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일기
어제부터 글 대문의 문패를 바꾸었다.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日記)>라고. 여기서 '일기'는 그냥 영어의 'diary'가 아니라, '저널(Journal)', 프랑스어로는 '주으날 앵띰(Journal intime)'이라 한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내면 일기'이다. 그런데 앞에 인문(人文)이라는 수식어를 넣은 것은 감각적인 글이 아니라, 지적 수고를 하는 지성적인, 게다가 인간의 무늬를 포착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이다.
매주 와요일과 목요일은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나 관심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오늘도 지난 금요일에 이어, <한겨레신문> 종교 전문기자인 조현이 쓴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휴, 2018)에서 소개하고 있는 공동체 하나를 만나 볼 생각이다. 박기호 신부님이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소백산 기슭에 마련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산 위의 마을"이다. 이곳은 수도 공동체이다. 가톨릭을 지탱하는 것은 성당이 아니라 수도원 공동체이다. 그 수도원들의 절대 다수가 수도자들만의 공동체이다. 평신도는 피정이나 하지 함께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산 위의 마을"은 일반인이 수도원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이다. 평신도가 사제나 수도자와 함께 살아간다.
이 공동체는 박기호 신부님이 1998년 동료 신부, 수사들과 함께 대량생산, 소비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설립한 <예수살이공동체>를 모태로 하여 탄생했다 한다. 2005년부터 "산 위의 마을" 공동체는 직접 농사짓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자급자립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 공동체에 입 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공동체에 내고 들어온다. 무소유와 자급자족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생태 유기농업으로 더덕, 고추, 콩 농사를 짓고 장과 메주와 고추장도 담가 먹고 남은 것은 도시 성당에 판다.
이곳은 우리 끼리 모여서 잘살아 보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현대인의 삶을 뿌리 채 조종하는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참 행복을 찾아 살아보자는 곳이다. 박신부님의 말씀을 공유한다. "퇴직금이나 연금을 받아 귀 촌 해서 차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행정관청에서 지원하는 게 없는지 관심이 많은 게 요즈음 귀 촌 자들의 특징이다. 도시적 삶을 농촌에 와서도 계속하겠다면 도시의 불행한 삶을 농촌에까지 연장할 뿐이다. 귀 촌은 단순히 이사하는 게 아니라,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꾸는 거다. 지금까지 도시의 경쟁 관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자연과 사람과 노동을 경외하고 관계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살겠다는 것, 즉 자발적 가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산 위의 마을" 생활은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오프(off)-편리함을 끊는 거다)' 노력을 공동 생활의 목표로 삼는다. 아예 돈이 필요 없는 생활 시스템을 만들어 소유욕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거다. 소유욕과 소비문화에 중독된 현대인으로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애초 그런 뜻에 공감하여 살다 가도 결국 세속으로 나간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기도하며, 가족과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특히 아이들은 닭 모이주고 산과 들로 쏘다니느라 심심할 새가 없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부모가 너무 바빠 아이들이 부모 얼굴을 볼 기회가 별로 없지만, 이곳에서는 반대로 아이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도시 아이들은 또래가 많아도 같이 놀 시간과 공간도 별로 없는데, 이곳에선 한 둘만 있어도 같이 쏘다니며 놀기 바쁘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보통의 가정집과는 비교할 수 없게 책이 많은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TV가 없으니 책을 보게 된다. 게다가 마을 어딘 가에서 놀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굳이 찾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이곳 아이들이 심심해서 못 견뎌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또한 비교 대상이 많은 도시 아이들은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지만, 비교 대상이 없으면 오히려 주어진 삶에서 재밋거리를 찾아 논다. 먹거리도 패스트푸드나 과자나 청량음료가 있을 턱이 없다. 마을에서 직접 가꾼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계란으로 간식을 먹으면서 살다 보면 아토피가 있던 아이도 어느새 깨끗해 진다. 나도 이런 "산 위의 마을" 공동체 사람들의 삶의 반이라도 주어진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고 싶다.
박기호 신부님의 동생이 박노해 시인이다. 시인의 본명은 박기호이다. 박노해는 노동운동가 시절 '박해 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이란 문구에서 앞 글자를 따서 지은 필명으로 정식 개명하였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박노해의 걷는 도서>라는 담벼락을 즐겨 찾는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거기서 얻어온 것이다.
새로운 봄/박노해
겨울 대지는
어린 쑥잎 하나 내밀며
새로워졌다
겨울나무는
노란 꽃눈 하나 내밀며
새로워졌다
얼어붙은 겨울 대지에
울며 떨어진 씨앗 하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묻고
절망 속에
자신을 던져
다시 피어나는 새로운 사람 하나
얼어붙은 사랑 하나
가슴 깊이 간직하지 못한 사람은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없으니
이 번주에 <우리마을대학>이 공모한 사업 심사가 있다. 그래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작년에 마을공동체 <우리마을대학>을 준비하면서, 내가 아는 마을 활동가의 페북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정부가 만든 디지털 그린 뉴딜의 실천 전략은 '대량의 소비자를 만드는 정책 말고, 일상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작게, 저 작게, 로컬에서, 동네에서 같이 하는 힘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현대 경쟁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작동 기제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이다. 올림픽에서 외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찾거나, 더 높은 성공의 열차에 타려고 발버둥친다. 과학 기술도 기하급수적인 속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더 먼 데까지 새 물건을 갖고 달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소외된 자리를 향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고,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일이고,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친화력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사회에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선진 사회가 된다.
작년에 미래자치분권연구소 유창복 소장의 발표를 인터뷰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우리마을대학>이 추구하는 실천 전략이었다. 그 중 몇 가지를 공유한다. 언텍트가 아니라 로컬텍트로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대안이 지역사회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뀔 때 문제가 해소된다. 이런 주장이 유소장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로 언택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비대면 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1) 원거리 이동이 위험하고, (2) 사람이 많이 함께 모이는 것이 위험하고, (3) 익명으로 만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이다. 익명이 위험한 이유는 전염이 이루어진 수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비대면 사회가 지속되면 우리가 사회를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비대면 사회 속에서 없는 사람은 그만큼 더 힘들다. 그 대안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근거리 이동하고, (2) 분산되고, (3)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와 시의 전문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에서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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