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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도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9일)

오늘이 멀게만 느껴졌던 대통령 선거일이다. 세월 참 빠르다. 이번 선거는 선거권을 자신의 사적 욕망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도구화 하는 것에 반해, 공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이 곧 내 삶에도 이익이 되는 길이라는 것, 개인의 욕망이 공공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는 한단계 진일보했고 통합으로 가는 길 위에 올라섰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단순한 정권교체 프레임보다. "앞으로/제대로/나를 위해"라는 슬로건이 좋았고, 후반부에 채택한 정치 교체 프레임이 좋았다.

나의 바람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1) 선거가 끝나면 다 같은 국민이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새로운 리더와 함께 통합과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2) 이젠 기회주의와 지역주의와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3) "검언정판"의 카르텔의 공세에 견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원칙이 강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저들(검언정판)이 쳐 놓은 그물이 너무 촘촘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해방 전에 태어난 분도 살다 살다 이런 선거는 처음 겪는다 할 정도로 기괴하였다. 무당, 비선실세의 존재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맞나 싶게 무당과 사이비 신천지가 매일같이 하늘을 뒤덮는데도 여론지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모두 조급 했었다. 하지만 탄핵 촛불 때도 그랬다. 후반부로 갈수록 국정 농단에 분노해서 라기보다 그게 대세이고 마치 지각 있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촛불 당시 도로 안에 앉은 사람들과 인도변에 앉은 사람들의 간극은 컸다. 퇴근 후 동료들과 몰려와 맥주 캔을 따는 사람들에게 촛불집회는 신명나는 축제이자 카니발이었던 것이다. 그게 중도층이다. 왠지 빠지면 시대에서 소외되는 기분이고 나도 그곳에 갔다고 인증하면 여기저기서 멋지다고 해주니 깨어 있는 시민 코스프레도 하고 스마트하게 보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뿌듯하고 벅찬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진보가 중도층에 줘야 하는 건 그런 자신감과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곳에 나도 있었다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정치적 효능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가 의미가 있었다. 뒤로 올수록 말이다. 여기서 멈추고, 선거를 하러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 노자 <<도덕경>> 제7장을 읽을 생각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7장은 '도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도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걸 '성공하려면, 몸을 앞세우지 말라'고 읽는다. 이 장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구체적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그 교훈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선 전문을 공유한다.

1) 天長地久(천장지구) : 하늘은 높고 땅은 끝이 없다.
2) 天地所以能長且久者(천지소이능장차구자) 以其不自生(이기부자생) 故能長生(고능장생) : 하늘이 높고 땅이 끝이 없는 까닭은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굳이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자기가 모든 삶의 주체라는 의식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3)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뒤에 두기에 앞설 수 있고, 몸을 밖에 둠으로써 몸을 보존한다. (몸을 밖으로 내던지기에 그 몸이 존한다.)
4) 非以其無私邪(비이기무사야)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 사사로운 마음을 앞세우지 않기에, 능히 자신을 이룰 수 있다. (그 성인의 경지의 사사로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장은 "천장지구"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지의 장구(하늘과 땅이 너르고, 또 오래 갈 수 있음)"이라는 테마가 모든 논의의 대전제인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시인성인(是以聖人, 그러므로 성인은…)"이라는 구문이 나온다. 그러니까 천지의 모습에서 성인의 행동 준거를 찾는 거이다. 당연히 우리 보통 사람은 성인의 행동에서 우리의 행동 준거를 찾는다. '도(道)' 대신 천지(天地)를 말한 것은 천지는 도보다 구체적인 신간과 공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천지의 문제를 '영원'으로 말하지 않고, '장구(長久)'로 말하였다. 보통 장구는 시간의 지속을 말하지만, "장(長)"에는 공간적 성격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천장지구"는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간다"로 해석된다.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말은 백낙천(백거이, 772~846)에 의해서 한 번 뒤집어진 이후로는 본뜻보다는 ‘뒤집어진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유덕화, 오천련이 열연한 영화 <천장지구>(진목승, 1990)이후로 더 유명해진 말이 되었다. 사실 영화 원제목은 "天若有情(천약유정)"이었다. 당나라 시인 이하의 시, "天若有情天亦老(천약유정천역로)로, '만약에 하늘에 정이 있다면, 하늘도 (슬픔으로) 늙으리'라는 뜻에 유래하였다 한다.

"천장지구"는 성인(聖人)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하늘과 땅만큼 오래가고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유래한다. 그 일부를 공유한다.

