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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바다 거북이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배철현 교수의 <심연>을 읽으며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17)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카벙클(carbuncle)이라고 불리는 '임시치아'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있는 나를 바꿀 유일한 무기이다.
그냥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임시치아'하니까 잇몸이 떠오른다.

바다의 파도가 가장 높은 날, 그리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어미 거북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거칠고 드높은 파도를 가르며 23000km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온다.
5주에서 6주 전 몸 속에 품기 시작한 알을 낳기 위해서이다.
해안에 도착한 어미 거북이는 미세한 기척도 없는 한밤중에 수십 미터 떨어진 후미진 모래사장에 둥지를 튼다. 이곳은 바닷물이 닿지 않아 알들을 위한 둥지로 안성맞춤이다.
알이 안주할 만큼의 공간이 마련되면 어미 거북이는 50에서 2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뒤엔 곧바로 모래로 둥지를 덮어 놓는다.
세 시간 동안 이 모든 과정을 마친 어미 거북이는 미련 없이 바다를 향해 떠나간다.
2개월쯤 지나면 모래 속에 있던 알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새끼 거북이는 알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카벙클(carbuncle)이라고 불리는 '임시치아'가 그것이다.
거북이는 '카벙클'로 알의 내벽을 깨기 시작한다.

새끼는 무작정 알 안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금방 썩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의 내면을 깨지 못한다면 새끼 거북이는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며 정의하는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 흉내와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고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문제는 알을 깨고 나았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단한 알을 깨느라 카벙클이 온통 부서지고 피가 난 새끼 거북이를 맞아 하는 것은 어미 거북이가 알을 낳고 덮어놓은 30cm 두께의 모래이다.
새끼 거북이들이 이 견고한 모래성을 뚫고 나오는 데는 자그마치 3일에서 7일의 시간이 걸린다.
이때 새끼 거북이의 몸무게는 알을 깨고 나왔을 때에 비해 약 30퍼센트 정도 줄어 있다.

그런 후, 새끼 거북이들은 숨을 죽인 채 때를 기다렸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운명의 질주를 시작한다.
바다라는 새로운 생명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바다는 이들에게 천국인 동시에 지옥이다.
새끼 거북이들은 바다로 뛰어든 뒤 48시간 동안 미친 듯이 수영을 한다.
그들이 향해 가는 곳은 바다의 가장 밑바닥인 심연이다.
이곳은 수압이 높아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등딱지와 배딱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의 장소이다.

그리고 바다 거북이는 그 심연에서 1년을 홀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비로소 바다 거북이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실종의 기간' 1년이 지나면 떠다니는 미역에 몸을 실어 영양을 보충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면 짝짓기를 한다.
그리고 새끼거북이가 어른 거북이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확률은 0,1퍼센트란다. 1,000마리 중 한마리만 생존한다.

지금 경계에 서 있다면, 새끼 거북이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경직된 세계관을 깨야 한다. 나를 보호해주고 감싸주었던 알이 나를 감금한 채 죽게 하는 무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벙클은 내가 갇혀 있는 이 세계가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도구이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