상을 행복하게 향유하고 싶다.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줄이고, 내 일상을 좀 더 향유하고 싶다.

다음은 아침에 읽은 김기석 목사의 글이다. "분주함이 사회적 신분에 대한 표징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한가로움은 덕이 아니라 게으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이다. 가속의 시간에 적응하며 사는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품 앞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니,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동안 향유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향유’(frui)와 ‘사용’(uti)을 구분한다. 사용이 대상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면 향유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다. 향유는 가장 온전한 사랑함이다. 향유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타자들과 허물없이 순수한 사귐은 불가능 해진다. 사용할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의 가늠자로 삼을 때 사람은 욕망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는 행위도 여러 층위가 있다. 의지와 욕망이 개입되지 않았지만 눈에 그냥 보이는 현상이 있는가 하면, 보려는 의지가 개입된 지각 활동도 있다. 어떤 경우든 본다는 것은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과거의 경험과 기억과 관련시켜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널리 알려진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는 말도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시각 정보에 갇히지 않고 그 정보 너머의 세계를 보는 것을 일러 통찰이라 한다.

풀 버전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