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15일)
오늘 아침도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를 이어간다. 오늘은 "지혜의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50년 간 1만 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하여 책을 낸 일본 변호사 나시나카 쓰토무의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에서 '운'을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은 것"이라 했다. 그리고 나의 운은 항상 남의 운과 연결되어 있어 있기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면 예외 없이 좋은 운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이웃에 공헌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신의 호의(favor)가 곧 운이라는 거다.
스승 이어령은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운이라 했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태어난 후에는 각자 운명의 길을 걸어간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지혜의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고 타고난 팔자에 인생을 맡기고, 자기 삶의 운전대를 놓겠다는 말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운명론이란,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 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라 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저편의 세계, 'something great'가 있다는 거다. 지혜로운 자만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다. 그걸 인정하고 겸허해지는 것이 매일 매일 우리가 해야 할 수련(修練)이다.
우리는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어떤 식으로 개입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미례 예측에는 자기 투영이라는 핫한 테마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결정된 운 7이라면, 내 몫의 3이 있다는 거다. 이를 우리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한다. 재주(技)가 좋아도 그 역할은 30%밖에 되지 않고 성공에는 주변 상황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운(運)의 역할이 70%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운이 70%이고, 노력이 30%라는 뜻이다. 한 개인의 자질이나 품성, 능력이나 재주보다는 이른바 환경이란 시절 인연이라는 외적 요소가 성공이나 승리에 미치는 영향력이 원들이 크다는 말이다. 그 반대는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가지일에만 전념하고 뜻하는 바를 이룬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한 가지일에만 매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30%의 운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매사에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의 의식은 생각의 힘에 의해서 우주 공간과 자연 공간과 연관적인 관계 속에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습관적인 관습이나 행동양식을 만드는 거다. 그건 양선규(대구교대)의 다음과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
'운칠기삼'이 이루어지려면 필요한 것으로 양교수는 다음과 같이 3 가지를 꼽았다.
(1) 기다림: 조급함을 멀리하고 평정과 인내를 바탕 삼아서 돌고 도는 운세가 자기에게 도착할 때를 참고 기다린다. 이 때 이루어지는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하다. 이때 사욕(私慾)이나 과욕을 조심해야 한다. 오직 기적만 기다리는 자에게는 운이 오지 않는다.
(2) 믿음에 대한 믿음, 이를 우리는 염력(念力)이라 한다. 이를 '굳은 의지'라고도 한다. '운칠'의 세계에도 염력이라는 중화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염력의 주문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이다. 그러면서 일기장에 실패는 지우고, 성공만 기록하며 그 주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장면을 기록하고 꾸준히 체크해야 한다.
(3) 투신(投身), 즉 몸 던지기이다. 헌신(獻身)의 의미를 가진다. "상대의 목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내 뼈 하나쯤은 줄 수 있다"는 각오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 경지를 모르는 사람은 돌고 도는 운세의 흐름을 보지 못한다. 어쩌다 얻게 되는 짧은 행운은 오히려 인생의 독소가 될 수도 있다. 그건 마약과 같다. 잠시 그 시간이 지나면 연이어 닥치는 긴 불은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글이 길어진다.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나는 겨울에 산에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새해부터 가볍게 오르는 뒷산 길에서 걷기 운동을 한다. 오늘은 나무들을 보며, 오늘 아침 공유하는 동요를 기억했다. 언덕 비탈에 이 노래와 비슷한 이미지의 겨울 나무가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이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노래 분위기는 생기발랄한 아이들보다 차라리 지금의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이 구절로 감정 이입하며 나무를 쓰다듬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너머에 비추어는 아침 햇살을 보았다. 그 햇살이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같았다.
겨울 나무/이원수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오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지내 봐도 늘 한 자리
넓은 세상 얘기는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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