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31일)
1
내 채마밭의 대파처럼, 오늘 아침은 머리가 무겁고 심란했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말을 생방송으로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기레기와 일부 사람들이 내 페이스북을 온통 장식하고 있었다. 원래 토요일은 '나이듦 기술'에 대한 사유를 하는데, 내일로 미뤘다. 내 눈에 유시민 작가가 설난영을 비난한 것은 여혐을 한 것이 아니라, 노조를 혐오한 설난영씨를 비판했던 것이다. 인문 운동가로서, 유시민 작가를 위한 변명을 한다. 무조건 말 꼬투리를 잡고 비판하기 전에, 맥락을 읽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합목적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거다. 그걸 모르면, '아무 말 잔치"를 하게 된다. '여성 비하' 라느니, '노동자 무시' 라느니 말한다. 설난영의 말을 먼저 따져 본다. 설씨의 경우, 노동운동가 출신인데 노조를 비하하였다. 그리고 다른 유력 후보자의 부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건 합목적적으로 보면, 남편의 표를 깎는 애기이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했다면 그건 남편의 선거에 승률을 높이는 활동이 아니다. 우리가 잘 보았다시피, 김문수 후보도 온통 이재명 후보만 비방했다. 선거전 전체가 네거티브로 일관했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그 부부는 부인할 수 없는 변절자이다.
유시민의 화법은 '내재적 접근법'이다.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는 거다. 최근 나의 화두는 '입장'이라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처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성경에서 하느님이 하신 첫 질문이 "아이에카(ayyeka)"이다. 이 말은 '너 어디 있느냐?'이다. 이 질문은 인간에게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있다는 뜻을 품고 있다. 논란이 된 유 전 이사장 발언은 지난 28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방송에서 나왔다. 유 전 이사장은 “설씨가 생각하기에는 김문수씨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다.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며 “그런 남자와 혼인을 통해 내가 조금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자기 남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유 전 이사장은 그러면서 “국회의원 사모님이 되고 경기도지사 사모님이 됐으니 더더욱 우러러볼 것”이라며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씨 인생에서는 갈 수 없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며 “영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여성 일반에 대한 힐난이고 여성 혐오 발언이라 한다. 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엘리트주의”(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기혼 여성의 지위와 주관은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부속품에 불과한가. 여성과 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학력에 대한 비하”(한국여성의전화) 등 비판이 제기됐다.
2
페북에서 만난 다음 글을 오늘의 시 대신 공유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사람을 잃는가/강미정
요즘, 말이 참 무섭습니다.
앞뒤는 잘리고, 맥락은 지워집니다.
진실보다 분노가 더 빨리 퍼집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신뢰가
조각난 말 한 토막에 무너집니다.
유시민.
1980년대 민주화의 거리에서
지식인의 양심을 지키려 애쓴 사람,
권력이 아니라 상식의 편에 서려 했던 사람.
이명박 정권의 탄압 앞에서도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던 그 시절,
우리는 유시민의 말에서
희망을 읽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 유시민이
이제 ‘여성 비하’, ‘노조 혐오’라는 프레임에 몰립니다.
“노조는 못생겼고, 나는 예쁘다.”
이 발언은 유시민이 한 말이 아닙니다.
설난영 씨가 직접 한 말입니다.
유시민 작가는 그 발언의
맥락을 풀어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왔는지,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마음의 기록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해준 것입니다.
비난이 아니라 이해로 접근하는 것,
판단이 아니라 느낌과 여운으로 전하는 말—
그것이 바로 유시민다운 방식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성찰의 언어를 듣지 않습니다.
의도는 지우고, 말은 왜곡하며,
‘그 말에 동조했다’라는 식으로 몰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잔인하게 사람을 소비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걸까요.
한국노총은 설난영 씨의 그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 논평을 냈습니다.
비판의 대상은 유시민이 아니라 설난영 씨 였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여성 혐오’나
‘노조 비하’를 바로잡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정치적 프레임입니다.
유시민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사회가 더 나아지기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그 한 마디, 편집된 장면 하나로 잃어서는 안 됩니다.
진보는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그래서 더 먼저, 더 잔인하게
‘내 사람’부터 도려내는 풍경.
그 풍경 속에서는
아무도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진보는 더 날카롭되 더 따뜻해야합니다.
우리가 그의 말 너머를 들으려는 마음을 잃는 순간,
진보의 품격도 함께 잃게 될 것입니다.
3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는 것은 노동자였던 김문수와 설난영이 아니고, 변절하여 보수 쪽으로 간 이후의 그들의 인간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국힘과 반동 언론이 유시민 작가를 씹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권영국 후보 마저 얼토당토 않은 비난 행렬에 가담하였다는 것이다. 설난영의 문제적 발언이 먼저이다. 설난영 여사는 “나는 법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김헤경 여사를 사실상 저격하고, “제 남편 김문수 후보는 돈을 두려워하는 참 깨끗한 사람이다”라고 자랑했다. 그러자 언론들이 김문수 후보가 경기도지사 때 사용한 법카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할 때, 노동부 장관을 할 때 사용한 법카를 거론하며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국민의 힘 포항 북 당원 협의회 사무실에서 했던 간담회 발언이 알려졌다. “저 노조의 ‘노’자도 몰라요. 제가 노조 하게 생겼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청중은 “아뇨”라며 웃었다. 설씨는 1970년대 말 세진전자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이다. 설씨는 이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때 노조는 아주 그냥 과격하고, 세고, 못생기고”라며 “저는 반대되는 사람이거든요. 예쁘고, 문학적이고, 부드럽고, 네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노조를 접하게 됐단 말이죠”라고 말했다.
