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원래 어제 <박달재>를 가려고 했는데, 딸도 아프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해서, 그냥 혼자 놀았다. 이런 저런 상념이 머리에 가득했지만, 원고를 가지고 나가 카페에서 오후 내내 음악을 들으며 수정하고, 이런 저런 칼럼들을 읽었다. 그 때 눈 길을 끌었던 것이 정여울의 칼럼이었다. 어제의 사유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내 인생의 반전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거절당한 이후부터 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거절 당했던 경험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경험은 나의 현실을 더 인정하게 했고, 나 자신 만의 길을 찾을 기회였다. 나만의 길을 갈 때, 우리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거절 당한 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만나게 되는 것이다.
글의 경우, 발표되지 않았어도 그저 내가 조금은 괜찮은 글을 썼다는, 나는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던졌다는 느낌이 밀려오면, 나는 그것으로 아직까지 만족하고 있다. 만일 세상으로부터 거절 당해도, 나는 분노와 증오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를 구하는 방법은 '더 깊게'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나를 만들어서, 다시 말하면 그들이 원하는 나를 급조 하여 재능이나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나를 만드는 것보다 그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켜야만 하는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억지로 만들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까지 아껴주는 사람과 더 깊은 공감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뭔가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목받기보다는, 내가 평생 조금씩 뿌리내려온 내 사유의 토양 위에서 나를 더 튼실한 나무로 키워내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마음의 눈부신 주인공'으로 남는 삶을 살고 싶다. 사는 거 별 거 아니다. 환갑이 지나고 나니까. 먹고 사는 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무엇이 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자유롭다.
나의 즐거움은 딸과 소 곱창 구이를 레드 와인과 먹는 일이다. 실제로 식당에 가서 둘이 먹으려면 너무 비싸다. 그래 우리는 택배로 주문해서 우리가 직접 구워 먹는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곱창구이 집에 가면 와인을 맘 놓고 먹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젠 딸이 감기가 있어 나 혼자만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과식한 탓에 동네 운동장을 좀 걸었다. 거기서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를 만났다.
지난 1년간 써서 공유했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인쇄하여 다시 읽는 중이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방학이라 나만의 시간이 많다. 그래 시를 실컷 만난다. 내가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자신의 글에서 시인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한국일보, 2020년 1월 15일자) 그녀에 의하면,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후회하는 게 있다면, 시를 좀 더 많이 읽지 못한 것이다." 정여울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약 내가 스무 살로 되돌아간다면, 더 많은 시를 읽고, 더 자주 시를 낭독하고, 시의 언어 하나하나가 내 삶의 골수까지 스며들도록 내 마음에 더 많은 여백을 만들고 싶다. 인생에 그토록 감수성을 지닌 시기는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나는 지난 3년 전부터 아침마다 시를 배달하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그 시를 안 읽는다. 마음의 여백이 없기 때문일 거다.
시인을 존중하는 사회를 인문운동가로서 나는 꿈꾼다. 정여울 작가에 의하면, 시인을 존중하는 사회는 우리의 언어가 더 아름다워질 권리를 지켜주며, 단지 쉽고 빠르게 오가는 일상적인 언어를 뛰어넘어 우리들에게 더 높은 차원의 언어적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했다. 논리를 뛰어 넘어 존재하는 시인의 내적 현실, 언어의 문법을 뛰어넘어 꿈틀거리는 마음의 생기발랄한 흘러 넘침은, 시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동의 순간이 되게 한다. 어느 때 시 한 편은 내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지 않아도 나의 모든 고민을 다 털어 놓는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근심으로 부터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나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식이다. 그런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어제 오후 카페에서, 원고를 수정하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오블라디 오블라다>는 나이지리아의 한 부족 언어로, "인생은 흘러간다" "인생은 진행된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계속되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라는 말이다. 노래 가사 중에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la la how the life goes on.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되요. 브라/라 라 삶은 계속될 거 랍니다)"가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우리 식으로 해석 하면, "뭐 어때", "다 그런 거지 뭐", 다 괜찮아"로도 가능할 것 같다. 이 노래는 내가 힘들 때 마다 듣고, 기회가 되는 대로 이 곡에 맞춰 나만의 춤을 추곤 한다. 내가 춤을 추면, 딸은 싫어한다. 그러나 그 춤을 추고 나면, 특히 약간 취했을 때,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주철환 PD가 <오블라디 오블라다>라는 책을 냈다는 사실을 어제 알게 되어, e-book으로 샀다. 흥미로운 문장들을 만났다. 그래 몇 시간 동안 좋은 문장들을 써보았다. 이런 것들이다. "세상과 세월에 싸우면 누가 이길까? 세상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세월이 이긴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볼 것이다." 세월은 불공평해도 세월은 공평하니까. 따지지 말자. Carpe Diem. 순간을 즐겨라.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Ob-La-Di Ob-La-Da. 인생을 즐겁다. 인생은 아름답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그저 즐겁게 살다 의미 있게 죽고 싶을 뿐이다. 산책 길애서 만난 나무이다. 이렇게 살고 싶다. 서로 어울려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이정하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 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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