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7일)

어제 공유했던, <<문언>>의 "원형이정"을 도표로 정리해 본다. 군자(君子)의 네 가지 덕(四德)이라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혼란스러울 때는, 이 표를 보고, 일상의 삶을 점검해볼 수 있다. 때에 따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원(元) 체인(體仁) 선지장(善之長) 장인(長人)
형(亨) 가회(嘉會) 가지회(嘉之會) 합례(合禮)
이(利) 리물(利物) 의지화(義之和) 화의(和義)
정(貞) 정고(貞固) 사지간(事之幹) 간사(幹事)
일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사랑을 장착("체인")하여, 만나는 사람을 대접하는 거다. 그 사랑을 우리는 '황금률'이라 한다. 엄청난 rule(규율)인 것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이를 대접하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다른 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환대하라. 그 대전은 상대를 성장하게 하는 거다. 그래 "장인(長人, 사람을 성장하게 해준다)"이라 한 게 아닐까?
그 다음, 사람들을 만나면 예의를 지키고, 예쁘고 즐겁게 만나라는 거다. 그걸 "가회(嘉會)"라 했다. 에티켓과 매너를 갖추는 거다. 매너는 에티켓과, 엄밀하게 말하면 그 뜻이 다르다. 에티켓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인 불문율로써 하나의 규범'이라면, 매너는 실제 생활 현장 속에서 그 '에티켓을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다음의 예를 보면, 우리는 금방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규범으로서 에티켓이고, ‘노크를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하는 방법은 매너에 속한다. 따라서 에티켓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다. 에티켓에 맞는 행동이라 해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예의를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로서의 매너의 기본원칙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진정한 매너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배려심이다. 그 배려심은 자신이 불편을 자초(自招)해야 한다. 난 '자초'란 말을 좋아한다. 수동이 아니라 능동이기 때문이다. 타율이 아니라 자율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더 나아가 만나는 모두가 이익이 되게 하지만, 그 때 발생하는 갈등은 정의로움으로 해결한다. 그 정의로움의 충돌을 잘 조화시키라는 거다. 그 길은 공정한 분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혼자 그 이익을 독차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그걸 "화의(和義)"로 표현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잘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끝으로 지조 있고 단단한 일상의 자세를 취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완결 짓는 일이다. 꾸준함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되어감의 존재(하이데거)’이다. 이 세상에 던져질 때는 아무도 삶을 선택할 수 없으나, 태어난 자신을 어떤 존재로 가꿀 것이냐는 자기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의지와 열정을 품고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바꾸어 가는 실천 속에서 우리 삶은 비로소 충만해진다. 인생의 본질은 "자기 존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 삶의 밀도란 시간 가성비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실현이다. 바란다고 누구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재의 나를 되짚으면서 나의 모자람을 돌아볼 마음이 있고, 되고 싶은 존재를 향한 의지가 있고, 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되기 위해 해야 할 당위를 지킬 때, 비로소 우리 존재는 완성된다. 따라서 꾸준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성찰의 시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차분히 돌아볼 여유, 삶의 방향과 목적에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집중하는 실천 없이 삶의 밀도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貞)은 질문 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일상에서 '원형이정"이 구현된 사람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가 <내게 좋은 사람>이다.
내게 좋은 사람/전선경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 따뜻한 사람이 더 좋다
조각같이 잘생긴 사람보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더 좋다
처음에만 잘 대해 주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금방 무관심해지는 사람보다
꾸준한 맘으로 상대방을
대해주는 사람이 더 좋다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보다
아이에게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더 좋다
가끔씩 하늘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아이의 미소를 보고
길 가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이젠, 어제에 이어, "원형이정(元亨利貞)"애 대한 주희의 <문언> 주석을 살펴 본다. 주희는 <건괘>, 즉 하늘 괘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 원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생성하는 그 시작을 가리킨다. (…) 계절로 말하자면 봄이 되고, 사람으로 말하자면 인(仁)이 되니, 모든 선(善)의 으뜸이다.
▪ 형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생성하는 과정의 형통함이다. 사물이 이 단계에 이르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계절로 말하자면 여름이요, 사람으로 말하자면 예(禮)가 되니, 모든 아름다움이 모여 회통(會通)하는 것이다.
▪ 리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생성하는 과정을 마무리 지어가는 단계를 의미한다. 사물이 제각각 마땅함(정의로움)을 얻어 서로 방해하지 않으니, 계절로 말하자면 가을이요, 사람으로 말하자면 의(義)가 된다. 이것은 각기 주관하는 분수가 조화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 정이라는 것은 사물을 생성하는 과정의 완성을 의미하니, 그 열매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각자가 모두 충족한 상태를 지속시킨다. 그러므로 계절로 말하자면 겨울이요, 사람으로 말하자면 지(智)가 되니, 정이라는 것은 모든 일의 주간(主幹)이 되는 것이다. "간(幹)'이라는 것은 나무의 본 몸통이니, 가지나 이파리가 그 줄기에 의지하여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젠 "원형이정"에 대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 그의 <<도올주역강해>>를 참고한다.
▪ 원(元)의 의미는 천지의 우두머리이고, 으뜸이며 보편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구원하는 근원자라는 뜻이라 하며, 이렇게 해석했다. "그대는 천지만물에 스며 있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를 구현하여 만인의 으뜸이 되라. 그대는 매사에 리더십을 확보하게 되리라. 원은 보편성(university)이다.
▪ 형(亨)은 일차적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라 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천지의 창조적 기운에 힘을 보태는 것이고, 하느님과 소통하는 것이고, 그러함으로써 모든 사물과 형통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제사는 나눔(sharing)이다.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대는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하느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제사를 지내 만인, 만물과 형동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라. 형은 제사 의식을 통한 나눔(sharing through rituals)이다.
▪ 리(利)는 가을에 논밭에 뿌린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것이고, 그것은 이득이고, 수확이고 인간의 노고의 결실과 보람을 뜻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리'는 '~하는 데에 이로움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이견대인"은 "대인을 만나는 데 너의 이로움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교수신문>이 작년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의미다. 그 반대가 "견리사의(見利思義)"(<<논아>>)이다. '이로움을 보면 곧 의로움을 생각하기만 해도 훌륭한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 세상에서 '리'는 항상 충돌을 불러온다. 따라서 그 충돌을 조화시킬 수 있을 때만이 '리'는 진정한 '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리'는 '의'라는 사회적 가치를 전제로 해야만 '리'인 것이다. '리'를 얻으면 약자를 도와줄 줄을 알아야 한다. 그대는 건괘를 만나면 모든 행위에 있어서 이로운 결실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를 통하여 의를 구현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대는 매사에 이로운 결과를 획득하게 되리라, 그러나 그 이로움은 정의로운 조화가 되어야 한다. 리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이며 이로움의 조화(harmony of gains)이다."
▪ 정은 겨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식적으로 '곧을 정'이라고 훈을 달고 또 여성의 '정조'라는 차별의식 속에 이 글자를 가두어 버리는 바람에 가장 왜곡되었다는 걷다. 정은 '점친다'는 동사의 의미라는 거다. 그 뜻은 '묻는다'라는 거다. 점친다는 뜻은 신의(神意)를 묻는다는 거다. 하느님께 자신의 삶의 진로에 관하여 물을 수 잇다. 그 물음을 통하여 곧은 길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그대는 내가 사는 사회와 어 존재의 운명에 관하여 물을 수 있다. 점을 침으로써 하느님과 소통하고 바른 길을 개척하라. 정은 물음이고, 대답이다(inqury and divine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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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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