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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제15괘인 <지산 겸(地山 謙)> 괘를 읽는다.

325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21일)

1
나는 지금도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더니 내가 찍은 사진에 만족할 때가 많다. 사진 찍기는 인물 사진과 풍경 및 일상 사진으로 나뉜다. 나는 인물 사진은 잘 안 찍는다. 초상권이 있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늘 풍경이나 일상 사진을 찍는다. 특히 꽃 사진을 많이 찍는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늙은 거라 한다. 마음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으면 꽃을 봐도 건성이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이다. 꽃만 보면 사진을 찍는다. 딸도 그런다. "꽃 사진 찍기 시작하면 나이를 먹은 거래." 나도 나이를 먹은 거다. 꽃이 좋다. 길의 모든 꽃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덜 복잡하기 때문일 거다. 난 몇 해전부터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다.

조용헌의 글이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지만,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르구나.' 이 구절에서 '사람은 다르구나'가 의미가 깊다. 우선 사람이 늙어 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몸의 컨디션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인간은 서글퍼진다. 그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꽃은 왜 작년이나 올해나 그 빛깔과 이파리가 똑같다는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어 있다. 꽃의 아름다움과 육신의 늙어감이 대비된다. 이 대비에서 인간은 종교적 순응의 마음을 터득하는 것 같다. 순응해야지 어쩌겠는가. 춘하추동의 순환과 생로병사의 변화를 어떻게 거역한단 말인가. 운명에 거역하면 질질 끌려가지만 순응하면 업혀간다는 말도 있다. 기왕 갈 바에는 질질 끌려가는 것보다는 업혀서 가는 게 좋다. 순응과 받아들임. 이것이 나이 들어 가는 미덕이고 사람이 익어간다는 징표라고 생각된다. 나는 주름살이 늘어 가는데 꽃 너는 왜 그렇게 해마다 싱싱한 것이냐 하는 물음도 결국 인간의 욕심이다. 대자연의 섭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인간의 주관적 관점으로 '철리(哲理)'를 비틀어 보는 셈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이를 도식화 하면, "인-지-천-도-자연"이다. <<도덕경>> 제25장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법을 '본받다'로 해석한다. 그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법(法) 자를 파지하면, 물(水)이 자연스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하 착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도 타인과 다투지도 않는다. 또한 물은 겸허(謙虛)가 몸에 배어 있어 언제나 낮은 곳으로 스스로 저절로 아무 소리도내지 않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법은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박태기꽃'이다. 밥알 모양과 비슷한 꽃이 피기 때문에 '박태기'라 하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 나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 하여 '구슬꽃 나무'라 하고 그리스말로는 'Cercis', 즉 칼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린다 해서 '칼집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매어 죽은 나무라고 하여 '유다 나무'라고도 한다. 


밥알/이재무

 갓 지었을 적엔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으니
서로 흩어져서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 구나

2
오늘은 제15괘인 <지산 겸(地山 謙)> 괘를 읽는다. 외괘가 <곤지(坤地, ☷)>, 내괘가 <간산(艮山, ☶>으로 이루어진 괘를 ‘겸(謙)’이라 한다. 땅 위에 있어야 할 높은 산이 오히려 땅 아래에 있으니,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상이다. 비, 바람 등의 자연현상이 지나치면 재앙을 가져오게 되지만 순하면 만물의 생화작용이 편안하게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세상사도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시기와 질투를 받고 때로는 해로움도 당하지만,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면 만인이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지산 겸> 괘는 일양오음(一陽五陰)괘로 그 체(體)는 <중지 곤(重地 坤)> 괘에 있다. <중지 곤> 괘 '육삼효'가 변하면, <지산 겸> 괘가 되니, <곤괘> '육삼' 효사를 음미해 보자. "六三(육삼)은 含章可貞(함장가정)이니 或從王事(혹종왕사)하야 无成有終(무성유종)이니라" 이다. 이 말은 '육삼'은 빛남을 머금어 가히 바르게 하니 혹 왕의 일을 좇아 이룸은 없지만 마침은 있다'란 뜻이다.

