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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연의 봄에는 참 여러 가지 꽃들이 핀다.

320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26일)

1.
무심하게 봄꽃들이 자기 할 일이라고, 만발해 있다. 화란춘성(花爛春盛, 꽃이 만발한 한창 때의 봄),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이 시작되었다. 꽃들은 다른 꽃을 의식하지 않고 가장 나 답게 자신을 뽐낸다.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뽐내기에 바쁘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리(理)', 원칙이 있는데 말이다. 꽃이 너무 일찍 피었다가 져버리면 그 꽃에 의존해 살아가는 곤충의 활동 시기와 어긋나 곤충이 살 수 없고 그 곤충을 먹고 사는 새도 살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꿀벌 폐사 현상이 양봉업자의 애를 태웠고 근래로 올수록 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꿀벌이나 새가 없으면 자연수분이 이뤄지지 않아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생태계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봄꽃을 동시에 구경하는 게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래 순서를 다시 알려주고 싶다.


순서/안도현 

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 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 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 밭 울타리 
탱자 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2.
자연의 봄에는 참 여러 가지 꽃들이 핀다. 제일 먼저 봄을 기다리는 꽃은 동백꽃, 성급해서 눈 속에서 핀다. 그 다음은 버들강아지-갯버들 꽃, 다음은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목련으로 이어지는 것이 순서였다. 병아리가 생각나는 개나리가 거리를 장식하는 동안, 명자나무 꽃, 산당화 그리고 진달래가 봄 산을 장식한다. 바닷가에서는 해당화가 명함을 돌린다. 다음은 벚꽃이 깊어 가는 봄을 알린다. 그 사이에 마을마다 살구꽃, 배꽃, 복숭아꽃이 이어진다. 그 끝자락에 철쭉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그런데 지금은 꽃들이 순서를 잃었다. 이 계절엔 유난히 꽃들이 닮아 있어 구별하기 힘들고, 이름이 헷갈린다. 다음 번 봄이 오고, 다다음번 봄이 와도 봄꽃 구분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은 비슷한 꽃들을 나열해 본다. 그 이유는 어둑했던 일상을 환히 밝혀주는 봄꽃들을 정확히 호명하고 싶은 것이다. 

3.
생강나무 꽃과 산수유 나무 꽃이 비슷하다.


꽃 자루 없이 가지에 바짝 붙어 '여러 개' 뭉쳐서 편 건 생강나무 꽃이고, 산수유 나무 꽃은 긴 꽃 자루 끝에 '하나씩' 방사형으로 핀다. 산수유 나무는 껍질이 거칠거칠 벗겨진 반면, 생강나무는 매끈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쉬운 구분법은 꽃을 본 곳이 산이라면 생강나무, 동네 어귀나 근린 공원 등이면 산수유나무일 확률이 높다. 생강나무는 주로 산에서 자생하지만, 산수유나무는 조경용으로 심는 경우가 많다.

생강나무는 새로 잘라낸 가지에서 조미료로 쓰는 생강 냄새가 나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생강이 들어

오기 전에는 이 나무껍질과 잎은 말려서 가루를 내어 양념이나 향신료로 썼다고 한다.

4.
영춘화와 개나리도 비슷하다.


이른 봄, 길을 걷다가 축대 아래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노란 꽃을 보고 개나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영춘화(迎春花)이다. '맞이할 영(迎), '봄 춘(春)', '꽃 화(花)' 자로, '봄을 맞이하는 꽃'이다. 개나리보다 먼저 핀다. 줄기로 구분하면 조금 더 쉽다. 영춘화는 줄기가 녹색이고, 개나리른 회갈색이다. 영춘화 꽃잎은 5-6개이고, 개나리는 꽃잎이 네 갈래로 나눠진 듯하나 아래가 붙어 있는 통꽃이다.

슬픈 개나리 전설이 있다. 옛날 오두막에 삯바늘질 하는 어머니와 개나리라는 이름의 딸, 그 밑 사내 동생 둘까지 네 식구가 모여 살았다.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개나리는 동생들을 동냥으로 먹여 살린다. 하지만 추운 날 아궁이에 군불을 피우고 잠들었다가 그만 모두 목숨을 잃는다. 그해 봄, 그 자리에 나무가 자라서 꽃이 맺히자 사람들은 개나리라고 불렀다. 그래서 꽃잎이 네 개라니 슬프다.

5.
매화는 벚꽃보다 먼저 피는데 자주 벚꽃으로 오해 받는다.


꽃자루(꽃을 받치고 있는 작은 가지)로 구분하면 쉽다. 매화는 꽃자루가 짧아 가지에 바짝 붙어 있고, 벚꽃은 초록색 꽃자루가 길다. 매화 꽃잎은 둥근 반면, 벚꽃은 꽃잎 가운데 살짝 파인 홈이 있다. 그래서 매화는 꽃잎이 'ㅁ'이고, 벚꽃은 꽃잎이 'ㅂ'이라고 기억하면 좋다. 매화는 가까이 다가가면 짙은 향기가 나지만, 벚꽃은 향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매화는 봄이 왔음을 먼저 알리는 꽃 중의 하나이다. 매화(梅花) 하면 생각나는 것이 퇴계 이황이 자신의 좌우명을 삼았다는 다음 구절이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에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도 비록 와인장사를 하지만, 매화처럼, 함부로 그 향기를 팔지 않을 작정이다.

