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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고독과 저항' 2

지난주는 대만작가 장쉰을 만났다. 주제는 ‘고독과 저항’이다.


(8) 경쟁이 강박과 일상이 된 오늘날, 가족과 둘러앉은 밥상마저 쓸쓸함을 채워주기보다 서러움을 불러 올 때가 많다. 도시에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내기가 참 어렵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산 속으로 갈 수 없다. 인간은 원래가 소통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유교는 관계를 중시하나, 도교는 “천지의 정신으로 왕래하라”고 했다. 고독을 통해 천지天地와 이야기하라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의 행복을 완성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외부에서 추구할 때 길을 잃고 헤맨다. 진정한 대화의 관계가 아니라, 단지 주고받는 관계로 변할 뿐이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보리(깨달음의 지혜)라는 말은 우리가 스스로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너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오래 묻다 보니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산다. 모든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를 권한다. 바로 고독을 아는 인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9) 세상을 온전히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은 이미 익숙해지기 전에 바뀐다. 이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할지? 이 장사, 이 업종을 계속 해야 할지? 전전긍긍한다. 나 자신의 힘을 발견하기도 전에 세상은 변한다.
-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다 얻을지라도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자기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 순간을 온전히 느낌으로써 세상에 이미 벌어지고 있던 현상들과 연결된다. 느낌과 앎은 다르다.
- 나우니스(Nowness):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현재가 이어지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간을 말한다. 순간을 경험한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경험한 것이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 세상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그 순간 자신의 내면과 아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 현대인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반면 너무 적게 느낀다. 그래 감각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하며 느낄 수 있지만 정작 이렇게 느끼는 감각은 천천히 약해져 간다. 우리는 너무 많은 지식을 얻는다. 그만큼 느낌의 힘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세상의 답은 하나만이 아니다. 결과의 답도 있지만, 과정의 답도 있다. 살면서, 과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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