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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든 생명의 첫 행동은 밥을 먹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마지막 행동은 밥술을 놓는 것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가 자주가는 식당 상호가 <밥 함께 偕(해)>이다. 한문 '해'자가 '함께 해'자이다. 주인 이름도 같은 '해'자가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가끔 <수미네 반찬>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어린 시절 <전원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좋아하던 일용이 엄마가 나온다. 그녀가 동일한 이름으로 요리책을 냈다고 한다. 그녀가 하는 말들이다. "집에서 두부 한 모를 썰더라도 엄마의 마음이 들어가 있어요. 손으로 만지는 게 결국 사람의 체온이잖아요. 눈에 안 보여도 기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집 밥이 중요한 거예요." 무엇을 할 때 우리는 눈동자가 살고 힘이 나는가? 김수미는 요리할 때라고 한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다섯 식구가 평상에 둘러앉아 밥 먹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게 먹을 거로 장난치는 일이라고 한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그 밥은 아니다. “모든 생명의 첫 행동은 밥을 먹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마지막 행동은 밥술을 놓는 것이다.”(김상현)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 밥이 있다. 밥을 먹으면 살고,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산 사람은 제 몸을 먹고 살 수는 없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내 몸 밖에 있는 사물을 먹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까 먹고 살려면 ‘나’는 타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라는 몸에는 이미 수많은 타자들이 살고 있다. ‘나’가 곧 ‘너’가 되는 세계가 ‘밥’이다. 근데,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한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 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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