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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갈비에 나뭇잎 보낸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비 오는 어제 오후에, 난 동네 근린공원을 우산 쓰고 걸었다. 태풍이라고 하는데, 걱정은 안하고, 하루 종일 내리는 가을비를 즐겼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고, 여름은 ‘열매’의 고어이고, 가을은 갈무리하는 '갈’이고, 겨울은 ‘결’이다. ‘볼열갈결’(사계절)의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열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갈비에 나뭇잎 보낸다. 그리고 나무의 나이테 동심원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나무가 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중심부는 무위(無爲)와 적막의 공간이지만, 나무의 하늘로 향하는 수직을 버텨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그러니 無爲는 존재의 뼈대이다.  나도 크게 하는 것 없는 無爲로, 나의 "물기 닿지 않는 중심부"를 힘들게 잡고 있다.

가을비/박인걸

초가을 빗줄기
나뭇잎을 손질하며
포장도로 틈새까지
말끔히 씻어 내리고

마음 한 구석
버리지 못한 욕망들
삶의 찌꺼기까지
모두 쓸어내린다.

자연을 가꾸는 정원사
마음을 다듬는 손길
넉넉한 가을을 맞이하라고
곱게 단장하고 있다.

비 그치고 나면
젖은 몸 털고 일어나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나도 더욱 여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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