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4일)

일주일 만에 <인문 일지>를 공유한다. 그 사이에 이미 3000이라는 <인문 일지>의 숫자를 넘겼다. 지난 10월 27일부터 <아시아와인트로피>에서 와인 심사를 하며, 와인과 함께 일상을 벗어났었다. 게다가 중간에 강의가 여러 개 있었고, 이어 11월 1일부터 시작된 <대전와인 EXPO>행사에서 여러 가지 역할로 분주했다. 게다가 저녁마다 이어졌던 와인의 향에 취해 차분하게 혼자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24 아시아 와인 트로피(Asia Wine Trophy)>는 지난 10월 27일(일) 대전 컨벤션 센터 1 과 2 전시장에서 시작하여. 10월 30일까지 종료되었다. 그리고 11월 1일(금)부터 3일(일)까지 대전 와인 EXPO 전시회, 한국국가대표 소믈리에경기대회(와인, 전통주, 워터, 티, 대전 시민, 대학생부문)가 연속적으로 개최된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아시아 와인 트로피(Asia Wine Trophy)는 국제와인기구(OIV)가 인증하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 와인 품평회로 자리를 잡았다.
<아시아와인트로피>는 국제와인기구 OIV(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Vine and Wine)의 승인과 감독 하에 대전마케팅공사와 독일와인마케팅사(베를린와인트로피 주최)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와인 품평회이다. 올해로 12회째를 진행했다. 난 1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12년의 세월이 그려진다.
다음 사진(출처: <소믈리에 타임즈>)은 < 2024 아시아 와인 트로피> 심사 현장이다. 전 세계 33개국에서 3,527종의 와인이 출품됐었으며, 전 세계 22개국 104명의 와인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수상한 와인은 대전의 상징인 한빛탑과 대한민국 대전이 새겨진 메달을 와인병에 부착해 대전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와인 품평은 눈, 코, 입으로 한다. 일반적인 와인, 즉 스파클링이 아닌 스틸 와인 품평에서 눈으로 주는 점수는 15점, 코로 주는 점수는 30점, 입으로 주는 점수는 44점이다. 합이 89점이고, 전체적인 와인 평가에서 만점을 받으면 11점이다. 그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와인이라면, 100점을 받는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와인 품평 점수는 82-90점이다.
나는 와인 품평을 하며, 제일 먼저 와인의 색의 투명도를 본다. 그리고 이어서 와인 색의 농도, 와인의 주요 색깔, 뉘앙스(잔을 흔든 후 이차적 색깔), 점도를 보며 투명도 이외의 전체적인 시각적인 사항을 품평한다. 출품한 와인들의 대부분이 시각적인 부분은 변별력이 심하지 않다.
다음은 코를 통한 후각적인 품평을 한다. 후각의 순수성을 평가한다. 이어서 향의 강렬도를 본다. 다시 말하면, 코를 통해 느껴지는 향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의 정도를 품평한다. 나는 이 때 감지되는 향이 좋은 와인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 향의 인지가 가장 취약하다. 소설가 백영옥이 소개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책 <<개의 사생활>>에 의하면, 향에 있어서 인간과 개가 경험하는 세계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인간 코에는 거의 600만개 정도의 감각 수용체가 있고, 양치기 개의 코에 는 약 2억만개, 비글의 코에는 3억만개 이상이 포진해 있다. (…) 그러니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후각 상실자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쿠키 향으로 시작된다. 시각·청각·촉각 중 인간에게 가장 오래 각인되는 기억이 후각인 셈이다. 개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양일 것이다. 그래서 향을 품평하기가 가장 어렵다. 순간적으로 특정한 물질에 의해 코가 자극 받을 경우 느껴지는 감각을 찾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젠 입을 통해, 와인의 미각을 평가한다. 와인이 입 안에 있을 때 인지되는 총체적 감각을 말한다. 미각을 통해 와인의 순수성을 본다. 특히 포도 재배 관련 결함, 양조적인 결함 등을 감지한다. 결함의 근원은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상태, 양조하면서 일어나는 오염, 특히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산화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와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판단한다. 와인의 일반성과 개성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숙성의 잠재 능력까지 감안하여, 와인에 점수를 준다. 이 평가는 타블렛으로 이루어진다. 그래 자동으로 점수가 계산된다.
좋은 와인 한 모금은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왜? 만족스러운 느낌이나 맛 그리고 즐거움과 재미를 주면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지성이나 이성을 굳고, 경직되게 하는 일을 막아준다. 이런 여가와 놀이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재미가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심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부단히 들락거리는 중심이어야 한다. 여가나 놀이마저 중심으로 건축되어 도달해야 할 것, 발견되어야 할 것,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면 이것도 삶의 재앙이다. 고전을 읽으며, 철학적 시선, 지성적인 힘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난 딸의 와인 숍 & 바에서 즐겁고 재미 있는 생활을 한다. 그 일이 나의 밥줄이다. 그 일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들락거림을 위해, 아침마다 글쓰기와 공부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장사를 한다.
『보물섬』을 쓴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그래서 “와인은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와인을 우리의 인생과 비교할 수 있다. 첫째, 와인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람처럼 나고 자라고 또 병 속에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다 마신 와인 한 병을 ‘시체(Un Cadavre)’라고 부른다. 둘째로는 와인에도 인생의 역경이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달콤한 열매를 맺는 것이 인생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와인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실제로 와인은 절정의 순간을 위하여 숙성을 통해 감질나게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와인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하여 인내하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너무 닮았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깊은 맛"이 나려면,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숙성 시켜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일 게다. 음식은 한문으로 쓰면 이렇다. 飮食, 즉 음(飮, 마시는 것)이 먼저이다.
내가 와인을 알고 공부하게 된 것은 프랑스 유학 시절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의사 시인 마종기에 의하면, 실패한 의사들을 공통점이 취미가 없다는 것, 자기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유학기간 동안 취미로 와인을 공부하다가, 이젠 그것이 밥을 벌어주는 직업이 되었다. 마종기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의학, 과학을 지상 최고의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삶의 의지가 단번에 꺾입니다. 다른 취미 없이 외골수로 살아가면 인생에 있어서 큰일이 닥칠 때 쉽게 이겨 내기 어려워요.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취미를 갖고 그것을 즐기면, 의사로서 좌절하고 봉변을 겪게 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엄지혜, <<태도의 말들>>)
와인을 알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타인의 마음 상태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태도도 없어진다. 마음의 공기를 전환시키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찾아 마시면 감정이 빠르게 전환된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삶이 우리를 속인다면, "순간의 삶"인데, 와인과 함께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시인은 술잔을 마주하라고 권한다.
대주(對酒)/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
나는 나를 '와인, 술 파는 인문 운동가'로 부른다. 그랬더니, 어떤 한 지인은 더 쉽게 '술 파는 철학자'로 고쳐준다. 내가 와인을 알게 되고, 전문가로 밥 벌이를 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 그래 나는 나를 '와인 팔며 마시는 인문 운동가'로 행복하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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