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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사유는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거룩한 선물이다.

배철현 교수의 <심연>을 읽으며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12)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나는 내 생각의 가감없는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유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나의 생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아래 사진에 있는 "금동반가사유상"을 보면서, 사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불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앉아 있다. 그래서 '반가半跏'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다. 반가라는 말은 반가부좌半跏趺坐에서 나온 말로 부처의 좌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이다.

불상의 왼쪽 발은 족좌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의 발바닥, 특히 엄지발가락 밑에 상당히 두툼하게 부풀어올라있다. 붓다는 참선을 통해 해탈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탐닉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인간들과 함께 먼지가 나고 고통이 가득한 세계 안에서 발이 붓도록 돌아다니셨기 때문같다. 불상의 왼손은 그런 발을 어루만지듯이 가볍게 올려놓은 복숭아뼈를 살포시 감싸고 있다.

그리고 불상은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뺨을 살짝대며 심오한 생각에 잠겨 사유思惟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 같다.

사유思惟라는 말의 한자어에서 '사思'는 마음 심위에 있는 글자가 '밭 전田'이 아니라 한자의 '뇌腦' 자의 오른쪽 아래 등장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배철현(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생각의 대상은 뇌 속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만나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상은 때로는 지겹고 귀찮고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퉁퉁 부은 발을 어루만지는 붓다의 왼손같은 곳이다.

실제로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다. 예수는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매일매일 만나는 삶의 터전, 냄새나고 파리와 모기가 날리는 곳이다. 다만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 안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훈련이 바로 사유, 즉 생각이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철학이 시작된다.

사유란 말에서 '유惟'의 오른쪽에 있는 한자는 '송골매같은 새'나 '최고'를 의미하는 '추隹'자이다. 그러니까 사유한다는 것은 새의 눈으로 나를 보는 연습, 가장 높은 경지에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영어의 관조 아니 묵상이라는 말인 '컨템플리이션(contemplattion)도 '자신의 모습을 새의 눈으로 찍어본다'는 의미이다. 사유, 즉 생각 속에서 내가 응시해야 할 대상은 내가 처해 있는 현재 삶의 터전을 천국이라고, 지금 여기서 새의 눈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이 장소와 시간이 나의 사유의 대상이며, 그것을 나를 위한 천국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때 신은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한다.

행복한 천국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사유, 즉 생각하는 힘을 길러 일상의 삶 속에서 건져내는 구체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석가모니처럼. 반가사유상이 말해준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은 자비와 지혜, 쉽게 말하면 사랑과 깨달음이다. 내 이웃과 내가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깨달음(지혜)을 얻어,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물론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금 자리하고 있는 지금 여기가 천국이 되도록 구체적인 사유 작업을 하여야 다른 일를 더욱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본다.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