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5일)
3월도 이렇게 이른다. 벌써 5일이다. 대학에 강의를 하지 않으니, 개인적인 시간이 넘쳐난다. 그러나 지겹지 않게 보내고 있다. 그 방법은 거절하는 힘을 기르는 거였다. 나는 내가 내 삶의 진짜 주인공으로 살자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거절하는 마음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거절을 잘 하고, 거절하는 기술이 늘었다. 살다 보면 안다. 허락하는 일이 나를 만들어 주는 순간보다, 거절이 오히려 더 '나 다움'을 만들어 준다. 불편하고 마음에 끌리지 않는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나는 진짜 나 자신이 된다. 젊은 시절에, 타인의 부탁을 들어줄 때 나는 그냥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좋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소극적인 만족감은 내 일상에서 밀어냈다. 내 삶의 주체성을 내가 찾지 않으면, 내 삶을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아침마다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나 자신, 더 깊고 지혜로운 또 다른 나와 만난다. 그러면서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려고 고군분투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다."(마틴 스코세이지)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며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은밀한 것이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고독한 것이 가장 공동체적이다. 나의 가장 개인적인 시간은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자주하는 것이 그의 인격이며 성격이다. 고독한 곳에서,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은밀한 생각이 그 자신이다. 그 생각이 공동체에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
개인적인 것이란 내 안의 더 큰 나와 만나는 일이다. 내 안의 숨겨진 나만의 신화를 살아내는 것이다. 이글은 정여울의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정여울은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는 강인한 뚝심을 기르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용기를 한 순간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많은 독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그냥 다독으로 대충 읽는 것이 아니라, 정독을 해야 한다. 대신 빠른 속도로 다독을 하여 정독의 대상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도서가 마음 속에 얼어붙어 있는 바다를 깨는 일이라고 했다. 얼음 가르려면, 정독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책이 제대로 날이 선 도끼일까? 그것을 알려면 , 일단 어느 정도 다독할 수밖에 없다. "공 점유율이 높아야 골도 넣는 법, 책을 이것저것 오래 점유하고 있어야 정신의 날 선 도끼를 발견할 수 있다."(김영민)
바쁜 세상 사람들에게 정독 할 부분을 알려주는 일이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본다. 어떻게 하는가? 정독 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 할 부분들이다. 평소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며, 질문에 답하는 문장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감식안을 갖춘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적게 읽고 많이 깨닫는 방법이다. 인문 운동가의 도움을 받는 거다.
정독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1) 책의 저자가 침묵하는 내용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알아들을 만한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모호하게 숨겨 놓거나 은근히 암시만 해 둔 진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독자는 더 많은 관심을 책에 기울여야 한다. 대충 읽어서는 알지 못한다.
(2) 책 내용을 근저에 뒷받침하고 있는 가정과 전제를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주장은 그 주장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있으며,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그 문장이 담고 있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알아차림은 전제와 사유의 합이다. 전제는 경험이고, 사유는 생각하기이다. 딱하면 알아차리는 통찰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경험과 생각하는 힘이 합쳐져야 '탁!하면 알아차리'는 통찰의 힘이 나온다.
(3) 비판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적 독해를 위해서는 같은 문제에 대해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접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진리처럼 느껴졌던 주장도 기껏 '일리' 있는 주장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경쟁하는 주장들끼리 정성을 들여 전면에 드러내어 놓는 책은 많지 않기에, 독자는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스스로 재구성해가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주장의 타당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아침부터 봄비가 내린다. 봄비가 잦다. 봄비는 벼농사의 밑천이라 한다. '봄비가 잦으면 마을 집 지어미 손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부녀자 손이 크면 지난 봄비가 잦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 비처럼'이란 노랫말에서 보듯 봄비는 더할 나위 없는 서정적 소재이다. 구질구질하다는 이유로 더이상 봄비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 놈의 봄비는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오나”라고 버릇처럼 되뇔 일도 못 된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수인 까닭이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봄비에 만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라는 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 봄 비가 그치면, 세상 만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새싹을 기르는 봄비는 꽃의 부모라고 한다. 봄비를 꽃을 재촉하는 비란 뜻의 '최화우(催花雨)'라고도 한다.
"우리 인생의 시간은 물의 시간이다. 우리는 물과 더불어 살고 물과 더불어 투쟁한다. 물이 없어도 죽지만, 물이 너무 많아도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태일생수(太一生水, 태일(太一)은 물을 생한다)>>의 저자가 이 세계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의 기조를 "물(수)"이라고 보았지만, 그 물은 태일(태일, 도의 다른 이름)과의 관계에서 천지만물의 모든 현상을 생성시키는 비실체적 사건일 뿐, 그 나름대로 원질을 형성하는 존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그런 데 그 물의 궁극적 귀결처가 '세(歲)'이다. 여기서 '세'라는 것은 일 년이지만, 농경사회에 있어서 일 년은 곧 영구한 시간을 의미한다. 계절로 이루어지는 세의 반복이 곧 시간이 것이다. 고로 물은 곧 시간의 창조주인 것이다." ""도생일(道生一)"은 "태일생수"와도 같은 것이다. 도가 태일이고, 물(水)이 곧 일(一)이다. 일은 동시에 태일(=도)을 반보(反輔)하여 하늘(天)을 생성시킨다. 이 과정이 곧 "일생이(一生二)"인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동시에 태일을 반복하여 지를 형성시킨다. 이 것이 "이생삼(二生三)"인 것이다. 이 삼(도, 천, 지)이 갖추어지면 만물이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생만물(三生萬物)"이다." 물이 우리들의 삶의 시작이다.
‘볼열갈결’(사계절)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봄비는 볼비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열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갈비에 나뭇잎 보내고, 졸가리 훤한 나목에 결비 내린다. 친구 김래호에게 배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무 시인의 <봄비>를 공유한다.
봄비/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 한다
빗 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로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묘목을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봄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봄비 싸돌아 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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