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5일)
매주 금요일 오전에 노자 <<도덕경>>을 읽는다. 오늘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서대산 자락에 있는 지인의 갤러리로 가서 읽는다. 아마 봄이 가까이 찾아 왔을 거다. 제15장과 제16장을 읽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 부분이다. 아침 <인문 일기>에서 노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각의 틀이 이런 식으로 짜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다.
오늘 아침은 지난 수요일에 못다한 한 제12장의 정밀 독해를 이어간다. 제12장의 전문을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우리 삶의 깊은 통찰을 준다. 원문도 함께 한다. 한문을 아시는 분은 꼼꼼하게 눈 길을 주면 흥미롭다. "맹", "롱", "상", 운율이 느껴진다.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五音令人耳聾, 오음령인이롱),
오미는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五味令人口爽, 오미령인구상).
말달리며 들사냥질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馳騁畋獵令人心發狂(치빙전렵령인심발광).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게 만든다 (難得之貨令人行妨, 난득지화령인행방).
그러므로 성인은 배가 되지 눈이 되지 않는다.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是以聖人爲腹, 시이성인위복, 不爲目, 불위목)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우리가 다섯 가지 소리에 특정 음가를 매긴 후에, 그것들만을 통해서 이 세계의 소리들을 듣는다면, 이 다섯 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더 많은 무수한 소리들 로부터는 배제된다. 즉 인간은 이 다섯 가지 소리 외에는 들을 줄 모르게 된다. 이것이 귀머거리가 되는 거라고 보는 것이다. 색이나, 맛도 다 같은 이 치이다.
치빙전렵(馳騁田獵, 말을 달리며 즐기는 사냥) 이야기도 어떤 특정한 가치를 향하여 내달리는 모습을 말하는 거다. 감각적인 즐거움이나 외면적인 가치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되면,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삶의 전체를 바쳐 좀더 보기 좋은 것, 좀더 듣기 좋은 것, 좀더 맛있는 것, 좀더 재미나는 것, 좀더 수지맞는 것 등을 추구하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게 되고 만다. 심하면 괴상한 소리, 괴상한 맛, 괴상한 짓 등을 찾거나 꾸며 내게 된다. 이런 세속적 가치가 최고 가치로 군림하게 되어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이를 경배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의 지배를 받는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즐거움이 우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런 것을 섬기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색깔, 소리, 맛, 스포츠, 제물 등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가치 때문에 내면적인 세계를 하찮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이야기 같다. 물론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것들을 모두 외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을 금한다면 삶은 김 빠져버린 맥주처럼 밋밋하고 싱거울 것이다. 신나는 삶이란 이런 감각적인 것들에 전적으로 무감각하거나 무신경하거나 무심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색깔,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맛을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알아보고, 놀랍고, 고마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오강남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감각적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 버리는 것, 탐닉하는 것, 몰두하는 것,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고 우리의 최고 가치 또는 최고 목표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라는 거다. 이를 우리는 '집착', 또는 '탐닉' 또는 '중독'이라고 한다. 이럴 때 욕망의 재배치를 통해, 우리는 모든 색깔의 근원, 모든 소리의 근원, 모든 맛의 근원, 모든 움직임의 근원, 모든 가치의 근원에 눈길을 주는 거다.
"욕망의 재배치"라는 말은 욕망의 '건너 가기'를 하자는 거다. 어떻게? "쾌락에서 지성으로, 중독에서 영성"으로 건너가자는 거다. 아무리 멋진 자동차나 명품가방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시해 진다. 더 좋은 자동차와 가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쾌락적응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나 관계를 맺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장점이 아니라 약점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쾌락적응을 통해, 만족이 불가능한 쳇바퀴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한다. 인간은 실현이 불가능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불행하다. 우리는 한 가지 욕망을 실현시켰을 때,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실현되었을 때, 욕망은 진부한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낙타에게 물었다. "오르막이 좋으냐, 내리막이 좋으냐?" 낙타가 대답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짐이다." 저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에게 짐이 없다면 얼마나 발걸음이 가벼울까? 인생에서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가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할 때가 많다. 마음의 짐이 무거우면 인생 길이 힘들다. 살아가는 일이 자꾸 짐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욕망을 가볍게 하는게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 개개인에겐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있다. 지나친 욕심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오버해서도 안되고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비겁한 방법으로 줄여가도 안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낙타의 생/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들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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