매화의 이름은 다양하다. 매화가 피었는데 그 꽃 위로 눈이 내리면 설중매(雪中梅)이다. 이 설중매는  청주에 매실을 넣은 리큐어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한다. 달 밝은 바람에 보면 월매(月梅)이다. 왠지 요정집이 생각난다. 옥같이 곱다하여 옥매(玉梅)도 있다. 향기를 강조하면 매향(梅香)이 된다. 이른 봄에 처음 피어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라 한다. 최두석 시인은 "봄을 부르는 매화 향내를 맡고부터는/봄에는 매화나무라고 부르고/여름에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6.
진달래와 철쭉도 비슷하다.


분홍색 꽃이 활짝 피었는데, 잎이 없으면 진달래, 초록 빛이 함께 보이면 철쭉이다. 진달래는 꽃이 진 후에 앞이 나고, 철쭉은 잎이 먼저 난 후 꽃이 피거나 잎과 꽃이 함께 나기 때문에 개화 시기도 다르다. 진달래는 주로 산에서 자생하며 이른 봄인 3월부터 피고, 도심 공원에서 자주 보이는 철쭉은 4월부터 피기 시작해 5-6월에 만개한다. 철쭉은 진달래와 달리 잎이 끈적거리고, 꽃잎에 짙은 색 반점들이 있다.

진달래는 ‘진’과 ‘달래’가 합쳐진 이름이다. 즉 ‘달래 꽃’을 가리키는데, 그보다 더 좋은 꽃이라 하여 ‘진’이 붙은 것이다. 달래는 '달려 있다'는 뜻인지, '다래'의 달래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진달래는 먹을 수도 있고 약에도 쓸 수 있어 참꽃이라고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 한다. 옛날 촉나라 임금 두우(杜宇)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두견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꽃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두견화라고도 한다. 이 설화는 진달래의 꽃말인 ‘절제’와 관련이 깊다. 한방에서는 두견화 또는 만산홍이라 하여 꽃을 약으로 쓰는데,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하여 기침, 고혈압, 월경 불순 등의 증상에 처방하였다.

우리나라에 화전놀이라는 민속이 있었는데, 이는 진달래꽃이 만발한 3월 삼짇날 부녀자들이 진달래로 전을 부쳐 먹고 춤추며 노래하고 하루를 보내던 놀이이다. 이것을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한, 진달래꽃이 두 번 피면 가을 날씨가 따뜻해 지고, 꽃이 여러 겹으로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기도 하였다. 진달래꽃으로 빚은 진달래술은 봄철의 술로 사랑받았다. 특히, 충남 당진의 면천 진달래술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명성이 높다.

진달래는 오랜 시간 전국에 걸쳐 살고 있어서인지 예술 작품부터 생활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다./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른 따라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한 김소월의 <징달래꽃>도 있고, 여기에 곡을 붙여 노래한 가요도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이 마음도 피어~"로 시작되는 가곡도 많이 불린다.

철쭉 꽃잎에는 짙은 색의 반점이 있다. 이 반점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꿀을 분비하는 기관으로 꿀샘 또는 밀선(蜜腺, honey guide)이라고 한다. 이 허니 가이드는 꿀이 없는 줄 알고 그냥 지나쳐 가려는 나비와 벌에게 "가지마.여기 꿀 있다"고 붙잡는 역할을 한다. 곤충이 꿀을 먹으려면 아무래도 암술이나 수술 위에 앉게 되고 이때 번식을 위한 꽃가루를 묻히는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이렇게 지혜롭게 꽃가루 받이 전략을 사용한다. 하지만 진달래 꽃잎에는 밀선이 없거나 있더라도 철쭉보다 옅다. 그러나 진달래 이파리를 비벼보면 레몬 향 같은 향이 난다. 자신을 방어하는 물질을 만들어내서 애벌레 잎을 갉아먹지 못하게 막는 작전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스스로 디자인하고 있다.

그리고 철쭉은 꽃받침이 있지만, 진달래는 꽃받침이 업다. 철쭉과 진달래는 잎의 끈적거림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철쭉은 진달래와 달리 끈적거림이 있기 때문이다. 단일 품종인 진달래의 꽃은 주로 분홍색이며, 드물게 흰색 꽃을 피우는 흰 진달래도 있다. 품종이 다양한 철쭉은 꽃의 색도 여러 가지이다. 일반적인 철쭉꽃의 색은 진달래와 같은 분홍색, 흰색이지만, 철쭉의 한 종류인 영산홍은 붉은 색,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한 꽃을 피운다. 이 이외에도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해 '참꽃',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을 수 없는 꽃이라 해 '개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앙상한 가지에 잎이 없이 분홍빛만 피어 있다면 진달래이고,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 있는데 꽃에 반점이 많고, 수술의 개수가 8개 이상이면 철쭉이도,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 있는데 꽃에 반점이 없고, 수술의 개수가 5개이면 영산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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