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18일)
봄비가 잦다. 봄비는 벼농사의 밑천이라 한다. '봄비가 잦으면 마을 집 지어미 손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부녀자 손이 크면 지난 봄비가 잦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 비처럼'이란 노랫말에서 보듯 봄비는 더할 나위 없는 서정적 소재이다. 구질구질하다는 이유로 더이상 봄비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 놈의 봄비는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오나”라고 버릇처럼 되뇔 일도 못 된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수인 까닭이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라는 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 봄비가 그치면, 세상 만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새싹을 기르는 봄비는 꽃의 부모라고 한다. 봄비를 꽃을 재촉하는 비란 뜻의 '최화우(催花雨, 꽃을 재촉하는 비)'라고도 한다.
시절이 수상(殊常)하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는 안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크게 위로를 받는 것이 노자 읽기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함께 <<도덕경>> 원문을 읽고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영혼이 살 찌는 듯한 즐거움이 크다. 오늘은 제13장과 14장을 읽었다. 그러나 <인문 일기>는 아직 제10장을 읽을 차례이다.
이 장에서 노자는 의문문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장은 아리송한 구절이 많아 주석가 사이에 해석이 가장 구구하게 많은 장에 속한다. 읽기에 따라 우주론적 진리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요가 수행법이나 장생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혼(魂)과 백(魄)을 일치시키고 어린 아이의 몸처럼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무위자연의 방식을 빌어 통치를 하라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몸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우리가 운동하는 이유가 강해지려는 것보다 부드러워지려는 데 있다고 본다. 유연성을 길러 어린아이가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제10장의 전문과 번역은 블로그로 옮긴다. 이 장은 제51장과 제52장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은 이 장을 착간(錯簡)이라 보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문자들을 정밀 독해 해본다. 우선 첫 문장 "載營魄抱一(재영백포일) 能無離乎(능무리호)"이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혼백을 하나로 감싸 안고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혼과 백을 싣고서 하나로 안아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혼백을 몸에 실어 꼭 껴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라 풀이한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은 "땅의 형체와 피를 한 몸에 싣고 하늘의 거대한 하나를 품에 껴안는다. 능히 이 양자가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인간이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어 왔다. 혼은 정신적인 면을 관장하고, 백은 육체적인 기능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쵠석 교수는 몸의 움직인에 뜻을 개입시켜 관여하는 것이 '혼'이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형체를 이루는 것이 '백'이라 한다. '몹시 놀란다'는 표현으로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혼이 날라가고 백이 흩어지면 사람은 죽어 버린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스며든다고 보는 거다. 오강남에 의하면, 이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1) 혼과 백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둘을 하나로 감싸 안고 잘 보존하라. 여기서는 "포일(抱一)"'을 혼과 백이 서로 얽혀 하나가 되는 형국으로 보는 거다.
(2) 혼백을 다하여 '하나', 곧 '우주의 근원''을 감사안고 그 하나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른 후 거기서 떠나지 말라.
(2)의 해석을 하는 사람이 도올이다. 그는 "영백(營魄)"에서 "영(營)"을 '영위한다', '운영한다', '영양을 공급한다'는 뜻으로 본다. 중국고대의학의 기혈론에 따르면, 인체의 외면, 상피 세포 아래를 흐르는 면역체계를 "위기(衛氣)"라고 표현하고, 그 내부의 영양의 공급을 받는 체계를 "영혈(營血)"이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영백"은 두 개념 모두 땅에 속하는 것이라는 거다. 그러나 인간은 하늘과 땅이 합해져야만 생명으로서 활동 할 수 잇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영백"을 "재(載)"한 것은 우리의 육체적 측면이 되는 거다. 이 영역에 대하여 하늘적 부분이 바로 "일(一)이다. <<태일생수>>에서 말하는 "태일(太一)"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는 영백을 싣고 거대한 하나(太一, 태일)을 품에 껴안아야 한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은 이 영백과 태일이 우리 몸에서 융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도올에 의하면, 이것의 분리는 곡 죽음이다. 이 양자가 분리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존재의 당위이자 생명의 활동이라는 거다.
그래 나는 틈 나는 대로 파란 하늘을 즐겨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사람도 파란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트는 것처럼,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을 만나 함께 있으면,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사람은 나의 장점을 세워주고, 쓴 소리로 나를 키워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난 정의(正義)를 읽는다.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잘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그리고『중용』의 머릿장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고 되어 있는데, '하늘이 우리에게 명해준 것이 우리들의 성품'이므로 곧 "천명지위성"이고, '하늘에서 명을 받아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길(道)'이므로 곧 "솔성지위도"이고, '그 성품을 따르는 도를 잘 닦아 나가 마름질하는 것이 공부'이므로 곧 "수도지위교"이다. 다시 말하면, 도를 잘 닦아 나가는 것, 즉 마름질하는 것이 하나의 교육적인 가르침(敎)이 되는 것이다. 성(性), 도(道), 교(敎)로 시작하는 <<중용>>의 첫 문자을 외우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도덕경>> 제10장의 다음 문장은 내일 정밀 독해를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법정 스님이 쓴, <사람이 하늘처럼>이라는 시이다. 사진은 파란 하늘을 보다가 덤으로 얻은 목련 꽃봉오리이다.
사람이 하늘처럼/법정 스님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 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먼저 따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먼저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메아리가 오고 가는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벗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장점을 세워주고 쓴 소리로
나를 키워 주는 친구는
큰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친구가 가장 큰 보배이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튼다.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은 그런 친구를
만날 것이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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