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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기술발전을 마냥 좋아해서는 안 된다.

박수소리 시대정신

기술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기술은 인간의 아이디어로 생명을 불어넣기 전까지는 꼼짝없는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다.

다음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 핵분열은 인류가 달성한 가장 놀라운 업적 중 하나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우리 '종'이 여지껏 맞닥뜨린 가장 큰 생존의 위협이기도 하다.

#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인 '하버 법'은 합성 비료 제작으로 곡물 수확량을 증대시켰다. 하버 법을 발명한 프리츠 하버(Fritz Harber)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했다는 평을 들으며 그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하버는 화학전을 발명하기도 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6만 7000명의 사상자를 낸 독가스 살포를 직접 감독했다.

보안 전문가인 마크 굿맨(Marc Goodman)이 한 다음의 말을 들어 보면, 항상 그래 왔다는 것이다. "최초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불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도 사용되었지만 옆 동네에 불을 지르는 데도 쓸 수 있었다."

기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할지, 결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우리의 예상과 완전 딴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도를 가진 '모델링' 작업이 사유하거나 기술을 구현하는 데는 좋지만, 그 의도를 먼저 윤리적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어떤 의도는 타인과 세상에 '폭력'일 수 있다.

나치를 겪은 엠마뉴엘 레비나스가 <전체성과 무한>이라는 책을 쓰면서 강조한 부분이 이 문제이다. '의도'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는 타자를 자기화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동일자의 폭력'이다. 그것을 그는 '전체성'의 시작으로 보았고, 타자의 현현으로 다가오는 자로의 초월이 오히려 우리를 '무한'으로 나아가게 한다.

구글에서 사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