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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존감(dignity)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21일)

거친 세상을 살다 보면 순간 순간 우리의 자존감을 위협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절대로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비록 지금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를 펴고 살아야 한다. 이게 지켜야 할 마음 밭이다. 한문으로 심전(心田)이라 한다.

자존감(dignity)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자존감은 다른 이와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이렇다. 늘 기억하는 내용이다.
- 실력을 쌓는 것,
- 작은 성공을 누적시키는 것,
-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
-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 외부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

그러나 이런 것보다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가 더 높은 수준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존감은 바깥에 있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구별해야 한다.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실천이다.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우고 흘러가듯이, 걷고 또 걷는 길 뿐이다.

남들보다 내가 더 가졌다고 다른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려는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지역, 타고 다니는 차, 들고 다니는 가방 등의 이름에서 자존감을 얻으려 한다. 사람들은 상품이 아니다. 따라다니는 라벨로 다른 이들을, 또 나를 판단할 수 없다. 인정받기 위해, 부러운 눈길을 얻기 위해, 또 가볍게 보거나 얕보는 듯한 눈길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비하는 지 모른다. 나의 인간적 가치는 내가 얼마나 가졌는 가에 달려 있지 않다. 나의 재산과 재능을 지혜롭게 쓰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나에게 더 소중한 가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 아직도 나를 거만하게 만드는 그것들을 나에게서 없애기 위해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소중하다. 각자 겸허한 심정으로 상대의 삶을 대할 일이다. 그것이 종교이고 지극한 수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 라마의 기도문>을 공유한다. 여러 번 읽어야 마음 속으로 들어 오고, 자주 그 기도를 올려야 내 일상이 변하고, 내 삶도 더 성숙될 것이다.

몇 일전부터 기도문을 노트에 필사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기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기도(祈禱)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는 행위이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기도는 흔히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기도를 기복(祈福)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의 '기(祈)'자를 풀이하면, '빌 기'자이지만, 날카로운 도끼(斤)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도(禱)는 목숨(壽)을 자기 앞에 내놓고 구(求)하는 행위이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기도는 자신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쌓여 있는 적폐(積弊)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배철현의 <<수련>>이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오늘 아침 화두인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달라이 라마의 기도문>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달아이 라마 기도문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게 하소서.
나쁜 성격을 갖고서 죄와 고통에 억눌린 존재를 볼 때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큰 희망을 갖고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그리고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
남들이 알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나로 하여금 떠맡게 하소서.

그리고 기도하면, 내가 좋아하는 이문재 시인의<오래된 기도>이다. 기도란 뭔가를 간구하는 게 아니다. 기도하는 마음은 평화와 충만으로 가득하다. 나를 위해 더는 바라는 게 없을 때 참된 기도에 들게 된다. 그것이 기도의 본래 의미라고 시인은 말한다.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살벌해진 건 기도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좀 더 겸손하면서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 아침 사진은 주말 남도여행을 하면서 찍은 섬진강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람들은 돌을 쌓으면서 기도를 한다.

오래된 기도/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높은 자존감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형성하여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고통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힘을 준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 높은 자존감으로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자존감이다.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얻는 것이라고 본다.

심전, 마음의 밭을 생각하면,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소환된다. 복음서에 한 농부가 자신의 밭을 갈다 보화를 발견한 이야기가 나온다. 천국은 자신의 밭을 갈 때, 발굴되는 보물이다. 그 농부는 그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밭을 갈기 시작하였다. 그 농부가 다른 사람의 땅에 불법 침입하여 밭을 가는 행위는 범죄다. 천재는 자신의 마음 밭에서 숨겨진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는 자다. 그것이 보물인 이유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사유(思惟)라는 말의 한자어에서 '사(思)는 마음 심(心)'위에 있는 글자가 '밭 전(田)'이 아니라, 한자의 뇌(腦)라는 글자의 오른쪽 아래 등장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배철현 교수는 생각의 대상은 뇌 속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만나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다. 예수는 "천국은 밭에 감춰진 보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매일매일 만나는 삶의 터전이다. 다만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 안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훈련이 바로 사유이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다.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화"라고 쓴 마태복음(13:34)의 복음서 저자는 천국을 농부가 그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거름 냄새로 가득한 밭에 숨겨져 있는 보화라고 말한다. 초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의 마음이 옥토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곳에 희망이라는 씨앗, 즉 보화를 심으라고 촉구한다. 그 보화는 마치 씨앗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날 것이다. 그에게 천국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화초처럼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할 희망이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완벽을 수련하는 시간과 장소는 ‘지금-여기’일 수밖에 없다. ‘지금-여기’에 대한 탐구가 ‘공부工夫’다. 인간은 한 번도 ‘그때-거기’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지금-여기’안에서만 살아있다. 복음서는 ‘지금-여기’를 천국(天國)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천국에 대한 비유는 그 사실을 정갈하게 표현한다. ‘천국은 마치 들판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고 말한다. 천국이 발견되는 장소와 시간은 바로 지금-여기다. 복음서 저자는 ‘지금-여기’를 그리스 단어 ‘아그로스(agros)'를 사용하였다. ‘아그로스’는 흔히 ‘들판, 밭,  평원’이란 의미다. ‘아그로스’는 농부에게는 밭이고, 학자와 학생에게는 책과 책상이며, 직장인에게는 직장이다. 자신이 생계를 유지하는 그 일상(日常)이 천국이다. 아무나 자신의 일상을 천국으로 여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천국은 은닉(隱匿)되어 있어 대충 보고는 발견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진 시간과 장소인 일상은, 그것을 깊이 관찰하려는 사람에게 천국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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