4
김문수 후보의 부인 설난영은 이런 사람이라 한다. 정종훈이라는 분의 페북 담벼락에서 옮겨왔다. 나는 설난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 그녀는 젊은 시절 세진전자 노조 위원장이었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녀의 과거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는 노조를 ‘아주 과격하고 세고 못생긴’ 것으로써 비하했다. 이는 과거의 자기 정체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말이었다.
▪ 반면 그녀는 자신을 ‘예쁘고 문학적이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미에 대한 기준을 보편화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일반인들이 판단할 성격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 자의식을 지니는데, 이를 누가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전후 문맥은 분명 여성 노동 운동가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대입하면, 세진전자 노조 위원장 시절의 그녀는 분명 ‘과격하고 세고 못생긴’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녀가 과거를 애써 덮고, 현재를 미화하려는 이유가 아닐까.
▪ 그녀는 남편 김문수에 대해서 ‘청렴하고 유능한 사람’이라 말했고, 김문수 후보는 아내 설난영에 대해서 “설난영이 곧 김문수, 아내와 나는 동급”이라 말했다. 남편과 아내, 부창부수라 했다. 어느 부부가 그렇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문수 후보를 보자. 그는 윤석열의 계엄과 내란 상황을 사과하지 않은 유일한 국무위원이었다. 그는 지금도 윤석열을 정리하지 못한 채, 윤석열과 그의 지지 세력에게 후광을 받으려 하고 있다. “윤석열이 곧 김문수, 윤석열과 나는 동급”이라 해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설난영은 "윤석열이 곧 설난영, 윤석열과 나는 동급"이라 할 수 있다. 그녀 역시 윤석열 내란 세력의 일부이자 주체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 지금 설난영에 대한 유시민의 대담이 설왕설래다. 유시민을 비난하거나 변명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김문수 후보의 말 대로, 인생에서 갈 자리, 못 갈 자리는 없다. 누구든 살아있는 존재라면, 동일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조건이 바뀌고, 자신의 마음조차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발전적으로, 어떤 사람은 답보상태로, 또 어떤 사람은 퇴행적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변화하는 법이다. 설난영, 그녀가 간 자리, 그녀가 반세기를 살며 이루어 낸 자리는 과거의 자기 정체성을 부인하는 자리, 자기 후배 여성 노동자들을 폄하하는 자리, 변절의 자리, 그래서 기득권자로서 누리는 자리라 할 것이다. 지금 그녀는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최고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번 선거는 정상적이라면 2년 뒤에 치러져야 할 선거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계엄을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한 것이 내란의 모든 과정으로 여실히 드러나서 헌재에 의해 파면 당함으로써 치르게 된 비정상적인 선거이다. 비정상을 초래한 내란당은 처음부터 후보 자격을 박탈 했어야 하는 선거이다. 그런데도 내란당의 후보로 나온 극우 배경의 김문수 후보가 부동의 지지층 30%를 유지하는 자체가 비정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선거는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최소한의 과제일 것이다.
5
지식의 소유는 집착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집착으로 변한 지식은 자연을 파고하고 다툼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식은 인간의 비교 분별로 문명에는 도움이 되나, 불행과 부자유의 근원이 되기 쉽다. <<도덕경>> 제20장의 첫 문장이 "絶學無憂(절학무우)"이다. '배움을 중단하면 근심이 없어진다', 아니 '배움을 끊어야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 언뜻 보면 공부하지 말라는 말 같다.
배움(學)은 <<논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사람의 도리를 깨우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노자는 반대로 이것을 끊으라고 말한다. 한참 생각을 했다. 사실 <<논어>>가 제시하는 세계관에서는 '학'이 중심 역할을 하고, <<도덕경>>이 제시하는 세계관에서는 '도'가 중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도덕경>>에서 '학'을 부정하여 절학(絶學)할 것을 요구하고, <<논어>>를 신봉하는 쪽에서는 상도(常道)를 제한하여 가도(可道)화 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배움'은 어떤 확정된 방향이나 전통으로 확립된 내용을 모방하고 견지하는 형태의 앎이다. 이런 형태의 배움은 성인을 말씀으로 전해지는 학습 내용을 계속 모방하고 반복해서, 전통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경지까지 도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보태진다는 거다(僞學日益, 위학일익). 반면,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매일 비우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48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말을 번역하면, "배움이라 함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라 함은 날마다 던다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無爲)에 이르게 된다. '무위'란 '하지 못하는 것(불위, 不爲)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 한다면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다." '도'를 닦는 것은 나날이 지식 또는 분별을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비움이 지극해지면, 평화로워 지고 무위하여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지식은 밖에서 오고, 도는 안에서 온다.''
여기서 '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비우며 살자. 욕심내지 말자. 그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덜어내고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고, 무위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위'가 아니라 '무불위(되지 않는 일)'라는 효과를 기대하는 거였다.
어쨌든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롭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러다 결국은 더 이상 맑은 물이 샘솟지 않게 된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자꾸 비워야 영혼이 맑아진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느리게, 편안하게, 천천히 생을 만끽하며 그냥 시시하게 살리라. 노자에 따르면, 배우면 생활의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심만 늘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노자는 지식을 날마다 덜어냄이 행복의 길이라 말하는 거다. 그렇지만 할 말은 하고 싶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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