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3일)
오늘 아침은 오늘을 진단하는 시대 정신에 대한 사유를 해본다. 연휴 기간동안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전유용 교수가 <겸손은 힘들다>라는 유튜브 방송에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갈무리 한 후 공유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들어가서 구해주려고 하는 사람
2. 무엇이라도 좀 잡고 나올 수 있도록 잡을 것이 없을까 하고 구하러 다니는 사람
3.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여기 사람 물에 빠졌어요', '누가 와서 구해주세요' 라며 소리치는 정도의 사람
4. 아예 못 본 척 하는 사람
5. 헤엄도 못 치는 게 왜 물에 들어가서 저 꼴을 당하느냐고 말하는 사람
이 차이는 인간관의 이념에 기초가 되어 나오는 거다. 가장 흥미로운 문제는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내가 정상이고, 나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다 비정상이라고 보는 거다. 1의 유형이 볼 때, 5의 유형은 '인정머리 없는 나쁜 놈'이고, 5의 유형에서 볼 때 1의 유형의 인간은 '돈도 안 되는 일에 목숨을 거는 바보 같은 놈, 미친 놈'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인문학이 부재한 사회로, 즉 그런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사회가 '나쁜 놈'과 '미친 놈'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인간형을 우리가 기본 또는 모범으로 삼아야 될 것이 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사회적 합의는, 다들 그렇게 살 수는 없더라도, 1 유형의 인간이 '의인'이고, 본받아야 할인간이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지금의 뉴 라이트(New right) 인간관을 지닌 일부 인사들의 인간관은 다르다. 그들은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식이다. 자기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거다. 그러니 도덕이니 연대 의식 따위는 불필요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일제 감점기라는 조건에서 자기 이익 실현의 극대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친일파가 오히려 이제는 제대로 된 사람이고, 돈 되는 것도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겠다고 목숨 걸고 독립 운동하며 자기 재산을 다 던지며,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트린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그런 사람들을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테러리스트로 규정한다.
우리 사회는 의인들을 존경하고, 자기 것, 즉 사익을 챙기지 않고 공익을 위해서 힘쓴 사람들을 존경하자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합의인데, 공식화하지 못한 채, 현 정부는 '약한' 사회적 합의마저 바꿔서 이제 5의 마지막 인간형을 표준이자 모범으로 삼고자 한다. 홍범도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그는 조선이나 대한 제국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은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천민으로 태어났다고 구박과 멸시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자기를 구박하고 천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걸 걸고, 가족들까지 버리면서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인데, '공적이 과장되었다 느니', '우리가 존경할 사람이 아니라'는 등, 아무튼 폄하하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본군이 되어서 동족을 학살한 사람들을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그들이 이제는 그를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색깔을 입히었다. 이런 행위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상식에 기반을 바꾸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인문 운동가의 눈에 안타까운 거다.
왜 현 정부의 일부 세력들이 그러는 걸까? 전우용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기들이 그런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둘째 자기 지지자들이 그런 상식을 가지고 인간관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리고 그런 상식에 기반을 완전히 바꿔 놓으면 자기 지지기반이 늘어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라 했다. 역사나 언론이나 이런 것들을 총동원해서 마지막 유형의 사람들 이익이 안 되는 건 안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이제 "표준형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라고 보았다. 문제는 그렇게 돼 버리면 우리가 물에 빠져도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는 거다. 직접 전 교수의 말을 들어본다.
"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사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사람들은 이제 이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아요. 상황이 이런 상황이 돼 버렸구나. 이게 우리가 이제 우리 사회에 담론이 돼버렸어요. 뭐냐면 위기에 빠진 사람 봐도 못 본 척해라, 구해주지 마라. 구해줘 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이제 이런 식의 좀 문화가 형성돼 버렸고. 거기에 맞는 행정규범으로 나온 게 각자도생이에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국가공동체를 못 믿는, 안 믿는다는 것이고 국가공동체의 기반을 허무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국가라고 하는 의식은 국민 의식이니 민족 의식이니 하는 것들로써 기본적으로 연대의식에서 출발한다. 서로가 연대해서 국가를 만들고 민족을 구성하고 하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의식 자체를 죄악시하기 때문에 이제 연대의식이 사라진 상황이 된 거다. 현 정부의 일부 인사들로 뉴라이트들은 그 상황을 즐기고 그 상황이 돼야 자기 지지기반이 늘어난다고 판단을 한다는 거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이 유행인 사회에 산다. 모두들 사적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엉터리' 리더들의 철학(뉴라이트=반공+자유 시장경제 주의)이 그러니, 주변의 많은 이들이 무비판적으로 동조한다. 전우용 교수가 했던 말 두 개를 공유하고 글을 마친다.
"우리 사회가 이명박 시대부터 저런 이제 뉴라이트 이데올로기를 좀 정책적으로 퍼뜨렸다고 저는 보고요. 퍼뜨리는 과정에서 저런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어요. 시장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이런 식의 시장주의 또는 뉴라이트 이념이 굉장히 기득권의 자기합리화에 좋은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그런 쪽에 있는 분들, 사회적으로 보면 예컨대 이제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 중에 이런 뉴라이트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이념에." 이런 눈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현 대통령의 언행의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특히 한국의 문화 위상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의 인문(人文) 전통이라 본다. 특히 조선의 인문적 전통이 이제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은 언어,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의 세계를 말한다. 이 인문 세계가 추구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빨리 다시 회복해야 한다.이젠 현 정부에는 기댈 수 없다. '의회'가 나서야 한다. 그래 4월 10일에 있을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 인문 정신은 세끼 먹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거다. 인간과 짐승은 다르다. 짐승은 감각과 본능적인 충동 반응이라 할 수 있는 운동의 결합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은 지각과 충동을 제어하는 행동의 관계로 삶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고양이는 배부르면 졸고 있지만, 인간은 졸려도 새로운 지각을 창문을 열고 생각한다.
-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는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킨 문명을 구축한 것은 '생각하는 힘'에서 나오는 지각 능력과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 힘은 종교의 천재들 또한 철학자들이 키워준 거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여 고단한 우리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다. 그 '생각하는 힘'이 감각의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지각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 인문학은 무한과 영원을 향한 영혼의 등대로 '희망의 학문'이다. 벌거벗은 몸을 거울에 비추어보라. 볼록한 배, 가는 다리, 퀭한 눈동자. 생물학적인 존재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볼품이 없다. 그러나 소멸해가는 존재일지라도 자신만의 왕국임을 자부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인문학이다. 먼지에 불과한 존재일지 언정 천지와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고 바라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인문 정신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웃의 고통을 내면 화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이 전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파고 속으로 밀어 넣는데 어떻게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문학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은 없다. 전쟁은 국가와 자본이 공모한 학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는 마음의 힘이 욕망에 막혔기 때문이다.
-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의 인문학이 피폐해진다면 인간은 언젠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관계의 망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부조리와 야만을 재판하며, 자본의 자기 파멸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인문학이다.
오늘 아침 시처럼, "무언으로 오는 봄"을 보고 희망을 가져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되 돌아간다. '물극즉반(物極卽反)'이라 했다. 그러니까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자연의 춘하추동 순환도 그렇다. 이런 운동의 에너지는 모두 다 온도, 즉 따뜻함의 정도라고 나는 본다. 따뜻하면 꽃이 저절로 피듯이, 내가 따뜻하면 내 주변에도 따뜻한 사람이 모여든다. 이제 봄 기운이 도니 내 마음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야 겠다.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박재삼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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