 

<지산 겸> 괘는 '구삼'이 유일한 양이다. 이 '구삼'은 내괘의 중(中)을 얻어 '오효'와 응(應)하는 것도 아니고, 외괘로 나가 '오효'와 비(比)의 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하는 자리에 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보다 부족한 음들로 채워져 있는 주변을 보며 우쭐하기 싶다. 하지만 겸손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를 입게 된다. '구삼'은 권력을 가지 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은 물질을 잃게 될 때 깨닫게 된다. 자기가 가졌던 것을 그저 물질 뿐이었음을. 하지만 <지산 겸> 괘의 '구삼'은 득위한 유일한 양으로서의 군자의 상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낮추기에 부유함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없는 사실도 지어내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외부에 드러내려고  추동하는 PR 과 브랜딩의 세상에서, 분명한 사실도 아닌 것처럼 몸을 낮추며 사는 사람의 태도는 어리석어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진정 크고 높은 사람만이 자신의 허리와 무릎을 굽혀 땅과 가까워질 수 있다. 돈의 액수와 권력의 강도를 자신의 키로 착각하는 사람은 끝이 좋기 어렵다. 인간이 뿌리박고 사는 땅과 갈수록 멀어지니 결국 땅에서 뿌리 뽑힌 채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서괘전>>은 <화천 대유>괘 다음에 <지산 겸> 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有大者(유대자)는 不可以盈(불가이영)이라 故(고)로 受之以謙(수지이겸)하고" 이다. 번역하면, '큰 것을 둔 자는 가히 채우지 못한다. 그러므로 겸으로써 받고' 이다. 큰 것을 둔 자일수록 마음을 비우고 낮추어야 한다. <중천 건> 괘의 '상구' 효사에서 살펴보았듯이, 뉘우치는 용(亢龍)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 겸손하다는 <지산 겸> 괘를 <화천 대유> 괘 다음에 두었다. 크게 가진(火天 大有) 자는 교만하면 안 되니, 겸(地山 謙)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영(盈)"은 '차다, 가득하다'라는 뜻이다. 가득 차 있다는 것은 곧 비우지 못한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덜어내야 채울 것이 생기는 법인데, 마음 안이 자기로 꽉 들어차 있어 타자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교만해 지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사람은 물질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되기 쉽다. 소유가 누리게 해주는 안락과 쾌락, 타인들이 건네는 선망의 시선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 우리가 사는 세계를 관통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골고루 누려야 할 것이 자기에게 몰려왔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 부(富)란 다만 일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변하지 않는 것, 머물기만 하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괘사>는 "謙(겸)은 亨(형)하니 君子(군자) 有終(유종)이니라" 이다. 번역하면,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다'가 된다. TMI: 謙:겸손할 겸, 終:마칠 종. 산과 같이 높은 능력과 지위가 있더라도 땅 아래에 처하듯이 겸손하니,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 또한 어떠한 일이든 잘 마칠 수 있다. 그야말로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는 것이다. <지산 겸> 괘는 땅 속에 산이 들어 있는 상이다. 사람으로 보면 거산(巨山) 큰 인물이 자신을 뽐내는 대신 낮은 곳으로 내려와 공손한 태도와 겸양의 미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군자에게는 "유종지미(有終之美)"가 있을 것이라고 <<주역>>은 말한다. 과정의 영광이 끝의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말처람 쉬운 일이 아니다. 범인들은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이카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의 안타까운 마무리에서 우리는 그것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날마다 성찰하는 자세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지산 겸> 괘의 호괘가 제40괘인 <뇌수(雷水) 해(解)> 괘이다. 어려움이 풀린다는 거다. 겸손함을 갖춘다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4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단왈) 謙亨(겸형)은 天道(천도) 下濟而光明(하제이광명)하고 地道(지도) 卑而上行(비이상행)이라. 天道(천도)는 虧盈而益謙(휴영이익겸)하고 地道(지도)는 變盈而流謙(변영이유겸)하고, 鬼神(귀신)은 害盈而福謙(해영이복겸)하고 人道(인도)는 惡盈而好謙(오영이호겸)하나니, 謙(겸)은 尊而光(존이광)하고 卑而不可踰(비이불가유)니 君子之終也(군자지종야)라" 이다.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겸이 형통함(謙亨)은 하늘의 도가 아래로 내려서 광명하고, 땅의 도는 낮은 데서 위로 행한다. 하늘의 도는 가득한 것을 이지러지게 하며 겸손한 데에는 더하고, 땅의 도는 가득한 것을 변하게 하며 겸손한 데로 흐르게 하고, 귀신은 가득한 것을 해롭게 하며 겸손함에는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한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하니, 겸(謙)은 높고 빛나고 낮아도 가히 넘지 못하니 군자의 마침이다. 마지막 문장이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래 이렇게 읽으려 한다. 겸손은 높은 사람이라면 빛나게 하고, 낮은 사람이라면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게 하니, 군자를 완성하는 덕목이다. ” TMI: 濟:건널 제, 卑:낮을 비, 虧:이지러질 휴, 盈:찰 영, 益:더할 익, 變:변할 변, 流:흐를 류, 福:복 복, 惡:미워할 오, 好:좋을 호, 尊:높을 존, 踰:넘을 유.

