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올 겨울은 눈이 안 오고, 서글프게 겨울 찬비가 내린다. 동네 카페 창가에 앉아,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새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를 마저 다 읽으며,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그래 오늘 아침은 어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좀 더 하기로 한다. 산문집 제목, "그 사랑 놓치지 마라"에서 그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인터뷰 제목을 보니, "사랑으로 연결되어질 나와 당신"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그 사랑을 말씀하신다고 이해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삶이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고 자신의 책 『단순한 기쁨』에서 말씀하셨다. 이해인 수녀님은 "우리가 지상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녀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면 이렇게 기도 하신다고 한다. "내 남은 날들의 첫날인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루 한 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매일 대하는 이들을 처음 본 듯이 새롭게 사랑해야지." '내 남은 날들의 첫날인 오늘'이란 표현 앞에 숙연해 진다. 왜냐하면, 수녀님은 오랫동안 투병중이시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 안에서의 작은 죽음", 그러니까 몸과 마음의 고통, 시련 또는 인내가 필요한 일부터 잘 연습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신다"고 하면서, 다들 피하고 싶은 괴로움을 작은 죽음을 맞는 연습이라고 하셨다. 또한 우리가 비교급에서 조금만 탈피하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시며,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는 중국 격언을 소개하셨다. 긍정적인 행동 하나가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수녀님의 삶에서 건진 가장 귀한 깨우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만트라였다고 하신다. 나도 이 말을 좋아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내 만트라 중 하나이디도 하다.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오만해 빠진 자신의 신하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왕인 내가 가지고 있는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마술 반지가 있었다. 그 반지는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반지이다. 6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구해 오너라." 6개월이 거의 다 되어도 그 반지를 찾지 못한 신하는 막판에 한 노인으로부터 반지를 하나를 얻는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감 쩨 야아보르'의 첫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해인 수녀님은 자신의 산문시 <시간의 얼굴>에 이렇게 썼다. "죽음이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린다 해도 진실히 사랑했던 그 시간만은 영원히 남지." 살아서 남겨 놓은 사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게 바로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많은 이들이 낭송하고 싶어하는 시, 그리고 내가 좋아 하는 문병란 시인의 시, <인연서설>을 읽으며, 내 사랑의 감정 근육을 키우는 감성 촉촉한 시간을 갖는다.

인연서설/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 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 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문병란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