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2일)
오늘은 <<주역>>을 읽는 두 번째 장치 이야기를 한다. <<주역>>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과 닮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주역>>은 자연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 주인공이 하늘, 땅, 우레, 바람, 물, 불 산, 연못이다.
이 주인공들은 '지수화풍(地水火風)'과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물, 공기, 불, 흙'의 4원소에서 나온 것이다. 이 4원소는 고대인들의 공통된 사고방식이다. 이 네 가지가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주역>>을 지은 사람들은 이 4 원소에 각각 음과 양의 성질을 부여했다.
- 하늘은 양으로 보았다. 하늘은 위에서 세상을 덮고 있으면서 해와 달과 별을 굳세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 땅은 아래에서 만물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음으로 보았다.
- 물은 겉보기에는 부드럽지만 안에 강한 힘이 있어 홍수를 낼 수도 있고, 강건하게 세상을 두루 흐르므로 양으로 보았다.
- 불은 겉보기에는 맹렬하지만 어딘 가에 붙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양 안에도 음이 있고, 음 안에도 양이 있다고 보았다.
- 세상을 덮고 있는 하늘의 기운이 양이지만, 그 기운이 움직이는 바람은 음으로 보았다.
- 땅은 음이지만, 그 기운이 불쑥 솟아 이루어진 산은 양으로 보았다.
- 물은 양이지만, 그것이 고여 있는 연못은 음으로 보았다.
- 불은 음이지만, 그 불의 기운이 하늘에서 내리는 우레는 양으로 보았다.
양 하늘 산 물 우레
음 바람 땅 연못 불
그리고 이 8 가지 자연물을 세 개의 '괘'로 다음과 같이 그렸다.
- 하늘은 세 괘가 다 양이다. 그 상의 이름을 '건(乾)'이라 한다.
- 땅은 세 괘가 다 음이다. 상의 이름은 '곤(坤)'이다.
- 양인 산, 물, 우레는 양의 효가 하나만 있으며, 위치가 다르다. 그 중에 산은 땅 위로 솟은 것이기 때문에 양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상의 이름은 '간(艮, 어긋날 간)'이라 한다.
- 물은 겉보기에는 부드럽지만 속에 강한 힘이 숨어 있기 때문에 두 음 사이의 중간에 양이 있다. 상의 이름은 '감(坎, 구덩이 감)'이라 한다.
- 우레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는 것이기 때문에 양이 가장 아래에 있다. 상의 이름은 '진(震, 벼락 진)이라 한다.
- 다음으로 음인 바람, 연못, 불은 음의 효가 하나만 있으며, 위치가 다르다. 그 중 바람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불어오기 때문에 음이 가장 밑에 있다. 상의 이름은 '손(巽, 손괘 손)'이라 한다.
- 연못은 고여 있는 물이기 때문에 음의 위치가 맨 위에 있다. 상의 이름은 '태(兌, 바꿀 태)'라 한다.
- 불은 겉보기에는 강렬하지만 붙어 있을 뿐 자기 중심이 비어 있기 때문에 음의 효가 가운데 있다. 상의 이름은 '리(離 떠날 리)'라 한다.
그리고 '8괘'의 모양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희가 그 모습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것을 '8괘취상가(八卦取象歌)'라 한다. 건삼련(乾三連-건괘는 3개가 이어진 모습)", 태상결(兌上缺-제일 위에 구멍이 있는 모습)', '리중허(離中虛-가운데가 비어 있는 모습)', '진앙우(震仰盂-하늘을 바라보는 그릇 모양)', '손하단(巽下斷-제일 아래가 짤려진 모습)', '감중만(坎中滿-가운데가 차있는 모습)', '간복완(艮覆盌-엎어진 사발 모습)', '곤육단(곤육단-6개로 끊어진 모습)'.
