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6일)

오늘 대구에서 강의하고 싶은 내용인데, 강의 시간이 짧아 다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 내용을 오늘과 내일로 나누어 공유한다. 주제는 '천지가 장구한 이유는 부자생이라는 거다.'
노자가 <<도덕경>> 제7장에 말한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간다)"라는 말은 백낙천(백거이, 772~846)에 의해서 한 번 뒤집어진 이후로는 본뜻보다는 ‘뒤집어진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유덕화, 오천련이 열연한 영화 <천장지구>(진목승, 1990)이후로 더 유명해진 말이 되었다. 사실 영화 원제목은 "天若有情(천약유정)"이었다. 당나라 시인 이하의 시, "天若有情天亦老(천약유정천역로)로, '만약에 하늘에 정이 있다면, 하늘도 (슬픔으로) 늙으리'라는 뜻에 유래하였다 한다. 이영화는 고아로 자란ㄴ 암흑가의 청년 아하와 그를 사랑하게 된 부잣집 딸 주주의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서 영화 제목 <천장지구>는 어떤 상황에소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자 <<도덕경>>에서 "천장지구"는 성인(聖人)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하늘과 땅만큼 오래가고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유래한다. 그 일부를 공유한다.
헤어질 무렵 은근히 거듭 전하는 말이 있었으니(臨別殷勤重寄詞)
그 말에는 둘이서만 아는 맹서가 들어 있었지(詞中有誓兩心知)
칠월 칠석 장생전(長生殿)에서(七月七日長生殿)
깊은 밤 남몰래 속삭인 말(夜半無人和語時)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자(在地願爲連理枝)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지만(天長地久有時盡)
이 한(恨)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此恨綿綿無絶期)
〈장한가〉는 120구, 840자로 이루어진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슬프 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전단은 총 74구로, 현종이 양귀비를 만나 지극한 사랑을 나누다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양귀비가 죽은 후 밤낮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창자가 끊기듯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그렸다. 후단 46구는 현종이 양귀비를 못 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한 도사가 선계로 가 선녀가 되어 있는 양귀비를 만나 그녀에게 들은, 현종을 그리워하는 양귀비의 마음과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맹약으로 되어 있다.
위에 예로 든 부분은 선녀가 된 양귀비가 도사에게 이야기해 준, 천보(天寶) 10년(751) 칠월 칠석에 현종과 양귀비가 화청궁(華淸宮)에 거동하여 노닐며 장생전에서 나눈 사랑의 맹약으로,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지만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는 구절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애정을 비유하는 말인 ‘천장지구’가 유래했다. 〈장한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었으며, 시가와 소설과 희곡으로 윤색되는 등, 중국 문학에 많은 제재를 제공했다.
나는 이 <장한가>를 지은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그 이름은 『중용』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라 한다. '거이'는 거할 거(居)+평범할 이(易)'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처럼, '낙천'하며, '거이'하게 살고 싶다.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온다. 천지(天地)가 장구(長久)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부자생(不自生)"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생(自生)"하려 하지 않았기(不) 때문이라는 거다. 자생(自生)은 스스로(自) 오래 살려는 시도(生)로 읽으면 된다. 여기서 자(自)를 목적어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 "부자생"은 '자아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자기 의식 없이 생성한다', '자신의 의지나 욕망에 따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조작하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삶을 연장키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요약하면 천지가 장구하고 장생하는 이유는 부자생하다는 말은 하늘과 땅이 베푼 은덕을 과시하거나 으스대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때 맞춰 비를 내리고,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낮과 밤의 순환을 주재(주재)하나, 결코 자신의 공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 말이 "부자생"이다.
오래 살려고 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무심하게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오히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거다. 하늘과 땅이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듯이,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에 집착하지 않을 때 그 성공은 영원히 그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의 생성이 모두 자기로 인하여 이루어진다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앞에서 말했던 "생이불유(生而不有, 낳되 소유하지 않음)" 계열의 해석이 가능하다.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것은, 천지는 만물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을 뿐 자기 자신의 사적인 생명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는 자기 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능히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노자 이야기는 자생(自生)하지 않기 때문에 장생(長生)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도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면 저절로 권위를 회복하여 선두에 서거나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거다. 그 근거는 자연의 존재 형식이나 운행 원칙이 관계 속에 있으며 그것이 비본질적이라는 데 있다. 좀 어렵다 잘 읽어야 한다. 관계적이며 항상 변화하고 있고 비본질적으로 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자신'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기 스스로 가지면서 '자신으로서(자신의 본질 속에서) 존재할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을 근거로 하는 행위는 정당성도 없을 뿐 아니라 참된 성과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이러한 노자적 삶은 소극적이고 모든 이로움을 방관하는 달관한 은자의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크고 진정한 효과를 기대하는 삶의 지혜이다.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능히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을이 짧다. 벌써 오늘 아침에는 서리가 내렸다. 길가의 나무는 겨울 준비에 철저하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가을은 짧아서/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
영원의 시간을 걸어가는
짧은 가을날의
긴 마음 하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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