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3일)
어제는 나는 <<도덕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제25장을 읽다가 멈추었다.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말 그대로 하면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 온다'는 말에서 멈추었다. 노자는 도를 억지로 개념화하여 '크다'고 하는데, 이 '크다'는 말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전체 우주의 존재 원칙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전체는 가만히 있는 정지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부단한 운동 속에 있다고 보았다. 또 하나 빠뜨리는 곳이 없는 부단한 우동을 방향은 먼 속을 향하여 있는데, 이는 어떤 극한을 향하여 간다는 뜻으로 보았다. 사물의 발전은 극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그 극점에 이르러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거다 이것이 노자가 보는 전체 자연의 운행 모습이었다.
'대(大)→서(逝)→원(遠)→반(反)'은 전체 운행의, 즉 도의 운행을 나타내는 전략 아래 동원된 유기적 의미 연관 고리들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도가 마치 하나의 물건과 같이, 비록 원형이나 리듬성, 귀환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도는 혼돈의 무엇이며, 독립 주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에 잡힐 수 없는 무형, 무명의 전체이다. 따라서 그 전체의 방향성은 원형이라 할지라도 단선으로 표시될 수는 없다. 순환을 반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닌 창조의 리듬이다. 순환이 없는 창조는 없다.
나는 순환에 주목한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다.
좀 어렵지만 '비우자'는 말이다.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힘으로 욕망의 재배치를 하자는 거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노자의 말 중에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반대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순환이다.
우리의 에너지도 기(氣)와 혈(血)의 순환으로 공급되며, 우리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그 순환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항상 일정한 리듬을 타고 순환하는 것이지만,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계절의 순환도 마찬가지이다. 노자의 언어는 대(大, 큼)에서 '반(反)으로 끝난다. 시작과 끝이 없다. 그렇다면 진보는 없는 것인가? 이 문제는 내일 사유를 더 이어간다.
요즈음 길가에는 찔레꽃이 만발했다. 향도 강하다. 찔레 동생이 '달래'란다. 몽골에 잡혀간 언니 찔레가 동생이 보고 싶어 찾아왔건만, 이미 죽은 뒤였다. 찔레는 자신의 동생인 달래의 눈덮힌 무덤가에서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그 이듬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었고, 그리움이 찐한 향기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 찔레꽃은 하얗고, 향이 진하다. 그래 찔레 꽃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김용택 시인의 <봄날은 간다>의 일 부분이다. 시인은 이렇게 찔레꽃을 말하고 있다. "찔레꽃//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사내 손목을 잡아끌고/초저녁/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둥근 달을 보았느니라/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내가 알고 있는 찔레꽃 노래는 여러 개이다. 옛 가수 백난아가 부른 소위 '뽕짝", 트로트이다. 주현미도 이 노래를 잘 부른다. "찔레꽃 붉게 피는/남쪽 나라 내 고향/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학창시절 막걸리 주전자를 놓고 소리 높여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다시 불러 보니 가사가 이상하다. 붉은 찔레꽃을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유학시절에 즐겨 들었던 장사익의 <찔레꽃>도 있다. 슬픈 노래이다. "하얀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 언젠가 그의 콘서트 장에서 들었던 멋진 기타 반주가 지금도 아련하게 들린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동요 <찔레꽃>도 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이연실이라는 가수도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유튜브로 금방 이 노래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찔레꽃 식당/이안
오월이 되자 숲속 동네에
찔레꽃 식당이
새로 문을 열었다
하얀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
손님이 많이 들게 생겼다
첫 손님 거미는
거미줄로 의자와 식탁을 짜 놓고
어서 싱싱한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문 열 준비를 하는
찔레꽃 식당 2호점, 3호점, 4호점……이
이웃에 줄지어 많고도 많으니
5월 한 달은 찔레꽃 식당 골목에서
밥을 대어놓고 먹어도 좋겠다며
주방의 손길이 재바르지 않아
밥이 좀 늦는 게 흠이긴 하지만
하얗고 달금한 향이
이만큼 가득한 식당은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겠다며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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