헤어질 무렵 은근히 거듭 전하는 말이 있었으니(臨別殷勤重寄詞)
그 말에는 둘이서만 아는 맹서가 들어 있었지(詞中有誓兩心知)
칠월 칠석 장생전(長生殿)에서(七月七日長生殿)
깊은 밤 남몰래 속삭인 말(夜半無人和語時)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자(在地願爲連理枝)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지만(天長地久有時盡)
이 한(恨)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此恨綿綿無絶期)

〈장한가〉는 120구, 840자로 이루어진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슬프 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전단은 총 74구로, 현종이 양귀비를 만나 지극한 사랑을 나누다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양귀비가 죽은 후 밤낮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창자가 끊기듯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그렸다. 후단 46구는 현종이 양귀비를 못 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한 도사가 선계로 가 선녀가 되어 있는 양귀비를 만나 그녀에게 들은, 현종을 그리워하는 양귀비의 마음과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맹약으로 되어 있다.

위에 예로 든 부분은 선녀가 된 양귀비가 도사에게 이야기해 준, 천보(天寶) 10년(751) 칠월 칠석에 현종과 양귀비가 화청궁(華淸宮)에 거동하여 노닐며 장생전에서 나눈 사랑의 맹약으로,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지만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는 구절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을 비유하는 말인 ‘천장지구’가 유래했다. 〈장한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었으며, 시가와 소설과 희곡으로 윤색되는 등, 중국 문학에 많은 제재를 제공했다.

이번 대선은 해방 전에 태어난 분도 살다 살다 이런 선거는 처음 겪는다 할 정도로 기괴하였다. 무당, 비선실세의 존재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맞나 싶게 무당과 사이비 신천지가 매일같이 하늘을 뒤덮는데도 여론 지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모두 조급 했었다. 하지만 탄핵 촛불 때도 그랬다. 후반부로 갈수록 국정 농단에 분노해서 라기보다 그게 대세이고 마치 지각 있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일로 여겼던 것이다. 촛불 당시 도로 안에 앉은 사람들과 인도변에 앉은 사람들의 간극은 컸다. 퇴근 후 동료들과 몰려와 맥주 캔을 따는 사람들에게 촛불집회는 신명나는 축제이자 카니발이었던 것이다. 그게 중도층이다. 왠지 빠지면 시대에서 소외되는 기분이고 나도 그곳에 갔다고 인증하면 여기저기서 멋지다고 해주니 깨어 있는 시민 코스프레도 하고 스마트하게 보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뿌듯하고 벅찬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진보가 중도층에 줘야 하는 건 그런 자신감과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곳에 나도 있었다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정치적 효능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가 의미가 있었다. 뒤로 올수록 말이다. 여기서 멈추고, 선거를 하러 간다. 그리고 돌아와서 노자 <<도덕경>> 제7장을 읽을 생각이다.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온다. 천지가 장구 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부자생(不自生)"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자)를 목적어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부자생"은 '자아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자기 의식 없이 생성한다', '자신의 의지나 욕망에 따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조작하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삶을 연장키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만물의 생성이 모두 자기로 인하여 이루어진다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거다. 앞에서 말했던 "생이불유(生而不有, 낳되 소유하지 않음)" 계열의 해석이 가능하다.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것은, 천지는 만물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을 뿐 자기 자신의 사적인 생명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는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능히 장구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노자 이야기는 자생(自生)하지 않기 때문에 장생(長生)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도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면 저절로 권위를 회복하여 선두에 서거나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거다. 그 근거는 자연의 존재 형식이나 운행 원칙이 관계 속에 있으며 그것이 비본질적이라는 데 있다. 좀 어렵다 잘 읽어야 한다.  관계적이며 항상 변화하고 있고 비본질적으로 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자신'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기 스스로 가지면서 '자신으로서(자신의 본질 속에서) 존재할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을 근거로 하는 행위는 정당성도 없을 뿐 아니라 참된 성과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이러한 노자적 삶은 소극적이고 모든 이로움을 방관하는 달관한 은자의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크고 진정한 효과를 기대하는 삶의 지혜이다.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능히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지의 장구한 모습을 본받아야 할 성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내일로 미룬다. 길이 너무 길어졌다. 선거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언젠가 내가 쓴 시를 공유한다.

소멸 1/박수소리

진실은 울림이 있다면.
거짓엔 떨림이 있지.

울림의 진실은 멀리 퍼지지만,
떨림의 거짓은 떨다 그만 쓰러지고 말지.

잠시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있지만,
결국 거짓의 떨림은 울림 속에서 소멸하게 돼.

진실은 태양과 같다.
잠깐 막을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잠시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있지만,
결국 거짓의 떨림은 울림 속에서 소멸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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