'구삼' 일양이 외괘 <곤괘> 아래 있으니 하늘의 도가 아래로 건너와 함께 비추는 상이다("天道下濟而光明 천도하제이광명"). 동시에 외괘 <곤괘>는 하늘의 도 위에 위치한 상이니 땅의 도가 낮은 곳에서 위로 간 상이다("地道卑而上行, 지도비이상행"). 하늘은 위에 있지만 그 기운은 아래로 내려서 세상을 광명하게 하고, 땅은 아래에 있지만 그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과 합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아래로 내려와야 그 덕이 광명하게 되고, 자신을 낮추면 그 덕은 위로 올라간다. 천도(天道), 지도(地道), 신도(神道), 인도(人道)의 사법계(四法界)가 다 이러한 것이다. 세상사의 모든 일이 겸손함으로 유종(有終)의 미(美)를 이룬다.

5
공자는 이 괘의 <단전>에서 천도(天道)와 지도(地道)를 말하고, 인도(人道)에 앞서서 귀신을 이야기 하면서 '도(道)'를 넣지 않았다. 즉 공자는 이른바 '신도(神道)'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계사전 상> 제4장을 보면, 공자의 귀신 개념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다. 길지만 공유한다. 너무 좋은 글이다. 

"易與天地準(역여천지준)이라: 역(易)은 천지와 더불어 가는 법(準則)이라. 
故로 能彌綸天地之道(고로 능미륜천지지도)하나니: 고로 능히 천지의 도에 두루 실처럼 닿아 있나니
仰以觀於天文(앙이관어천문)하고: 우러러 천문을 꿰뚫고
俯以察於地理(부이찰어지리)하나니라: 땅에 굽어서는 地理지리를 통찰하고 있다.
是故(시고)로: 그러므로
知幽明之故原始反終(지유명지고원시반종)이니: 인사에 지극히 밝아 근원의 비롯됨과 돌이켜 종말의 근원을 알 수 있는 것이니
故로 知死生之說(고로 지사생지설)이라: 그러므로 삶과 죽음에 통하게 되었다.
精氣爲物(정기위물)하고:  기(氣)가 모여 물(物, 魄)이 되고
遊魂爲變(유혼위변)하나니: 혼백에서 魂이 떨어져 변하게 된다.
是故(시고)로: 이러한 연고로
知鬼神之情狀(지귀신지정상)하나니라: 귀신(鬼神)이 생사(生死)에 관여하는 정상(情狀)을 알 수 있다.
與天地相似(여천지상사)요: 역(易)은 천지와 더불어 그 도가 서로 같다.
故(고)로 不違(불위)라: 그러므로 서로 어김이 없다.
知周乎萬物(지주호만물)하니 而道濟天下(이도제천하)요: 역(易)의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니 道가 천하를 구제하는 것이요.
故(고)로 不過(불과)라: 그러므로 지나침이 없다.
旁行而不流(방행이불류)하고: 곁으로 행하게 되어도 흘러 나아가지 않으니
樂天知命 故不憂(낙천지명 고불우)라: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께 맡기니 근심이 없느니라. 하늘에 순응하며 운명에 만족하니 걱정이 없다는 거다.
安土(안토)하야 敦乎仁(돈호인)하니: 땅을 편안히 하여 仁인을 돈독히 하니
故(고)로 能愛(능애)라: 그러므로 능히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범위천지지화이불과)하고: 천지 변화의 범위를 정해도 지나침이 없고
曲成萬物而不遺(곡성만물이불유)하여: 하여 만물이 그릇을 이루는 도리를 곡진(曲盡)하게 가르침에 남김이 없어서
通乎晝夜之道而知(통호주야지도이지)라: 주야의 도에 모두 통하니 역(易)은 지혜로운 것이라.
故(고)로 神无方(신무방)하고:  그러므로 천지의 화권(化權)을 행하는 신(神)은 방소(方所)가 없고,
而易无體(이역무체)하니라: 역(易) 또한 그와 같아서 형체가 없는 것이라.

