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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

318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3월 10일)

1. 
이젠 <<주역>> 제14괘인 <화천(火天) 대유(大有)> 괘를 읽을 차례이다. 이 괘의 바로 앞 괘인 <천화(天火) 동인(同人)> 괘가 지금 우리 사회에 절대 필요하다. 동지(同志)들과 연대하여 큰 일을 공명정대하게 추진하여야 할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동지,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 서로 신의를 지키며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감할 줄 아는 모두의 동지적 연대에 기반한 실천이 절실하다. 연대의 정의를 잘 말해준 전우용 교수의 주장을 공유한다.

"단결은 하나의 조직 안에서 이견을 극복하거나 유보하고 뭉치는 것이다.
통합은 두 개 또 그 이상의 조직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연대는 각 조직이나 개인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사안에 따라 힘을 모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언어가 뒤죽박죽이다. 일상의 언어들이 다 왜곡되어 있고, 언론의 기자들도 무식하여 남의 말을 되지 않아도 옮겨줄 뿐이다. 단결도 못하면서 통합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공자도 '말을 바로잡는 게 정치의 첫 걸음'이라 했다. (전우용)

  2. 
어서 탄핵이 되고, 새로운 리더를 뽑으면, 우리는 <화천 대유>의 괘상을 얻을 것이다. 재물과 사람이 모이는 삶의 절정기이다. 그러나 쇠퇴기도 아울러 대비하여야 한다. 

오늘 읽는 <화천 대유> 괘는 외괘가 <이화(離火 ☲>, 내괘가 <건천(乾天, ☰)으로 되어 있는 괘를 ‘대유(大有)’라 한다. 하늘 위에 해가 솟아올라 만물을 비추듯이 천하에 큰 것을 두었다. <중천건(重天乾)> 괘 '구오' 효가 변하면 <화천 대유> 괘가 되니 '구오'의 '대인'이 천하를 잘 다스리는 상이다. <중천 건> 괘 '구오' 효사가 "九五(구오)는 飛龍在天(비룡재천)이니 利見大人(이견대인)이니라" 이다.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는 말이다.
 
<서괘전>은 <천화 동인> 괘 다음에 <화천 대유> 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與人同者(여인동자)는 物必歸焉(물필귀언)이라 故(고)로 受之以大有(수지이대유)한다" 이다. 사람과 더불어 같이 하는 자에게는 물건이 반드시 돌아간다. 그러므로 대유로써 받는다는 거다 TMI: 與:더불 여, 歸:돌아갈 귀, 焉:어조사 언.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는("천화동인") 사람은 물이 반드시 모여들기에 대유("화천대유")로 받았다. "물(物)"은 물질(물질)이자 인물(인물)의 개념으로 읽어야 한다. 즉 돈과 사람이 모인다는 뜻이다. <<잡괘전>> 에 "대유중야, 동인친야(大有衆也, 同人親也)"라 했다. <화천 대유> 괘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고, <천화동인> 괘는 친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천화 동인> 괘와 <화천 대유> 괘는 도전괘의 관계에 있다. 이 두 괘에서 '대동(大同)'의 개념이 나온다.  뜻이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을 도모하면 사업이 이루어지고 재물이 모여 번창하게 된다. 그래서 <천화 동인> 괘 다음에, <화천 대유> 괘를 두었다. 사업을 해서 크게 이루려면 뜻이 같은 사람을 먼저 만나야 할 것이다. 
 
3. 
<괘사>는 "大有(대유)는 元亨(원형)하니라" 이다. 대유는 크고 형통하다란 뜻이다. <대유> 괘는 '일음오양(一陰五陽)' 괘로 유일한 음(陰)이 외괘에서 중을 얻어 다섯 양을 거느리는 상이다. <중천 건(重天乾)> 괘 '구오' 대인이 중정한 정치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니 대유는 크고 형통하다. 하늘 위에서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다. 온 세상을 환히 밝히며 빛 에너지로 만물을 기른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큰 덕을 갖춘 리더가 나라와 조직을 공명정대한 리더십으로 이끄는 상이 되기도 한다. '육오' 리더는 양의 자리에 음으로 있으니 실위했지만 득중했다. 수많은 양과 부드럽게 화합하고 있기에 음의 성질은 부정적인 거과 거리가 있다.  유약한 것이 아니라, 유순한 리더십이다. 용맹함으로 사람들을 강하게 끌고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후덕함으로 사람들을 감화시켜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경청과 포용의 리더십이라고 할 만한다.

제13괘 <천화 동인> 괘는 제1괘인 <중천 건> 괘 '구이'가 동했을 때의 지괘이다. <중천 건> 괘의 '구이' 효사는 "九二(구이)는 見龍在田(현룡재전)이니 利見大人(이견대인)이니라" 이다. 번역하면, '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이다. 다시 말하면, 현룡에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라는 거다. 제14괘인 <화천 대유> 괘는 제1괘 <중천 건> 괘 '구오'가 동했을 때의 지괘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중천 건괘> '구오'의 효사가 "九五(구오) 飛龍在天(비룡재천) 利見大人(이견대인) - 비룡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 이다. 이렇게 "구이' 대인가 '구오' 대인이 서로 만낫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역사의 문을 여는 것이 "동인"이고, 대유로서 대동(大同)하는 것이다.

