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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곡신불사(谷神不死)":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7일)

노자 <<도덕경>> 제6장을 깊이 읽을 차례이다. 가장 아름다운 장으로 알려져 있다. 상재적으로 짧기도 하다. 세 개의 문장으로 나누었다. 다음은 제6장의 전문이다.
1) 谷神不死(곡신불사) 是謂玄牝(시위현빈):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믈한 암컷이라 한다.
2) 玄牝之門(현빈지문)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가믈한 암컷의 아랫 문은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3) 綿綿若存(면면약존) 用之不勤(용지불근): 끊어질 듯 하면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오강남은 이 장의 제목을 "도(道)는 신비의 여인(玄牝)"으로 정하고, '도의 여성적 특성'이라는 부제목을 붙였다. 다음과 같이 한 편의 멋진 시처럼 번역을 했다.

계곡의 신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비의 여인.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
끊길 듯 하면서도 이어지고,
써도 꺼도 다할 줄 모릅니다.

한문을 모르거나 노자의 철학, 도(道)를 잘 모르면,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도'를 '여인'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 외 <<도덕경>> 속에서 '도'를 상징하는 것은 다양하다. '갓난아이(영아, 嬰兒), 다듬지 않은 통나무(박, 樸), "물' 등과 함께 계곡(골짜기)와 여인이 등장한다. '도'는 골짜기처럼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허허하고, 고요하고, 탁 트이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품에서 모든 것을 길러내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곡신불사(谷神不死)"는 시적이고 풍부한 메타포(은유)이다. 계곡은 양 옆의 봉우리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 봉우리는 참(만, 滿)이고, 계곡은 빔(허, 虛)이다. 도올은 봉우리를 남성 성기의 상징으로, 골짜기는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봉우리는 우뚝 서서 남 보라 뽐내지만, 골짜기는 감추어져 있으며 은밀하다. 봉우리는 자기를 높이고, 골짜기는 자기를 낮춘다. 골짜기는 자기를 낮추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몰려든다.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용하기 때문에 생성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깊은 통찰을 얻었다. 포용해야 '생성'한다는 것을 배웠다.

계곡, 골짜기가 상징하는 것은 여럿이다.
1) 빔(허, 虛)
2) 낮음
3) 포용성
4) 물
5) 생명력

봉우리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골짜기에는 항상 물이 흐른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골짜기에 서리는 신령한 기운, 그 생명력의 분출을 노자는 "곡신(谷神, 골짜기의 신, 골짜기의 하느님)"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 "곡신은 죽지 않는다"는 거다. 이 표현은 명사로서 완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골짜기의 하느님은 영속된다. 그것은 우주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지 않는 신령한 기운을 일컬어 노자는 "현빈(玄牝)"이라 표현했다. '빈(牝)'은 '암수(암컷과 수컷)'라 할 때 암에 해당하는 말이다. '빈(암컷)의 반대가 모(牡, 수컷)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자웅(雌雄), 남녀(男女), 암수가 있다. 노자의 주장은 '도'가 '여인'과 같다는 거다. 여인 중에서도 신비의 여인(현빈)이라 했다. 도올은 그냥 '가물한 암컷'이라 해석했다. 오강남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로서의 여인, 생산적 기능의 상징으로서의 여인으로 풀이를 했다.

그래서 '여인의 문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 했다는 거다. 약한 것 같지만 끊어지는 일이 없고, 쓰면 줄거나 없어질 것 같지만 언제나 이어지고, 텅 빈 것 같지만 그 속에서 계속 뭔가를 생산해 내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 이 '신비의 여인', 또는 '가물한 암컷'이 도의 모습으로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는 거다. 거기서 도의 항존성, 포용성, 창조성, 생산성, 개방성 등을 읽은 것이다.

玄牝之門(현빈지문)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가믈한 암컷의 아랫 문은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이 가물한 암컷, 신비의 여인의 문, 즉 "현빈지문"은 그것을 또다시 일컬어 천지의 뿌리(천지근, 天地根)라 했다. 영원한 생명력의 뿌리이다. 계곡과 여인은 여러 가지로 고통점이 많다. 계곡을, 특히 폭포라도 떨어지는 계곡을 보고 있으면 여인을 보는 듯하다고 그 외형적 모양을 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여인도 계곡처럼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허허하고, 고요하고, 탁 트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생산하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 그래서 도의 상징으로 계곡과 여인을 묶어 사용하는 것이다.

그 뿌리는 또 다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면면(綿綿)한 기운이다. "면면하다"는 말은 솜이 물레에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실이 되어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생명력의 연속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생성의 연속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노자는 "면면약존(綿綿若存)"이라 한다. 이에 대한 왕필의 주석이 통쾌하다. "그것이 있다고 말하려고 하면, 그 형체를 볼 수가 없고, 그것이 없다고 말하려고 하면, 만물이 그로부터 생하여 나온다. 그래서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면면히 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끝으로 "용지부근(用之不勤)"은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근(勤)'은 '부지런하다'라는 의미보다 '고갈되다' 혹은 '다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하다'는 뜻의 진(盡)과 같은 의미이다. '용지부근"은 제4장에서 말했던 "도충이용지(道沖而用之), 혹불영(或不盈)"과 같은 의미이다. 그 뜻은 블로그로 옮긴다.

사진은 지난 주일에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걷다가 바다를 찍은 것이다. 바다에도 계곡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멈추지 않고, 동해안에는 산불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데, 난 조용한 주일을 보내고 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 그래 마음이 어수선하다. 빨리 3월 9일이 지나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으로 위로 받고 싶다. '도'가 선거판에서도 작동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주말농장에 가 흙을 만지고 씨를 뿌렸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서정홍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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