역(易), 변화는 천지(하늘과 땅)에 의거한 것이기에 능히 천지의 '도'를 총망라한다. 위로는 천문(天文)을 보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살피기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이 연고를 안다. 시작의 근원을 찾아 끝을 유추하기에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안다. 정기는 물(物)이 되고, 유혼(幽魂)은 변하기에 귀신의 본 모습을 안다. 

귀신(鬼神)은 유명(幽明), 사생(死生)과 연결된 개념으로 그 관계성 하에서 생각할 때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역(易)'은 천지를 기준으로 삼아 천도와 지도를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인간은 그 '역'에 담긴 천도와 지도를 통해 인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귀신의 별도의 '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역'에 담긴 천도와 지도의 광대함, 심오함, 신비함을 강조하는 예시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겉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도 외에도 '역'에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연고(幽明之故, 유명지고), 죽음과 삶의 이치(幽明之故, 사생지설), 귀신의 본 모습(鬼神之情狀, 귀신지정상)까지 알 수 있는 초월적인 힘도 담겨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존재하지만 천도와 지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의 깊이에서발견되는 것 같은 것이다.

정기(精氣)는 음과 양을 말하는 것으로 음양이 합하여 사물과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생명과 창조 과정이다. "유혼(遊魂)"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직역하면 '놀던 넋' 정도의 뜻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의 '비(飛)와 '산(散)'과 같은 의미로 볼 수도 있다. '혼비백산'은 넋을 잃거나 정신이 나갈 정도로 몹시 놀라거나 두려워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보통 혼(魂)과 백(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서 혼은 정신을 의미하고 백은 육체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릴 정도로 몹시 두렵고 놀라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혼(魂)은 양(陽)의 속성을 띠고 있어 날아가고, 백(魄)은 음(陰)의 속성을 갖고 있어 흩어진다고 해서 '혼비백산'이 되었다. "유혼(遊魂)'이라는 말을 보면, 정기가 합쳐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놀기 위해서'라는 거다. 놀만큼 논 혼은 변해야 한다. 본래 자신을 만들었던 '정'과 '기'로 분리 되는 것이다. 글이 길어지니, <지산겸> 괘의 <대상전> 부터는 다음에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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