4. 
이에 대해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단왈) 大有(대유)는 柔得尊位(유득존위)하고 大中而上下應之(대준이상하응지)할새 曰大有(왈대유)니 其德(기덕)이 剛健而文眀(강건이문명)하고 應乎天而時行(응호천이시행)이라 是以元亨(시이원형)하니라" 이다.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대유(大有)는 부드러운 것이 존귀한 자리를 얻고 크게 가운데 하고 위와 아래가 응하기 때문에 대유라 하니, 그 덕이 강건하며 문명하고, 하늘에 응하여 때로 행한다. 이로써 크고 형통하다'가 된다. TMI: 尊:높을 존, 應:응할 응. 다시 말하면, 유(柔)가 존귀한 자리를 얻고 크게 중하여 상하가 응하니 대유라 한다. 그 덕이 강건하고 문명하며 하늘에 순응해 때에맞게 행하니 매우 형통한 것이다.

"柔得尊位(유득존위)"는 1음이 '육오' 리더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득중한 자리인데 5양과 두루 응하고 있음을 강조해 "大中(대중)"이라고 표햔한 것이 아닐까? 내괘 <건괘>에서 "剛健(강건), 외괘 <리괘>에서 "文眀(문명)"이 나온 것이다. <건괘>에서 '하늘에 순응한다("應乎天, 응호천")'는 뜻이 나오고, <리괘>에서 '때에 맞게 행한다("而時行, 이시행")'는 뜻이 나온다. 밝은 리더십이니 곧 공명정대한 리거십이고, 경우와 상황에 어긋나지 않는 시의적절한 리더십의 의미이다. 
 
요약하면, "대유"는 '육오'의 음(陰)이 외괘 중(中)을 얻어 천자(天子)의 존귀한 자리에 있고, 크게 중도를 발휘하여 대신(大臣)과 백성 등 위 아래가 '육오' 인군에게 응하니 "대유"이다. 전체의 괘덕(卦德)으로 보면, '내괘 <건천(乾天, ☰>으로 강건하면서도 외괘 <이화(離火, ☲>로 문명하고, 마치 태양이 강건하게 하늘의 때에 맞추어 운행하듯이, '육오'의 정치가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해지기 때문에 크고 형통하다'는 거다.
 
5. 
<대상전>은 "象曰(상왈) 火在天上(화재천상)이 大有(대유)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遏惡揚善(알악양선)하야 順天休命(순천천명)하나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가 된다. TMI: 遏:막을 알, 惡:악할 악, 揚:오를 양·드날릴 양, 休:아름다울 휴·쉴 휴. 외괘의 <이화(離火, ☲>가 내괘 <건천(乾天, ☰> 위에 있으니, 마치 불이 하늘 위에 있는 상이다. 하늘 위에 환한 불이 있으니, 천하 만상을 모두 비추고 천하를 품에 안은 것이다.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본받아 천하를 비추는 밝은 지혜로 악함은 막고 선함을 드날리며, 이를 통해 하늘이 천하 만물을 낳은 그 아름다운 명에 순하게 따른다는 거다. 따라서 이 <괘의>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는 것으로 "순천휴명(順天休命)" 이라 한다. 

해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악을 막고 선을 드러냄으로써 하늘에 순응하여 명을 기린다는 거다. 태양은 하늘에 걸려 만물을 향해 차별 없이 고른 빛을 뿌린다. 만물의 성장과 발육을 돕고, 땅에 드리워져 있는 어둠을 거둔다. 리더는 악을 용서하기 보다 악을 응징해야 한다. 선의 승리를 당위적 명제가 아니라, 일상의 진리로 땅에 구현해야 한다. 그것이 하늘을 따르는 자세이고, 천명을 기려 실천하는 태도라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다. 공자는 "대유"의 리더십을 후자에서 발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대 필요한 리더십이다.

우선 지금까지 읽은 괘들의 괘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시작한다.
▪ 제1괘 <중천건>: 자강불식(自强不息) -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 후덕재물(厚德載物) -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 창세경륜(創世經綸) -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 과행육덕(果行育德) -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 음식연락(飮食宴樂) -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 작사모시(作事謀始) -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 용민휵중(容民畜衆) -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 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 제9괘 <풍천소축>: 의문축덕(懿文畜德) -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
▪ 제10괘 <천택리>: 변정민지(辯定民志) -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
▪ 제11괘 <지천태>: 보상천지(輔相天地) -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
▪ 제12괘 <천지비>: 검덕피난(儉德辟難) -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
▪ 제13괘 <천화동인>: 유족변물(類族辨物) - 하늘 아래에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천하가 문명하여 함께 하면서도 각각 저마다의 성질과 특성을 헤아리고 상황을 잘 판단하라.
▪ 제14괘 <화천대유>: 순천휴명(順天休命) -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

6.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선행(善行)이라고 말했다. '선행(善行)'에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토브(tob)'인데, 이 말은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라는 선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향만리(人香萬里)'를 이해하게 된다. 정리하면, 좋은 매너, '선행'에서 나오는 사람의 좋은 향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선행'이란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입장에서 향기로운 가를 묻는 일이다.

