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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르스’는 하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292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6일)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로마인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교육 과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라고 불렀다. 여기서 ‘리버랄리스’는 ‘자유로운’이란 의미이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선별해 알고,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고 의연(毅然-의지가 굳세어서 끄덕 없는)한 사람, 즉 ‘자유인(自由人)’이다.

어제  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자유라는 말의 정의에서 멈추었다. 오늘은 '아르테스(artes)'라는 말을 좀 정확하게 정리한다. 여기서 ‘아르테스(artes)’는 ‘최선, 예술,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르스(ars)'의 복수형이다. ‘아르스’는 하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마치 그 솜씨가 어머니가 담근 김장 김치 맛처럼, '아르스'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이 만들어준 최적화된 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실패라는 경험들이 굴복하지 않는 의지와 결합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감동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필멸성(必滅性)이 동물 상태의 인간을, 영원을 희구하는 신적인 인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이러한 여정에서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는 부모로부터 의술을 배웠고, 그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여, 의사가 되려는 학도들을 위한 <<교본>>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시간의 시급함과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학 교본에 등장하는 <격언집'(Aphorismi)>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 위기는 쏜 화살처럼 달아나고 경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에게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환자, 간호원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거다.
 
인생이 짧으니, 자신에게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다른 이들과 협력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며 심판을 하는 시간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강물이 흘러가듯 항상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137억년 전이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1시간 전이나,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순간이다. 인생은 허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다. 그런 삶을 연장하는 열쇠가 '기술'이다. 여기서 '테크네'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여기서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나온 것이 아닐까?
 
'테크네'는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을 하나로 엮어 상상하지도 못한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된다. 로마로 와서, 호라티우스는 히포크라테스의 문장을 라틴어로 'vita brevis ars longa(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하였다. 그는 그리스어 '테크네'를 라틴어 '아르스'로 번역하였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의 어원이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예술은 어떤 분야 든지 최선의 경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예술가는 그 순간에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 들에서 최고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사람이다. 몰입하지 않는 기술이나 예술은 없다. 예술이나 기술은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 들에서 최고를 선택하는 수고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로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21세기 문명의 기반인 최첨단 기술은 고독을 통한 그의 심오한 통찰이 만들어낸 예술"(배철현)이라 했다.
 
그러니까 ‘예술’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르스ars(그리스어 테크네, 기술)’의 의미가 ‘우주의 질서에 알맞게 만물(萬物)을 정렬시키다'가 되는 것이다. 이 정렬 시키는 일이 '배치'이고, 어제부터 이야기하는 문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을 지배하며, 몇 가지 삶의 규칙을 가지고 '지금-여기'의 삶을 정돈하는 사람은 모두 예술가이다. 그냥 충동적으로, 감각적으로 살면서 무질서한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시간 있다고 TV만 보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 '저 너머'를 꿈꾼다. 생존만을 위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인문운동가도 예술가이다. 인문운동가로서, 나는 사람들에게 흔히 말하는 쓸데 없는 일을 궁금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먹고 사는 일 이외에의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 '테크네'와 ‘아르스’는 하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어제부터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어제도 말했지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교육이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 즉, ‘교양 교육’이다. 이 교양교육의 가장 기본이 ‘트리비움’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지식이다. 너무 흔해 하찮게 보이지만, 공기처럼, 어머니의 사랑처럼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덕목들이다. 트리비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민교육의 틀이며, 8세기말 프랑크 왕국의 카를대제(샤를마뉴)의 문화장려교육을 통해, 오늘날 서양교육의 기반이 되었다. 나는 독립적인 인간인가? 무엇이 독립적인 인간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결국 독립국가를 만드는가? 트리비움을 구성하는 세 가지는 문법(文法), 논리(論理), 그리고 설득(說得)이다. 지난 9월 4일자 <인문 일지>에서 이야기 했다.

'트리비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민교육의 틀이었지만, 8세기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768∼814)가 다시 트리비움을 부활시켰다. 그것이 서양 교양 교육의 커리큘럼이 되었다. 그는 사제교육에 한정되었던 배움을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 즉 ‘교양교육’ 혹은 ‘인문 교육’이란 용어로 설명하고 귀족들과 귀족자제들의 교육으로 확장하였다. ‘트리비움(trivium)은 수도원과는 별도로 등장하기 시작한 서양교육의 커리큘럼이 되었다. 이 교육의 기초가 되는, 그래서 하찮아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교육을 ‘트리비움’이라고 정의했다. ‘트리비움’을 완수한 수련생은 그 다음 단계인 ‘콰드리비움’quadrivium, 즉 ‘네 과목’을 배운다. ‘시간’을 배우는 ‘산수(arithmetic), ‘공간’을 배우는 ‘기하학(geometry), ‘시간과 공간의 조화를 배우는 ‘음악(music), 그리고 ‘초월과 신’을 공부하는 ‘천문학(astronomy)이다. ‘트리비움’은 중등교육(초중고) 과정이고 ‘콰드리비움’은 고등교육(대학) 과정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인 ‘트리비움’은 세 가지로 구성 된다: 문법학, 논리학 그리고 수사학(설득 기술)이다. 

지난 8월 28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연세대 심리학과의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신체, 정신적 즐거움의 합”이라며 “어디서 즐거움을 느끼든 '자주 느껴야' 행복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즐거움을 주는 존재를 발견하고 일상에 많이 배치해야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말의 배치로 시작된 사유가  샛길로 너무 빠졌다.

이어서 서 교수는 사람의 성격 특성과 국가별 비교를 통해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행복을 잘 느끼는 데에 사람의 성격과 속한 국가가 영향을 다음과 같이 미친다고 했다.
▪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재미 느낀다.
행복과 관련 있는 인간의 대표적 특성은 ‘외향성’이다. 외향인이 비교적 행복한 이유에 대해 ‘인간에게 중요한 자원이자 자극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또다른 인간인데, 내향인보다 외향인이 사람을 더 많이, 자주 만난다'고 설명한다. 서 교수는 이와 관련해 “평균적으로 내향인이 덜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사람간 교류를 만끽하는 것은 오히려 내향 인일 수 있다”며 “내향적인 사람이 타인과 교류할 때 행복의 증폭 정도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 타인의 평가 의식할수록 행복과 멀어진다.
사회적 비교는 행복을 갉아먹는 대표적 행동이다. 이런 현상은 집단주의가 강조되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국가에서 비교적 더 많이 나타난다. 개인주의 철학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기 어려운 탓이다. 때문에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가 발표한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143개 중 52위를 기록했다.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이 순서대로 1~4위를 차지했다. 타인의 평가가 중요할수록 행복감이 낮다는 결론 도출이 가능하다. 

서 교수는 “개인주의는 틀에 가둔 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닌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포용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가 실제 북유럽 국가에 속한 사람들에게 ‘가장 비호감인 사람’ 유형을 물었을 때 모두가 입을 모아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 서로 간의 적나라한 비교가 이뤄지는 SNS를 두고 ‘행복감이 낮은 사람이 SNS를 더 많이 이용한다’ ‘SNS에 과몰입하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 발생 위험이 커진다’ 등을 입증해 낸 연구 결과가 여럿 존재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늘 공유하는 시에 나오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사진처럼, 틈이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내게 좋은 사람/전선경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 따뜻한 사람이 더 좋다

조각같이 잘생긴 사람보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더 좋다

처음에만 잘 대해 주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금방 무관심해지는 사람보다
꾸준한 맘으로 상대방을 
대해주는 사람이 더 좋다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보다
아이에게 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더 좋다

가끔씩 하늘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아이의 미소를 보고 
길 가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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