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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

유교적 가치관에 놓고 보면 우파보다는 좌파가 위에 있다. 유교는 책과 공부를 중시하는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의 방위 개념으로 볼 때도 좌파는 동쪽에 해당하고 우파는 서쪽에 해당한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동쪽은 양의 방향이다. 해가 지는 서쪽은 음의 방향인 것이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는 약간 더 높은 위계이다. 섹스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밀교 노선도 '좌도밀교(左道密敎)'이다. '우도밀교(右道密敎)'는 금욕과 명상, 절제로 가는 노선이다. 화끈하고 매력적이기는 우도보다는 '좌도밀교'이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좌도에 접근했다가는 거의 실패로 끝난다.

다시 좌파로 돌아가 공부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공자는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해 공부했고, 요즘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라 말했다. 유교의 선비들이 생각했던 공부는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인(人)은 타인을 가리키고, 기(己)는 자기 자신에 해당 한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공부이다. 반대로 위기지학은 자신을 위한 공부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고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는 공부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모두 다 '위인지학'이다. 스펙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 아닌가?

그러니까 '위기지학'은 자신을 충실히 쌓아가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고 과시하기 위한 공부이다.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즉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기뻐한다. 당연히 그 한계는 없다. 하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수시로 비교하며 남보다 앞서기 위한 공부를 한다. 남보다 빠른 출세,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 되면 공부를 멈춘다. 왜냐하면 애초에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올바른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지학' 하는 사람들은 실력을 쌓고 자신을 가다듬어 간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하찮은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실력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배어 나오게 된다. 마치 가득 찬 독에서 물이 넘치듯이,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아도 실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게 된다. '내공(內供)'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순자의 멋진 표현을 다음과 같이 공유한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 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 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겨우 네 치에 불과하니, 어찌 일곱 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이다. 그리고 공부의 마지막은 일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 계속되는 한 공부는 끝이 없다. "인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땅에 남기는 발자국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이 생각했던 공부도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뉘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人)은 타인을 가리키고, 기(己)는 자기 자신에 해당한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공부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공부이다. 반대로 위기지학은 자신을 위한 공부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고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조심하는 공부이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다 '위인지학'이다. 스펙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 아닌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는데, 사회로 지탄 받고 있는 586세대는 '러시아혁명사'와 '사회학적 상상력'을 밤새워 읽었던 사회과학의 세대였는데, 지나고 보니까 위인지학만 열심히 한 셈이었다. 사회과학의 관심은 온통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었지 자기 자신의 사욕과 이중성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었다. 사회를 분석하고 타인의 흠결을 송곳처럼 지적질 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자기 오류를 인정하고 허물을 반성하는 공부는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사회악 탓이었다. '위기지학'은 어려운 공부이다.

요즈음 돌아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극우파'의 모습을 보이며 등장한 두 전직 관료의 대선 후보를 보면, 위기지학은 커녕 위인지학도 제대로 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그들을 보면 586을 탓할 때가 아니다. 문제는 소위 '고시' 공부만 했다. 진짜 공부를 하지 않은 자들이 우리 사회의 리더였음이 백일천하에 그대로 드러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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