7. 
예언자 미가에 의하면, 그 선행은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네가 만난 신이 요구한 대로 생활하는 것"이라 했자. 맛있는 반찬을 만나면, 씹으면 씹을수록 더 맛이 나는 것처럼, 예언자 미가가 말한 위의 문장은 곱씹을수록 더 큰 깨달음을 준다. 정의 실천, 자비 추구 그리고 겸손 생활이 선행이라고.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선행(善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미가는 우리가 가장 매력적인 향기를 잔잔하게 내뿜을 수 있는, 인향(人香)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해주었다.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동물적인 인간에게서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 정의 실천하기
▪ 자비 희구하기
▪ 겸손 생활하기

8. 
정의(正義) 실천: 정의를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미쉬파트'란다. 그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공평하게 판단하다, 재판하다'이다. 그러니까 '미쉬파트'의 소극적 의미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 그에 해당하는 동일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벌을 넘어 사람들 각자에게 걸맞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성서는 지속적으로 미쉬파트는 '과부, 고아, 이민자 그리고 가난한 자'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과 그들의 바람을 사회에서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오늘날은 외국인 노동자, 노숙자, 한 부모가정, 노인계층이 포함된 기초생활자, 차상위 계층 등이 바로 이 미쉬파트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사회의 성숙도와 정의 실현 정도는 순전히 그 사회가 이 계층을 어떻게 대하느냐 에 달려 있다. 이 계층에 대한 소홀이나 무관심은 자비의 부족이 아니라, 신의 제1명령인 '미쉬파트'를 범하는 죄악이다. 신이 인간에게 원한 첫 번째 명령,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선은 사회의 취약 계층을 차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위대한 신을 위한 '예배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평상시의 작은 선행이 성전에서의 예배보다 중요한 것이다.

9. 
자비 희구(慈悲 希求)를 히브리어로 하면, '아하보쏘 헤세드'라 한다. '아하보쏘'는 보편적으로 '사랑하다'로 해석한다. 특히 '인간들 간의 사랑, 즉 부부, 자녀, 친구들 간의 사랑과 우정 혹은 신에 대한 인간의 정성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이 내포된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희구(希求)'로 번역할 수 있다. 헤세드(chesed)는 현대어로 번역하기 어렵지만, 보편적으로 '인애(仁愛)'라고 해석하고 영어로는 'steadfast love(변치 않는 사랑)', 'kindness(친절)'로 번역된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충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으로 한자로 표현하면 '총애(寵愛)'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어로 아가페(agape)이다.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응원하고 믿어주고 끝까지 사랑하는 신의 마음이다. 신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데, 신은 그런 사랑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기도 하다. 이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는 '무아'의 상태로 진입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영어로 'I'm nothing'의 상태가 되어야 아가페, 헤세드의 사랑이 시작된다. 모든 인간의 생존은 바로 어머니의 헤세드를 통해 가능하게 되며, 어린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헤세드가 인간이 단순한 동물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도약하게 하는 이타적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배운다. 신은 우리에게 자기 희생적 사랑을 목표로 삼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경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의는 실천하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인 헤세드는 희구(希求)하라는 명령이다. '희구하라'는 말의 뜻은 '바라서 요구함'이다. 그러니까 헤세드를 원하고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라는 말이다. 희구의 비슷한 말은 간구(懇求)이다. 간구는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하는 구함'이란 말이다. 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삶을 갈구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헤세드는 관심의 단계를 넘어선다, 그것에는 베푸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일치해 상대방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동반된다. 아파하는 갓난 아기의 고통을 어머니도 느끼듯이 인간은 헤세드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나의 삶으로 인식한다. 신은 그런 삶이 어렵다고 판단해 헤세드를 '희구하고 간구하라'고 주문한다는 거다.
 
10. 
겸손(謙遜) 생활 :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만난 신의 명령에 따른 겸손 생활 하기' 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적인 면과 동시에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시발점이다.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계곡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리더들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여 자신을 낮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은 인간이 겸손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아는 사실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밖에 없다" 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와 인간 생명의 오묘함을 완벽하게 알 수 없고, 단지 그 지극한 일부만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근본은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일일 뿐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직업, 명성 그리고 재산이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혹은 남에 의해 강요된 신을 숭배하고 그 신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교리'라는 이름으로, 신봉하며 예배를 드리고 그 종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일생을 산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먼저 '자신만의 신'을 찾을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을 찾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바로 신을 만나는 지름길이 때문이다. 그 신을 찾게 되면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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