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17일)
<<인간 다움>>이란 책의 저자 김기현 교수에 의하면,, 인간 답기 위해서 고매한 품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정직하고 염치를 알며, 애국심을 갖추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알고, 필요한 때에 용기를 낼 줄 아는 등의 품성은 고귀하다. 그러나 인간 답기 위해서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즐거움과 고통에 공감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 것, 이런 최소한의 도덕성만 갖춰도 인간 다울 수 있다. 그리고 타인도 나처럼 희로애락의 정서를 갖고 행복을 원하며 자기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 다움을 이루는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고 있다. 타인을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며, 이런 생각이 공감, 이성 그리고 자유(자율),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2)
2. 우리 안의 기준이 흔들릴 때 필요한 힘이 이성이다.
부정적 감정에 무릎을 꿇거나 편파적으로 작동하는 공감을 보완하는 구원투수가 '이성'이다. 이성은 정서를 보정해 보편적 규범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성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이다. 이성은 스스로 또 서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근거를 성찰한 뒤 이유를 찾아 대답하는 능력이다. 믿음 뿐만 아니라, 행위도 '왜'라는 질문의 대상이 된다.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이성은 경고음을 울린다. 이성을 영어로 말하면, reason이다. 이 단어는 이유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정당하다고 검증된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이성이기 때문이다. 설명과 정당화를 요구하는 이성은 한 사건과 행위의 배후를 이루는 일반적인 원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일반적 원리가 도출되어야 한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 화되려면 일반적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이 이것을 요구한다. 행동 규범이 편파적 이어서는 안 되며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일반성이 결여된 행동 규범, 즉 공정하지 않은 행동 규범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도 이성에서 나온다.
3. 독립적인 삶으로 완성하는 인간 다움이 자유이다.
한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도덕적 규범이 통용되고 있으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규범을 충실히 따른다. 그런데 그 규범을 따르는 이유가 전체주의적 통제의 결과이고, 이를 어기면 엄청난 처벌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전체주의 사회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표방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제한한 파시스트 사회를 말한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그 대표적 예이다. 또 이념을 통해 인간 개조 작업을 시행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공산주의 사회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그 사회 속에서는 인간 다움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율성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자율성은 주체성, 자기 결정권, 자주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그려 본 뒤, 주어진 상황을 점검하며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앞날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적 삶은 본능과 습관에 종속되는 않는 거다. 금방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성찰 없이 기존의 이념에 종속되어 있거나, 그것에 세뇌되어 로봇처럼 따른다면 이 또한 자유롭지도 자율적이지도 않은 상태라는 말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 반대가 외적인 강제와 간섭에 의해 선택의 문이 닫혀 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소극적 자유'이다.결핍된 자유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포함하지 않은 채 무언 가가 없어야 성립하는 자유이다. 즉 나의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 또는 강제가 없어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편 장애물이 없어서 선택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음에도 자유가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예의 경우를 보면, 그의 행동을 가로막는 간섭과 장애는 없으니 앞서 말한 소극적 의미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예를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빠진 것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자기의 계획에 따라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외부의 간섭과 장애가 없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자유, 이것을 '적극적 자유'라 한다.
인간 다움은 적극적 의미의 자유, 즉 자율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사람 답기 위해서는 이웃을 나와 같은 귀한 존재로 여겨야 하는데, 이 마음이 외부의 통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이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자발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물론 소극적인 자유가 인간 다움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간 다움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더 두터운 의미의 적극적 자유(자율)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자유(自由)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다.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저자는 인간 다움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공감을 연료로 하고, 이성을 엔진으로 해서, 자율적으로 공동 체적인 규범을 구성해 공존하는 성품"이다. 공감이 빠지면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의식 자체가 시작되기 어렵다. 그러나 공감만으로는 모든 인격체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어렵기에 이성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때 이성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 공동체적 규범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개인 스스로가 자율적 성찰을 통해 이성을 발원함으로써 공존의 윤리에 도달해야 한다. 인간 다움은 그럴 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 오늘 공유하는 시는 박노해 시인의 것이다.
다 다르게 불리기를/박노해
그가 건넨 명함을 본다
그의 존재가 단 하나로 불릴 때
직위와 직업으로 불릴 때
왠지 슬퍼지는 마음
삶이란 내 안에 내가 몰랐던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쓸모 있게 맞춰가느라
갑옷 속에 갇혀버린 수많은 나를
자유케 하는 분투가 인생 아닌가
그래, 무엇으로 불리기를 바라는가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다만 나를 만난 사람들에게
다 다르게 불리기를
샤이르 박으로
소년처럼 웃고 울던 이로
일 참 잘하던 사람으로
밥을 맛있게 먹던 이로
꽃을 좋아하던 고운 남자로
눈빛이 형형하던 사람으로
옷을 잘 차려입던 멋진 남자로
그러나 다 다르게 불려 온 나는
오로지 단 하나로 불리기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다_다르게_불리기를 #박노해 #인간다움 #이성 #자유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르고 공정한 사람을 친구로 갖는 것은 부와 값진 부동산을 소유한 것보다 낫다." (0) | 2025.01.19 |
|---|---|
| 적당한 불은 강하게 만들지만, 지나친 불은 파괴시킨다. (0) | 2025.01.19 |
| 인간다운 삶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관문이 공감이다. (0) | 2025.01.18 |
| 인간은 변덕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보편성이 없다. (0) | 2025.01.18 |
|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은 책을 읽는 데서 시작한다. (0) | 2025.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