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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겸손과 절제의 태도에 관한 문화사 이야기 (2)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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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5월 28일)

어제에 이어 겸손과 절제의 태도에 관한 문화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은 중세 기사도 정신과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 젠틀맨의 등장까지 살펴본다. 중세 시대 기사들의 미덕은 주로 궁정 문학에서 등장했다. 기사는 나약한 사람을 보호한다. 그들은 친절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기사도의 핵심은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겸손이었다. 또한 정중함과 앞에 나서지 않는 신중함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됐다 이와 같은 토대위에서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스스로를 낮추고 절제하며 품위를 지키는 기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무라이 정신도 기사도와 비슥한 도덕적 규범을 가진 통념이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무라이는 일본 황제나 쇼군을 위해 헌신하는 고위급 군인으로 '보호자' 혹은 '봉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늘 말없이 조용했지만 기사들처럼 용기와 공정함, 공손함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예의를 지키는 겸손함을 그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어 겸손함의 진수가 영국 신사들, 젠틀맨(gentleman)이다. 그들은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지만 개성 있고 고상한 이미지를 풍기는 외형과 건전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과도한' 것은 그게 뭐든 모두 낯설다. 그들은 1등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스팅(Sting)의 노래, <Englishman in NewYork)>에 나오는 "젠틀맨은 걷지, 절대 뛰지 않아"처럼 말이다.

영국에서 젠틀맨이라고 불리던 계층은 전통적으로 상류층 출신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젠틀맨이라는 개념은 계급적 구분이라 기보다는 어떤 특성과 태도와 연관 지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젠틀맨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은 그 사람의 사회적인 배경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를 묻는 것이다. 정중함, 자기 통제, 자기 풍자(아이러니)의 매력 그리고 겸손함이 그들이 가진 공통된 태도였다.

정중한 태도에 방점을 찍는다. 그 반대가 경솔함이다. 노자 <<도덕경>> 제26장은 "重爲輕根(중위경근) 靜爲躁君(정위조군)"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안정된 것은 조급한 것의 머리가 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은 원심력의 속성이 있다. 반면 인간의 본성은 구심력(중력)의 속성이 있다.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려 하기 때문이다. 원심력을 타고 자신의 본성을 이탈하려는 욕망을 중심 쪽으로 끌어내리려고 절제하는 태도가 정중함이다. 이 말에는 '자기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소중히 하다'라는 뜻이 아닐까? 그러니까 경솔한 행동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가볍게 날리면 안 된다. 자기 규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자중'하지 못하면, 중후하고 찰 진 토양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푸석푸석해져 풀풀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솔은 바로 '조급(躁急)'과 '초조(焦燥)'를 낳기 때문이다. 조급은 '참을성 없이 매우 급한 거'다. 초조는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성인은 하루 종일 움직여도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젠틀맨은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거다.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 거다. 신중하고, 자중하는 길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절제는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참는 것이다. 고대에 군주가 궁궐 밖으로 행차를 할 때는 항상 군주가 탄 수레의 뒤에 치중이라는 무거운 짐수레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군주는 항상 신중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단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고 고요한 것은 조급한 것의 임금이다." "가벼우면 근본을 상실하고 조급하면 임금 자리를 잃는다." 자중한다는 것은 지구의 중력과 함께 하며, 우주의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젠틀맨은, 요즘처럼 신경이 날카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누리지 못하는 뭔가를 갖고 있다. 바로 여유와 평온함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을 잡아먹는다. 끊임없이 서두르는 사람만이 뒤쳐지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빠른 것이 대세이다. 모든 게, 더, 더, 더 빨라야만 한다. 단축되고, 압축돼야 하며, 즉시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젠틀맨은 이런 흐름과는 다른 삶을 산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압박을 받지도 않는다. 주변으로부터 관심을 끌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내적 가치를 이미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존경심을 안고 대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정한 만족스러운 위치가 따로 있기에 사회적, 물질적 성공을 위한 전략적인 계획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젠틀맨 정신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이상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 계층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젠틀맨은 눈에 띄려고 하지 않으며, 선동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모든 것들과 완전히 결별한다. 이런 점은 소위 '댄디'라 부르는 멋쟁이들 과도 차이가 있다. 댄디한 이들도 예의가 바르고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들은 주위를 끈다. 댄디는 자신을 세련되게 꾸미는 것을 추구하지만 젠틀맨은 보이기 위해 꾸미지 않는다.

