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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324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18일)

어제 서울 형님 댁을 방문하기 위해 일찍 나갔다. 그래 어제 <인문 일지>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사진은 꽃다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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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두는 '말과 대화'이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듣는 것이 대화라면,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 하면 그것은 교류이다. 그리고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공감하는 순간 한 인간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왜 공감하려는 자세, 즉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준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The secret to talking is listening).'
 
'소통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장애를 하나만 꼽자면 소통이 잘됐다고 착각하는 거다(The single biggest problem in communication is the illusion that it has taken place).'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글입니다. 그러니까 '교감(交感·chemistry)이 작동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거다. 교류와 공감을 합쳐 우리는 교감이라 한다. 

경청하자. 경청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주고,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인정해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는 거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온 몸이 귀가 되어, 상대방을 말을 들으려 하는 거다. 경청하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한 때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했다. 복귀한 후 첫 일성으로 잡스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앞으로 나를 CLO(Chief Listening Officer, 최고경청자)라 불러 달라.” 과거에는 자신을 꽉 채우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을 비우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실제로 복귀 후 잡스는 이러한 리더십 전환으로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최고의 혁신제품들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여전히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또 다시 애플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너무 강한 잡스는 중도에 부러졌지만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한 잡스는 죽음이 그를 데려갈 때까지 끝까지 부러지지 않았다.

2
"리더의 올바른 경청은 마치 술에 취한 듯 허정하게 듣는 것이다." 이 말을 기억한다. '허정하''라는 말을 쓰는구나!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노자)에서 따온 말이 '허정'이다. "허함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한다." 아니면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 지키기를 도탑게 하라!" 이렇게 해석한다.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면 고요함이 도타워지며, 고요함 지키기를 도탑게 하면 비움이 지극해진다는 상보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술에 취했을 때가 '허정'이 된다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걱정이 없어지고, 간이 부어 용감 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한다는 것은 비우는 것일 수 있다. 그냥 쉽게 비워지지 않으니까, 술을 마시고 비우는 것이다. 자주 잊지만, 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다.

비움은 인간의 도이다. 비움은 집중이다. 생각을 비우면 현재에 더욱더 집중하게 된다. 인생은 '괜찮아'와 '고마워'로 살아간다. 비움은 자유이다. 생각을 비우면 어떤 사람의 말, 표현, 사상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이 가능해진다. 비움은 평화이다. 생각을 비우면 다툼과 괴로움이 없어져 고요함 즉 평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비움은 자비이다. 나와 너의 생각을 비우니 나와 너가 사라진 전체 즉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니 만물을 아끼고 사랑한다. 걱정하지 말고, 비우자.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고,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 충만하게 오늘도 즐겁게 보내자.

오선지의 음표가 아름다운 선율이 되는 것은 중간 중간 비어 있기 때문이다. 말이 아름다운 대화가 되는 것은 중간중간 경청하는 침묵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아름다운 일생이 되는 것은 중간중간 온 길을 살펴보는 멈춤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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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은 행운을 부르는 일상의 기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하고, 미안한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소중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인사하지 않는 이유는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매너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개 숙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화만 시작하면 다투는 사람은 말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듣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인사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에 미숙한 사람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치를 제대로 실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실수에 고개 숙이고, 상대의 말을 마음을 다해 듣는 사람은 인간의 품격과 가치를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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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방법을 통해 대화를 잘하려면, "S-L-L" 즉, Stop(멈추어라), Look(보아라), Listen(들어라)의 세 가지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 Stop :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어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의 말이 논리적이고 줄거리가 잘 구성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가끔씩 상대의 말의 요점이 정리되지 않는 말을 듣기는 얼마나 힘 든지 경험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혹시 내가 이 말을 해서 말을 듣는 어떤 누가 상처를 입지 않을까, 즉 역지사지라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일단 말을 뱉아내면 주어 담을 수 없고,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쁜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Look :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여야 하고 상대가 말을 할 때는 또한 그의 눈을 바라봄으로써 관심을 표명한다. 
▪ Listen : 대화의 내용을 정확히 잘 듣고 파악하여 대응해 나가라는 것이다. 대화에서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상담 교사는 찾아온 학생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끝까지 잘 들어주는 교사라고 한다. 

