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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절대 자유의 경지

장자가 말하는  '득도(득도)의 7 단계'를 공유한다. 그 7 단계를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외천하(外天下)에서 시작하고,
(2) 외물(外物)
(3) 외생(外生)을 거쳐,
(4) 조철(朝徹) 단계와
(5) 견독(見獨) 단계에 이르고, 여기서
(6) 무고금(無古今), 무시간의 경지와
(7) 불사불생(不死不生), 곧 사생의 구별이 없어지는 경지를 맛보는 단계이다.

일정한 수련을 통해 일상적 의식에서 비일상적 의식으로 들어가므로, 우선 외부 세계, 물질 세계를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삶 자체 '나'라고 하는 것 자체를 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단계들은 전체적으로 잊음, 비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완전히 잊어버리면, 갑자기 새로운 의식이 생겨나 사물을 꿰뚫어 보는 형안(炯眼)이 열려 '밝음'을 체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하나'를 보게 된다. 이런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어지는 무시간(atemporal)의 경지, '영원한 현재(eternal now)'에 머물기에 죽음과 삶이 문제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으면,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하나'로 보는 것, 다시 말하면,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 즉 '조지어천(照之於天)'이고, 도의 '지도리'(도추道樞, pivot, still point)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이다. 장자는 이를 "인시(因是)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을 '명(明')으로 본다. 공자가 <<대학>>에서 말하는 "도재명명(道在明明)"에서 얻은 생각이다. 그리스도교 철학에서는 '반대의 일치', '양극의 조화(coincidentia oppositorum)'라 말한다.

오강남은 이를 '의식(意識)의 심화(深化) 과정'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서양 정신계의 심층을 형성해 왔다고 볼 수 있는 '신비주의(神秘主義)', 신비체험 전통에서도 인간의 영적 성장 과정에 다음과 같은 세 단계가 있음을 이야기 하였다.
(1) 정화(정화, purgation)의 단계
(2) 조명(조명, illumination)의 단계-장가가 말하는 '조철'이 겹쳐진다.
(2) 합일(합일, union)의 단계라 불렀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동방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수행의 3 단계도 비슷하다.
(1) 더러운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한 뒤,
(2) 명상과 깨달음을 통한 '테오리아(theoria)를 거쳐,
(3) 신과 합일하는 '테오시스(thosis)'로 이어진다.

나는 오늘 아침 이 '테오리아'에 시선을 고정한다. 동방 그리스도교에서 묵상을 그리스어로 '테오리아'라 한다. 그들은 '신과 합일되는 깨달음을 위한 단계'인 테오리아를 그리스도인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 테오리아는 정결한 삶, 절제와 경전의 명령 준수 그리고 신과 이웃 사랑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이론이라는 의미의 '씨오리(theory)'는 이 단어에서 나왔다. 이 '씨오리'의 원래 뜻은 '자신의 마음을 깊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테오리아'는 '자아 발견을 위한 고독'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신의 목소리는 천체의 변화에서도 있지만, 부드럽게 들려오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에 숨어있다. 이 영적인 기운, 침묵의 소리가 예수를 데리고 간 사막이다. 이 사막을 그리스어로 '에레모스(eremos)'라 한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버려진,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일상과 구별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예수가 40일을 보낸 것은 과거의 자아가 소멸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경계의 끝까지 간 사람이다. 죽음을 경험하는 신비의 순간까지 간 사람이다. 거기서 신의 '섬세한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그게 내가 말하는 묵상의 시간이다.

중세에 이 '테오리아'를 라틴어로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로 번역된다. 여기서 영어 '콘템플에이션(contemplation)'으로 차용되어 보통 '묵상'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묵상을 통해 '에고'라는 자아에서 벗어나, '무아'의 상태로 진입하는 수련이 득도의 과정이다. 이 무아의 상태에서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도 없다. 그래서 세상을 자신의 시간이 아닌 삼라만상, 즉 하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때 신비가 일어난다. 신비라는 '절대 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이 '도'(道)'를 전수하는 과정은 내일 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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