그리고 이 8 가지 자연물이 지니는 추상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
굳셈 기쁨 밝음과 붙음 움직임 들어 감 험난함과 빠짐 멈춤 유순함
이 8 가지 자연물 또한 어떤 것이 일방적으로 길하거나 흉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하늘(건)은 굳셈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굳세게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길하지만 부드럽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돌적으로만 나오면 흉할 수 있다. 물(감)의 경우, 험난함에도 길흉이 함께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험난한 물로 가로막혀 있다면 흉하지만,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험난한 물이 그들을 가로막아준다면 길한 상황이다. 연못(택)의 기쁨 경우도, 마땅히 즐거워할 일에 기뻐한다면 그것은 길한 일이다. 그러나 기쁘게 즐길 상황이 아닌데 분수와 예의를 모르고 멋대로 즐기거나 자신의 기쁨을 너무 뽐낸다면 흉한 일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역>> 음효와 양효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것들을 세 번 겹치도록 해서 8 가지 자연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젠 <<주역>>이 8 가지 자연물을 위아래로 배치해 인간 부닥칠 수 있는 각종 상황을 표현한 이야기를 해 본다. <<주역>>의 모든 괘는 두 가지 자연물을 결합해 하나의 상황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겸(謙)괘>를 살펴본다.
이 괘는 땅이 위에 있고, 산이 아래에 있다. 즉 땅 속에 산이 묻힌 상(象)이다. 세상에 땅 속에 있는 산은 없다. 모든 산은 땅 위로 솟아 있다. 얼마든지 위로 우뚝 솟을 수 있음에도 땅 속에 스스로 파묻혔으니 얼마나 겸손한가? 이런 식으로 <<주역>>의 괘는 삼획괘 두 개가 겹쳐진 것이다. 즉 8개의 삼획괘가 두번씩 겹치므로, 8ⅹ8=64개가 나온다. 이를 삼획괘와 구별해 육획괘라고도 하고, 그냥 '괘'라고도 한다. 이 괘는 모두 아래와 위,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데, 아래를 '하괘' 또는 '내괘', 위를 '상괘' 또는 '외괘'라 한다.
삼획괘의 8 가지 자연물 중 '하늘, 우레, 바람, 불'은 대체로 위에 있거나 위로 올라가는 자연물이다. 그리고 '땅, 물, 산, 연못'은 대체로 아래로 있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자연물이다. 전자가 위에, 후자가 아래에 있다면 그것은 자연 현상과 일치한다. 예컨대,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비(否)괘>이다. 비(否)는 불(不)과 같은 자로서, 본래는 ‘새가 위로 날아가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라는 뜻으로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인데, <비괘>에서는 ‘막힌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음은 ‘비'이다. 그리고 산 위로 바람이 부는 상인 <점(漸)괘, 갖추어 시집을 감> 등이 그런 예이다. 또한 실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상도 있다. 예컨대, 땅 속에 산이 파묻혀 있는 <겸괘>라든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태(泰)괘, 태평함> 같은 경우가 그렇다.
64 괘에서 위에 있을 것이 위에 있고, 아래에 있을 것이 아래에 있다고 해서 길한 것은 아니다. 또 위와 아래가 바뀌었다고 해서 흉한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괘(12)>와 <태괘(11)>이다.
- <비괘>는 하늘이 위에, 땅이 아래에 있는데, 하늘은 위로 올라가려 하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 하므로, 둘 사이는 벌어지기만 하고, 아무런 교감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 이 괘는 불통의 상징을 상징한다.
- <태괘>는 땅이 위에, 하늘이 아래에 있는데, 자연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주역>>에서 이들은 상징이기 때문에 이런 뒤죽박죽의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위에 있는 땅은 내려가려 하고 아래에 있는 하늘은 올라가려 하므로, 둘 사이에 적극적인 교통과 교감이 생긴다. 이 괘는 위아래가 활발하게 소통해 태평성세(太平聖歲)를 이루어가는 세상을 상징한다.
64괘를 통해, 우리는 정상으로 보이는 배치 속에서 비정상을 발견할 수도 있고, 거꾸로 비정상으로 보이는 배치 속에서 되레 정상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런 사고 훈련을 통해 행운 속에 불운의 씨앗이 있음을 보고, 불행 속에 재기의 발판이 있음을 본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겨울 나무를 보면서 봄꽃과 여름 열매를 보고, 낙엽 한 장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차가운 겨울이 닥칠 것을 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는 관습으로 굳어진 일방적 판단이나 자기 합리화의 완고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역>>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안목과 지혜는 이런 것이다. <<운명의 앞에서 주역을 읽다>>의 저자 이상수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2월이 시작되었다.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주변의 것들 속에서 가치를 찾아 보리라. "세계는/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드러내 밝힌다"고 시인은 말한다.
2월/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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