그리고 카네기도 대화의 "1․2․3 법칙"을 말하고 있다. 이것도 '하고 싶은 말은 1분하고, 상대방 말은 2분 이상 들어주며, 이 때 단순히 듣지만 말고, 들으면서 맞장구를 치는데 3분을 사용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번 말하고, 2번 듣고, 3번 맞장구치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 법칙에 충실하면 '상대가 나를 이해하여 준다"'고 생각하게 되며 신뢰를 쌓게 될 것이다. ‘聖人’이라는 한문 글자를 풀이 하면, 귀 이(耳)자가 먼저 오고, 그 뒤에 입 구(口)자와 임금 왕(王)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그 뜻을 풀어 보면, 먼저 듣고(耳), 말하기를(口) 가장 잘하는 사람(王)이 성인이다. 즉,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청 맨'이 ‘성인'이다. 그리고 탈무드에도 ‘인간은 입이 하나인데 귀가 둘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일 것이다. 즉, 최고의 대화술이 듣는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말을 자르지 않고, 가능하면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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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도 경청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된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고 신영복 교수님의 말을 소환한다. <<담론>>에서 읽은 것이다.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유심히 주목하면 하찮은 삶도 멋진 예술이 됩니다.(…)예술의 본령은 우리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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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앞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초래될 노동과 직업과 산업 영역에서 일어날 변화는 실로 가공스러울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대기업 사원이 되거나 고위공무원 혹은 법조인 대열에 올라섰다고 해서, 이제 그것이 10년 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30년 이내에 대부분의 전문 직종이 사라지거나 비전문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좋은 학력의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서 장래가 죄다 막혀버렸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어느 한 영역 에서든 창조성과 전문성을 지니고, 또 새로운 것을 학습해내는 역량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얼마든지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 력'의 시대가 왔다. 학력은 더 이상 취업이나 산업현장에서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스스로 학습하고 다른 사람과 능동적으로 소통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성인들도 학습을 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기민하게 습득하고 자신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특히 타인과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미래 사회에서는 더 잘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와 윤리적 덕목조차 학습해야 한다. '학습 력 사회', 우리의 삶의 태도와 공부의 방향을 안내하는 소중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7
배움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 그 사람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 이다. 특히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오만하지 않게 된다. 겸손을 배우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어쨌든 '학습 력'을 키우려면 다음과 같은 4 가지 태도가 요구된다.
▪ 적극적 수용. 이는 경청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열심히 듣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 말에서 중요한 부분과 특이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걸 자기 통찰과 깨달음으로 녹여내는 과정을 뜻한다.
▪ 유연한 소통:  답을 다 정해 놓으면 발전할 여지가 없다. 새로운 지식이 들어갈 수 있게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놔야 한다. 자기 전문 분야라 할지라도 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건 협업 능력에서도 중요하다. 고지식하면 교류가 어렵고 그만큼 좋은 정보를 얻을 기회도 없다.
▪ 자기 객관화.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걸 흔히 '메타 인지'라 한다.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다. 내가 뭐가 부족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량 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통해 어떤 게 더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 지적 겸손함.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데 이건 오만함으로 연결되기 쉽다. 오만함은 학습 능력에 가장 방해되는 요소 중 하나 이다. 배움에 있어 겸손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부, 즉 학습은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어떤 지식도 삶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그러니까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공허하다. 명성과실(名聲過實), 명성은 높으나 실속이 없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 머지않아 실속 없는 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습은 책상에 앉아서 탐구하는 것이 아닌 삶을 이롭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오늘 아침은 언젠가 적어 둔 <공부>라는 시를 공유한다. 이 시를 소개한 곽재구 시인은 이렇게 덧붙임을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새는 노래하고 공부를 하지 않고도 강물은 흐릅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별 보며 시를 읽고, 어려운 이를 도울 마음 지닌다면 꼭 학교에 갈 이유 없을 것입니다. 머리 좋고 가문 좋은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공부가 인간 세상을 힘들게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공부/유안진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
꽃다지는 꽃다지라서 충분하듯이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네

시간이 자라 세월이 되는 동안
산수는 자라 미적분이 되고
학교의 수재는 사회의 둔재로 자라고
돼지 저금통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랐네

일상은 생활로, 생활도 삶으로 자라더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도 오랜 공부가 필요했네

배우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미적분을 몰라도 잘 사는 이들
잘 살아서 뭣에다 쓰게
쓸 데가 없어야 잘 산다는 듯이
꽃다지들 저들끼리 멋지게 피어 웃네


꽃다지는 두 개의 뜻이 있다. 하나는 풀꽃 이름이다. 3월에서 6월 사이에 양지바른 들이나 산에 피는 노란색 작은 풀꽃 이름이다. 꽃대마다 작은 꽃들이 정말 '닥지닥지' 붙어서 피는데, 이 때문에 '꽃다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역시 다닥다닥 피는 흰색 냉이 꽃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잎과 열매 모양이 다르다. 냉이와 함께 무쳐 먹기도 하고 향긋한 맛이 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꽃다지와 소리가 비슷하고 오밀조밀 작은 꽃모양으로 말미암아 ‘코딱지 나물’이라는 별명도 있다.

풀꽃이름이 아닌 ‘꽃다지’는 오이, 가지, 참외, 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에 열린 열매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는 '꽃을 닫는다'는 뜻의 ‘꽃+닫+이(〉다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 때 신기해서 꽃다지를 따 보다가 혼난 기억이 있다. 이렇게 예쁜 우리말 꽃이름으로는 코스모스의 우리말 이름 ‘살살이꽃’, 라일락의 일종인 ‘수수꽃다리’, 소리만 들어도 예쁜 ‘구슬댕댕이’들이 또 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