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26일)
오늘 아침은 노자 <<도덕경>> 제5장 깊이 읽기를 마친다. 오늘을 우리가 만날 문장은 다음과 같다.
③ 天地之間(천지지간) 其猶槖籥乎(기유탁약호):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
④ 虛而不屈(허이불굴) 動而愈出(동이유출) : 속은 텅 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내뿜는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풀무처럼 텅 비어 있지만 작용은 그치지 않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생명력이 넘친다.
⑤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 : 말이 많으면 처지가 궁색해 진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 그냥 말 그대로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중심(中)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
"천지지간(天地之間, 하늘과 땅 사이)"을 거대한 "탁약(槖籥)"에 비유하였다. 탁약은 오가면서 끊임없이 바람이 나오는 복동식 풀무를 말한다. 대장간에서 쓰이는 풀무(槖籥)는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를 말한다. 풀무의 속이 차 있으면 화덕에 공기를 불어넣을 수 없다. 풀무의 본질은 비어 있음이다. 비어 있기 때문에 대장장이에게 쓸모가 있게 된다. 비어 있지만 그를 통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으면 생활에 쓰이는 칼과 낫, 망치, 군사용으로 쓰이는 병장기 등 못 만드는 물건이 없게 된다. 비어 있는 무(無)의 상태인 풀무가 유용한 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그림과 같은 풀무로 불을 살리기 위해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풀무의 바람 통과 같은 이치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 天地之間(천지지간) 其猶槖籥乎(기유탁약호)"이란 말은 '천지 사이는 마치 풀무처럼 텅 비어 있어 있다. 그런데 그 작용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거다. 그래서 "천지지간"은 "虛而不屈(허이불굴) 動而愈出(동이유출)"하다는 거다. 이 말은 '풀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큰 바람이 나오듯이 이 천지 사이도 텅 비어 있는 그 공간에서 만물의 모든 생명 고장이 진행된다'는 거다. 오감남은 풀무질을 할 때 풀무의 바람통과 그 안에서 전후로 움직이는 막대기가 음양의 관계를 상징하고, 이 둘의 조화로운 움직임에 따라 만물이 생성되어 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풀이를 소개하였다. 아무튼 도의 역동적인 성격, 창조적인 능력, '빔'의 창조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좋은 듯하다. 천지와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빔'을 극대화할수록 더욱 창조적이고 지속적일수 있다는 거다. 도올은 인간의 문명은 이 빔을 갉아 먹는 "유위(有爲)"의 소산 이래서 항상 위험한 것이라고 본다. 그 다음 문장의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을 도올은 "말이 많은 자가 자주 궁해지는 것과 같다. 말 없이 나의 내면의 허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풀이한다.
노자는 왜 갑자기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을 말했는지, 문맥이 안 맞는 듯하였지만, 여기서 말(言)을 최진석은 "언어 행위나 체계 혹은 규제 등을 가리킨다"고 했다. 말이라는 것은 본래 무엇을 규정하고 어떤 범위로 한정하며 체계를 세우는 데 쓰인다. 따라서 이런 체계가 물샐틈없이 정밀하거나 번잡하며 확고하면 그것 때문에 숨이 막혀 생명력이나 활기를 잃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이런 언어적 체계나 규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중(中)의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노자의 생각이다. '중'은 풀무의 텅 비어 있는 중앙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중앙은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허정(虛靜)한 상태를 상징하고, 결국은 무위로 귀결된다. 따라서 "중심을 지킨다"는 말은 '허정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위적 태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최진석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본다.
"불인(不仁)은 '허정'이며 '무위'이다. 그것은 풀무의 텅 빈 공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없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전혀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토해 내는 동력이 된다. 다언(多言)은 '유위'를, '수중(守中)'은 '무위'를 가리킨다. '유위'를 행하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므로 '무위'를 행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냥 말 그대로 하면, "다언삭궁(多言數窮)"은 "말이 많으면 좋지 않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이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일생 생활 중에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하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 많은 것이 좋지 않다. 그러나 노자의 생각으로 더 나아가면, 도(道)처럼 궁극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된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실재는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적으로 따지거나 논리적으로 캐네려는 지적(지적) 노력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 노력은 오히려 궁극 실재에 대한 체험을 불가능하게 한다. 구태여 말을 한다면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2장에서도 성인은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 즉 "불언지교(不言之敎)"를 말했고, 제56장에서도 "참으로 아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고 했다.
그리고 중심을 지키는(守中, 수중)은 글 전체로 보아서 궁극 실재에 대한 외적 표현에 치중하기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의 깊숙한 본질적 차원을 붙드는 것, 외부로 나타나 보이지 않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도(道) 그 자체의 내면적 차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오강남의 해설이다.
"수종"하니, <<중용>>의 다음 구절이 생각난다.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이 말의 뜻은 '희노애락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중'이고, 이미 드러났지만 절도에 맞는 것이 '화'이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는 천하에 통달한 도"라는 거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살다 보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화내거나 슬퍼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감정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中)"이라는 것이다. 그런 감정 자체를 절제하라니 <<중용>>의 정신은 무서운 것이다. 희로애락이 일어난다 해도, 그 “중절”을 지키면 "화(和)"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중을 지킨다"는 것은 "희로애락 등이 외부로 표출되기 이전인 미발(未發)" 상태의 마음, 아직 흔들리지 않은 마음, 평정된 마음, 맑고 고요한 마음, 이런 마음을 유지하므로 온 우주가 그 속에 합일되고 주객이 일체가 되는 것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도덕경>> 제5장의 이야기를 마친다.
도가(道家)에서는 비움(허, 虛)를 숭상한다. 수레바퀴의 가운데가 둥그렇게 비어 있어야만 바퀴 살을 수십 개 꿸 수 있다는 거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표현도 모두 '비움'을 말하고 있는 거다. 골프채를 잡을 때에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코치에게 듣고, 기타를 배울 때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힘이 잘 빠지는 게 아니다. 힘을 빼고 무심한 듯한 상태로 있는 비움을 몸으로 체득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속 빈 것들/공광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 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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