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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한국의 대학 이야기

오늘 아침은 한국의 대학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난 1학기 우리 대학 교육의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전환이었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동료 학생 간에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하고 성장하는 상호 교류는 일시 중단됐다. 그리고 수업의 온라인화와 평가 관리는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강의 온라인화 등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 지향점이 무엇인지 먼저 설정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지향점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긍정의 에너지도 품지만, 이면에는 위기를 활용해 재빨리 이익을 얻으려는 경박한 재난 자본주의의 모습도 도사리고 있다. 성급하게 임시방편을 택함으로써 값싼 이득은 취하지만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주의해야 한다. 숨 쉴 틈 없이 관성으로 달려왔던 우리 사회가 잠시 멈춰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의 정체성을 회복할 기회이다. 미래학자들에 의해 예견된 대학의 종말 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고등교육법 제28조에 따르면 대학의 목적은
• 인격을 도야(陶冶) 하고,
•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 국가와 인류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과연 대학이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 인격이 아니라 스펙을 갈고 닦고 있고, 심오한 학술이론보다 가시적 성과와 취업률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와 인류에 이바지하기보다 교수·학생·대학 모두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다. 생존을 위해 교육 공동체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 자체가 정체성의 종말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와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등 많은 사람이 오래전부터 대학의 위기를 경고했다. 개방형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대학에 다니는 선명한 이유가 없다면 대학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현실이 이렇다.
• 구글·애플 등 세계적 기업의 채용에 대학 졸업장이 요구되지 않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더는 교육이 필요 없는 분야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대학 위상에 큰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 길어진 기대수명으로 인한 100세 시대, 2번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20대 초·중반 특정 전공으로 끝나는 대학 교육의 역할이 적절한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대학은 분명히 벌써 위기였다. 왜냐하면 2019년 합계 출산율 0.92명인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생 추세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는 언젠가 닥칠 시한폭탄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9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8년 약 70%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OECD 평균(41%)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과거 우리의 높은 대학 진학률은 인적자본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 교육이 실용적으로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 진학률이 OECD 평균으로 수렴해가는 건 한국 대학의 존립에 치명적이다.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선을 고민하던 대학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기치 않은 직격탄을 예상치 않게 빨리 맞고 있다. 에를 들어, 대학의 일상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재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다고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조차도 코로나19로 인해 인력과 설비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하버드대는 지난달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으로 2년간 수입이 12억 달러(약 1조43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며 교직원들의 조기 퇴직, 근무시간 단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학들에 머지않아 닥칠 현실이다. 참고: <중앙일보, 송인한의 페스펙티브>, 코로나_19와 대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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