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4월 15일)
'순리대로, 지금-여기 현재에 충실하게, 나와 남을 돕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늘 아침에 한 다짐이다. 오늘 <인문 일지>의 화두이기도 하다.
1
우리는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며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라고 했다.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데도 계절의 변화와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세상 만사 모든 일에 순리(順理)'를 따르면 삶의 가치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
정이천(程伊川)은 “군자는 순리적(順理的)인 삶을 살아 천리(天理)를 따르므로 몸과 마음이 구김살이 없이 편안 하다"고 했다. 반면, 소인은 왜 항상 근심 걱정을 하며 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역시 정이천은 말하기를 “소인은 외물(外物)에 사역(使役)을 당하므로 걱정과 근심이 많다"고 했다. 외물이란 자신의 마음과 정신이 아닌 남을 포함한 일체의 만물이다. 소인은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의 정신에 지배를 당하므로 걱정과 근심이 떠날 날이 없다. 자기의 확고한 주관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 가에 전전긍긍하므로 근심하는 것이다. 군자는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요 소인은 남의 평가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군자는 천리를 따라 사는 까닭에 그 마음이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아서 정신적으로 정정당당하고 여유 있는 편안한 사람이다. 반대로 소인은 빈부 귀천에 관계없이 남의 평가 만을 의식하며 사는 까닭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남의 눈치나 보며 불안하게 사는 사람이다. 군자는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요 소인은 정신적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볼 일이다.
3
봄 꽃들의 피고 짐 속에서도 순리(順理)를 읽었다. 꽃이 피려면 오랜 기간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만 한다. 밤이 낮보다 길어야 하고, 추위가 물러가야 한다. 겨울이 춥다고, 어둠이 싫다고 방안에 들여놓은 꽃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봄 꽃들은 작고 연약하며 향기가 강하고 무리 지어 피지만 잎이 없다. 이른 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꽃 몽우리를 먼저 터트려야 하고, 잎이 나중에 나와야 한다. 하나를 얻으려고 하나를 버리는 게 순리이다. 봄 꽃들은 추위와 어둠의 결핍으로 작지만 강한 향기와 무리를 얻었다."
그리고 꽃들은 피었다가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난다. 슬프게도 어제 내린 봄 비가 그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이 제 각각이다.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다. 꽃은 피었으면 진다. 순리이다. 낙화가 없으면 녹음도 없고, 녹음이 없으면 열매도, 씨도, 그리하여 그 이듬해의 꽃도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현재를 붙잡으려 하며 추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때가 되면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꽃들은 저 마나 피어나고 지는 모습이 다르다. 우리 인간들도 저마다 살다 가는 길이 제 각 각인 것처럼. 동백은 한 송이 개별 자로서 피었다가, 주접스런 꼴 보이지 많고 절정의 순간에 뚝 떨어지며 진다. 매화꽃, 벚꽃, 복사꽃, 배꽃은 풍장을 한다. 꽃잎 한 개 한 개가 바람에 흩날리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었다가 노을이 스러지듯 살짝 종적을 감춘다. 나무가 숨기고 있던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 같다고 소설가 김훈은 묘사한 적이 있다. 나도 내 삶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산수유처럼.
4
세상과 맞서 싸우면 세상이 항상 이긴다. "세상이란 우연이 없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는 거야"라 말하자마자 세상 일이 술술 풀려나가게 된다. 언젠가 나의 <에버노트>에 적어둔 글이다.
마음에 두지 말자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놓아두라
바람도 담아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카맣게 태울 때가 있지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예쁜 사람도 지나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놓아 두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상은 엉망진창'이라고 보는 거다. 이런 생각은 자기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을 판단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상황이 나아지도록 무언가를 하는 건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어쨌든 고민만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 나아가 행동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만물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기 전에, 자신이 속한 세상의 조그마한 부분부터 평화롭게 만들어 나가는 거다.
5
고대 이집트 인들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을 깨닫고 그것과 자신의 사명을 일치시키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 했다. 우선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거기서 관계 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관계 적' 태도로 하루를 사는 가에 따라 일이 순리(順理)대로 가느냐 아니면 그 반대이다. 오늘 사진은 4월 초 강원도 여행에서 찍은 것이다.
아름다운 관계/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 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는가
6
"특정 바람의 소리는 어디서 생긴 걸까요? 바람이 내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구멍이 내는 소리일까요? (중략) 답은 바람도 구멍도 아닙니다. 이 둘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죠." <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기회는 공중의 바람처럼 우리 주변을 떠다니므로 자신에게 맞는 크기의 피리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 놓은 구멍에 기회가 지나갈 때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인문 일지는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에서 화두를 찾았다.. 부제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 외 다른 존재에게 이롭기 위해 창조됐다. 나무도, 풀도, 물고기도, 곤충도 모두 다른 존재에게 이로움을 주며 살아간다. 하물며 인간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이 생기고 언어를 발명하면서 오로지 내 욕심, 내 돈, 내 명예, 내 행복만을 위해 살도록 세뇌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자기 모습 찾기를 중간에 포기해서 그렇지, 끝까지 찾아간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태어난 이유인 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고 파울로 코엘료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타고난 모습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들을 난 산책길에서 본다.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 하천 옆에 조성된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싹 말라 바스락 하고 부서질 것 같은 덤불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명이 다한 것 같은 그 잔해는 내 눈엔 쓸모없어 보이지만 겨울을 나는 새들에게는 소중한 먹이의 공급처이자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이다. 나무와 이끼의 관계는 또 어떠한 가? 그저 타고난 대로 살아갈 뿐인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 속에 있다. 거대한 시계 장치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자연의 신비를 걸으며 흘러 드는 풍경 속에서 느낀다. 인간 역시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서로 도우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자연의 순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본 기사가 더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는지도 모르겠다. 유시민 말을 소환한다. "세상엔 자기 이익과 관계없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창피함과 비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즉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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