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산책 겸 책을 읽으러 동네 카페에 나가다, 흥미로운 유튜브를 듣게 되었다. 박재희 교수의 <영혼이 떨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였다. 나는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영혼이 떨리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고 싶다.<리스본 야간열차>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15분 밖에 남지 않은 기차를 즉흥적으로 타고 리스본으로 가면서, 자신이 근무하던 교장에게 남겼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음 문장을 소개 받았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박재희 교수는 동양 철학자이다. 그는 유튜브에서 노자의 꿈을 소개했다. <도덕경> 80장에 나오는 것이다.
노자의 꿈은 나와 같다. 박교수의 번역을 적어본다. 노자의 꿈은 "크기는 작고, 백성은 적은 국가였다(小國寡民)." 그래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내 마을이 좋다. 그리고 "문명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들을 굳이 쓸 필요는 없고(使有什伯之器而不用), 백성들이 죽음을 소중히 여겨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이리저리 옮길 필요가 없는 곳이다(使民重死而不遠徒)." 그리고 "배도 있고 수레도 있으나 탈 일이 별로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지만 싸움이 없는 곳, 지식이 권위와 권력으로 작용하지 않는 곳(雖有舟與,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이다." 자동차를 별로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기계들을 쓰지 않고, 텃밭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삶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나를 강제로 이주하게 하지 않는 곳에서, 노자의 생각처럼 나는 살고 싶다.
나의 일상도, 노자의 꿈처럼, "내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다고 생각하고, 내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가 가장 즐거운 곳(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基俗)"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노자가 바라는 "이웃나라는 서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닭과 개가 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왕래할 일이 없는(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그런 곳을 노자는 꿈꿨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먼 동네로 갈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화 되면서, 오히려 전염병에 대한 공포의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우리 일상을 장악했다. 공기를 통한 전염은 없다는 의학계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신종 코로나 확진 자들의 동선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메신저로 오가고 있다. 현지에서 이송되는 교민과 여행자의 집단 수용에 항의하는 시위현장은 '님비'라고 치부하기에는 남의 일 같지 않으면서도 과장된 공포와 정치적 알력, 지역감정 등 복잡한 속내가 느껴진다.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과 대응이라는 ‘스펙터클'은 우리가 얼마나 모순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지 우리는 잘 보고 있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위험은 날개를 달았다. 모든 국가의 대도시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한 항공망은 중국의 깊은 내륙 우한에서 출현한 바이러스를 빛의 속도로 지구 전체에 실어 날랐다. 보균자들의 동선을 보면 평소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는지 알 수 있다.
인문운동가로 나는 '꾸준하게' 세상을 '필링(peeling)'할 것이다. 인문학으로 힐링을 이야기 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가면'을 벗기는 '필링'을 할 것이라고 했던 세 번째 날로, 오늘 아침은, "화석 에너지의 지나친 사용을 통한 호주의 산불이 일으키는 지구의 재앙"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이다. 이젠 우리도 잘 알아야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삼림화재로 아비규환이다. 지금까지 남한 면적의 절반이 불에 타버린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는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보도에 따르면, 벌써 스무 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많은 집과 공동체가 붕괴하고 숱한 생명체가 불에 타 죽었다. 군대까지 동원되었지만 이 재앙이 언제 끝날지,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지금은 누구도 모를 가공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글이 너무 길어져, 평소 좋아하던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님의 글을 오늘의 시 뒤에 '덧붙임'으로 소개한다. 이런 이야기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재앙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오스트레일리아 못지않은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늘날 무역의존도가 특히 심한 한국의 주요 수출·수입품은 석유 관련 제품 일색이다. 산유국도 아니면서 이토록 기이한 한국 경제의 틀은, 언제 어떤 파국이 닥칠지 모르는 기후변화 시대에, 극히 위태로운 자멸적 구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김현태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등나무 그늘에 누워
같은 하루를 바라보는 저 연인에게도
분명,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눈물겨운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겨울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람 안에 또 한 사람을 잉태할 수 있게 함이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나무와 구름 사이
바다와 섬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 천, 수 만 번의 애닯고 쓰라린
잠자리 날개 짓이 숨쉬고 있음을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인연은,
서리처럼 겨울 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 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먹구름처럼 흔들거리더니
대뜸, 내 손목을 잡으며
함께 겨울나무가 되어줄 수 있느냐고,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밤에,
눈 위에 무릎을 적시며
천 년에나 한 번 마주칠
인연인 것처럼
잠자리 날개처럼 부르르, 떨며
그 누군가가, 내게 그랬습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현태 #복합와인문화공간뱅_62
덧붙임
▪ 일부 지역에는 얼마간의 비가 내려 산불 확산 속도가 조금 느려 졌다. 하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도 널리 그리고 깊게 번져버렸다. 더욱이 예년의 경우를 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이 본격화되는 것은 이제부터 라 한다. 도시민들의 삶도 삶이지만 숲 속의 원주민, 동식물들, 그리고 아까운 생태계가 얼마나 더 파괴될 것인가.
▪ 지구 전체가 개발 광풍에 휩싸이면서 어느새 특권적인 장소로 변해버린 탓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지금 유례없이 처참한 재앙을 겪고 있다. 이 사태가 잘 수습되지 않는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3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비극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번의 산불은 자연적이되 동시에 비 자연적인 재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도 지적했지만, 특히 현지의 소방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제어 불능 상태가 된 결정적인 요인이 기후변화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오스트레일리아 도시의 평균 기온은 연일 40도를 훨씬 웃돌고, 곡창지대에도 가뭄이 몇 해 째나 계속되고 있다. 물 부족 사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조만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강우 전선이 대륙 아래로 내려간 지점에서만 형성될 것이라는 데, 이 예측대로라면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 이 모든 게 기후변화 탓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주된 원인은 화석연료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 구조에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세계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 중 오스트레일리아가 점하는 비중은 3.1%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2700만)가 세계 전체의 0.3%라는 점을 고려하면 큰 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할 비중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 최대의 석탄 및 천연가스 수출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를 수입하여 쓰는 나라들(중국, 인도,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환경규제가 느슨하고, 개발욕망이 매우 강한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화석연료 소비량과 관계없이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에 속하는 나라임이 틀림없고, 그런 점에서 이번의 산불 재앙에는 인과응보라는 측면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 온갖 정황으로 보건대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것은 탄소 경제를 청산하고 생태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의 미디어와 지식인들은 (따져보면 화석연료 시대의 기득권 구조를 유지·강화하는 메커니즘에 불과한) 선거 이야기만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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