그리고 젠틀맨의 반대가 '꼰대'이다. '꼰대'라는 말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 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에 대해서는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와 프랑스어 '꽁뜨(comte, 백작)'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프랑스 식으로 발음하면, 꽁뜨인데, 이를 "콩테"라 읽으면서 이를 일본식으로 다시 바꾸어 '꼰대'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를 수여 받으면서 스스로를 '콩테'라 불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완용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그 속에는 친일파들이 보여준 매국노와 같은 형태를 '꼰대 짓'이라 했다는 것이다. 인문운동가로 나는 이 '꼰대'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매너의 부재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변에서 ‘꼰대’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꼰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고리타분한 어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를 ‘겉늙은 녀석’, ‘애어른 같은 녀석’이라고 부르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꼰대’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꼰대’들의 특징은 공감능력의 부재로 인한 소통 장애자들이다. 그들은 자기가 만든 세상 속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의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은 ‘난 그러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해봐서 안다.’ 등이다.

문제는 ‘꼰대’를 탈출시키는 매너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매너는 한순간에 습관화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도록 평소에 꾸준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좋은 매너는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좋은 매너를 가진 사람은 남을 생각해주는 마음, 나로 인하여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매너의 실천은 한 사람의 인격을 완성하는데 공헌하며, '꼰대'를 벗어나는 길이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매너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매너를 단지 ‘비즈니스상의 처세’라고만 알고 있다. 따라서 ‘매너’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친절, 서비스 강사들의 인위적인 웃음’이나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의 거들먹거림'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매너'는 ‘단순한 겉치레’로서의 매너가 아니라 ‘인성과 일상적인 삶의 태도’로서의 매너이다. 가공된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좋아하고, 비범함보다는 평범하기를 추구하고, 거짓으로 무장하기보다는 진실 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진짜 매너이다. 이러한 매너를 습관처럼 몸에 익혀 ‘꼰대’를 벗어나는 길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제시해 본다.
▪ 항상 밝고 웃는 표정을 지닌다. ‘꼰대’들의 다음과 같은 5대 표정은 ‘꼰대’의 표정이다. ‘포커페이스’ 같은 무표정, 의심스럽게 쳐다보거나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표정, 눈이 마주쳤을 때 바로 먼저 피해버리는 경우의 표정, 대화할 때 아무 감정 없어 보이는 무덤덤한 표정, 곁눈질 또는 내려다보거나 흘겨보는 표정.
▪ 사람을 만나면 정감 있는 인사를 한다. 인사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 자에 일 '사(事)'자로 이루어진 말로 '사람이 하는 일'을 의미한다. 바람직한 인사는 내가 먼저하고, 가능한 자주하고, 올바른 자세로 인사하는 것이다. ‘꼰대’들은 인사를 잘 하지 않고, 바른 자세로 하지 않는다.
▪ 호감 가는 말씨와 남의 말을 잘 듣는 대화를 한다. 대화의 3가지 원칙은 "S-L-L" 즉, Stop(멈추어라), Look(보아라), Listen(들어라)이다.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어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한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여야 하고 상대가 말을 할 때는 또한 그의 눈을 바라봄으로써 관심을 표명한다. 대화에서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꼰대’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 단정한 복장과 깨끗한 용모를 유지한다. 멋진 차림새는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에 맞게 옷을 입는다. 그리고 색의 조화를 맞추어 입는다.
▪ 바르고 절도 있는 자세와 동작을 갖는다. 아름다운 자세나 절도 있는 동작에서 나오는 행동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꼰대’가 아닌 ‘신사’가 되려면 위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평소에 습관이 되도록 매일매일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운명도 바뀔 것이다.

금란시장/함민복

좌판의 생선 대가리는
모두 주인을 향하고 있다
꽁지를 천천히 들어봐
꿈의 칠 할이 직장 꿈이라는
샐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

"대양을 누비며 헤엄치던 신사들이 삼삼오오 좌판에 모였군요. 구름처럼 모여서 군무를 출 때처럼 머리를 가지런히 한쪽으로 두었군요. 많은 직장에서 정장이 사라지고, 노타이가 유행해도 주식회사 바다에선 아직도 복식 규정이 엄격하군요. 꽁치 넥타이, 고등어 넥타이, 삼치 넥타이가 반듯하군요. 파도와 싸우며 플랑크톤을 월급으로 받던 샐러리맨들이 고단한 몸을 뉘였군요. 수산시장 아지매는 빨간 고무장갑 끼고, 비닐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화 신었어도 넥타이 신사들을 척척 잘도 다루는군요." 반칠환 시인의 덧붙임이 더 시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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