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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옛 것이 가면 새 것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부터 설 연휴이다. 음력으로는 내일이 새해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희망을 말하고 싶다. "옛 것이 가면 새 것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마침 <한겨레 신문>의 성한용 기차 칼럼을 읽고, 나는 지금을 '전환의 시대'로 보고, 그 시대정신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은 기존 질서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는 '탈진실의 시대"이다. 마치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의  '피렌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있다." 그 노래의 가사를 조금 적어본다.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피렌체와 르네상스 이야기를 들려다오
브라만스와 단테의 지옥 편을 들려다오
피렌체에서는 지구가 둥글 거라 하고
지구상에는 또 다른 대륙이 있을 거라 하네
배들은 벌써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을 향해 떠났네
루터는 신약을 다시 쓸 것이고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서 있네
구텐베르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뉘른베르크 인쇄소에서는 쉴새 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네
인쇄된 시들과 연설문과 팜플렛
새로운 생각들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그때와 비슷하게 지금이 '그런' 혼란의 시기이다. 21세기 IT 혁명의 충격을 겪는 지금 이 시대의 불안과 설렘이 그 시대와 닮았다. 지동설, 신대륙 발견, 종교 개혁, 인쇄 혁명은 중세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정보화 기술, 인터넷, 빅 데이터, 클라우드, 인공 지능 등은 20세기까지 세계를 지탱해 온 인본주의, 합리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등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구체적인 일상에서도, 대학 교수, 법조인, 의사 등 전문가들 그리고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권위와 신뢰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매일 목격하고 있다. 이 현상은 정보화 혁명의 역설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면서 기존의 권위와 신뢰를 몽땅 부정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도 그렇다. 내 생각과 다른 글이 나오면 그냥 패싱(지나침)이다. 나도 아침마다 글을 쓰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이것은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사람들이 확증편향으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며, 선동에 오히려 취약해지는 '탈진실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성한용 기자는 이런 현상이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조심하여야 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가짜 뉴스를 편식하다 보면, 자신도 무르게 진실과 믿음을  헷갈리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성 기자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정보의 바다'에 표류하면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추천'이라는 파도를 몇 방 얻어맞으면 미지의 장소로 떠밀려 가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상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성기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는 혼란스럽다. 기존의 권위가 신뢰가 붕괴하면 세상이 망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도 다음과 같이 성기자의 생각과 같다. "그렇지 않습니다. 옛 것이 가면 새 것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성기자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첫 노래 가사를 조금 들려주었다.

신의 시대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일어난 이야기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조각을 하고 시를 짓는
우리 무명의 예술가들은
당신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네
다가올 시대를 위해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 년을 맞지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2000년에 끝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머지않아 새로운 질서가 찾아 올 것이라고 성기자는 본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상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가장 급한 부분이 언론이다. 현재 우리의 언론은 날이 갈수록 공정성을 잃고 정파성을 심하게 드러내며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다.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언론 뿐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언론이 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권위와 신뢰의 추락으로 인한 언론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기자의 분석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보수 성향 신문들이 더 큰 문제이다. 현 정부를 너무 지나치게 비상식적으로 비판하는 바람에 상식적인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그 줄어든 영향력 때문에 현 정부를 향해 더 크게 악을 쓰는 식의 악순환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맹목적인 '반문재인주의'에 몰입해서 갈수록 극우화 하는 자유한국당 및 태극기 부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때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유력한 신문들이 이처럼 권위와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권위와 신뢰의 추락이 언론사와 언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더 서글프다. 성기자의 지적이다.

『노트르 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소설 제목이면서, 파리의 랜드 마크 중 하나인 대성당이다. 프랑스어로 노트르(Notre)는 영어로 하면 1인칭 복수 our란 뜻이다. Dame(담므)는 '부인'이란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담(Madame)'이 여기서 나온다. 그러니까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부인"이란 말이다. 시장 말로는 '우리들의 아줌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로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란 뜻이다. 프랑스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하는 성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성당의 정식 명칭은 ,까떼드랄 노트르-담 드 파리(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다. 여기서 de는 영어의 of에 해당한다. Cathedrale(까떼드랄)은 '대성당'이란 뜻이다. 말이 나왔으니 프랑스의 4대 대성당은 아미엥 대성당, 랭스 대성당, 스트라스부르그 대성당 그리고 파리 대성당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이라 말하면, 파리 대성당을 지칭한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난해 4월15일 밤에 불에 탔다. 이 성당은 중세 이후 파리에 있었다. 중심에서 오랜 세월 동안 파리와 프랑스의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 했다. 그래 단순히 문화 유산, 관광지가 아니라, 종교, 역사의 상징이었기 프랑스 인들은 물론이고 우리들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이 소설 내용을 토대로 1998년 같은 제목의 뮤지컬이 만들어져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번 공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시대 배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15세기였다면, 뮤지컬이 제작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새로운 천 년을 앞 둔 20세기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 질서의 붕괴를 바라보는 불안과 새 시대를 맞는 설렘이 뮤지컬 가사 곳곳에 잘 녹아 있다. 다시 한 번, 대전에 공연이 오면 꼭 관람하리라. 옛 것이 가면 새 것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메시지를 읽고, 너무 세상에 대한 비관을 멈추리라. 사진은 지난 주 옥천 향수길을 걷다가 대청호에서 찍은 것이다.  

시간의 강을 따라/정영숙

어딘가로 흘러감을 알고 있다면
도착할 시간이 지나온 시간 보다
짧음을 우린 알지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살을 타고 가며
아쉬워도 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이끌려 가는 수면 위
잡다한 나뭇잎 프라스틱조각
부패한 물고기까지도
홀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문득
저 멀리 가끔 시선에 들어오는
커다란 바다의 위엄 앞에
두려움 가득 주춤거리며 ​

시간의 기럭지 만큼 뒤로 물러가고픈 충동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홀로 도착하기엔 너무 두렵다며

오늘 나는
살아있는 자의 소리로 바다를 향해 외치고 있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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